단 상(斷 想)
[단상(斷想)] 140. 탈패러다임 시대
profkim
2025. 5. 26. 11:04
[단상(斷想)] 140. 탈패러다임 시대
오늘날 우리는 탈현대(post modern) 또는 탈산업화 시대(Post-industrial age)를 살고 있으며, 이 시대의 주요 특징은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라는 점이다. 불과 5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이다. 산업사회로 특징지어지는 근대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기본 원칙, 즉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존재했고, 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해왔다. 사회의 모든 영역, 즉 정치, 문화, 경제, 사회, 교육, 산업 등이 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따라 운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의 패러다임(paradigm)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탈현대의 속성을 논할 때 '탈패러다임(post-paradigm)'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다원적(多元的)인 가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쉽게 말해 사회문제 해결에 정해진 단일한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산업사회를 지배했던 기능주의(Functionalism), 구조주의(Structuralism), 해석주의(Interpretivism), 인간주의(Humanism) 등 다양한 패러다임들은 사회 운영의 지침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는 부분적인 문제 해결에는 효과적일 수 있어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 산업사회 내에서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이동했으며, 20세기 우리 사회는 여러 패러다임의 영향을 받았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가치체계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혁명적(革命的 예를 들면 빨간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 보다가 파란 안경으로 바꾸어 쓰면 세상이 전연 다르겠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20세기 후반에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를 여러 차례 경험했으며, 현재 탈현대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단일 패러다임으로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일 패러다임을 적용하면 그 기준에 따른 정답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정답이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의 사회는 정해진 정답이 없는 사회이며, 정답은 조건적(條件的)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이념이 사회의 지배원리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이념 논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 이념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사회현상의 상황과 영역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패러다임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산성 향상의 문제와 사회적 재화(財貨)의 재분배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사회주의 경제 이론이 실패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점을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국민 전체의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욕구가 존중되고, 고양(高揚)되며, 자유로워야 한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강렬한 욕구(慾求)는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하게 된다. 사회는 이러한 개인의 힘을 잘 활용하여 국민 각자가 전체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때 정치, 교육, 종교, 문화, 경제 활동 등 다양한 정신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은 국민의 역량(力量)을 극대화할 책무가 있다. 생산이 없다면 분배(分配)도 있을 수 없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유무상통(有無相通)은 결국 예루살렘 교회의 빈곤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개인의 욕구가 작동하지 않으면 생산은 위축되고 산업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눔은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생산이 있어야 한다. 수입이 없는 가정에서 무엇으로 가족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먼저 생산성 향상을 확고히 하고, 그다음 나눔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회의 재화는 사회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재분배하고, 합리적인 재분배과정을 통해 국민 누구나 생존, 의료, 교육, 여가활동을 보장받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회를 복지사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