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난주간 전(前)의 묵상 제4일
(2024년 3월 21일 목요일)
오늘의 찬송: 398장(통일 92장; 어둠의 권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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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지도]
[오늘 묵상(默想) 가이드]
오늘은 묵상 제4일로 예수님이 요단강 건너 베레아 지방에서 유대 지방 베다니로 오신 일과 베다니에 오시는 길에서 일어난 일, 나사로의 죽음을 확인하신 일 등 두 가지로 구성된다. 요한복음 11:1-37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강화로 구성된다. 주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대화에서 진리가 선포되고 고난을 앞둔 예수님으로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시는 계기임을 선언하신다. 묵상의 핵심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1) 나사로가 병들어 죽음
성 경: 요11:1-16
장소: 베다니(지도 참조, 예루살렘 남동 쪽)
때: 29, 30 A.D.(예수님이 요단강 건너 베레아 지방에서 유대 지방 베다니로 오신 후)
등장인물: 예수님, 제자들, 나사로의 가족, 군중들
중요 메시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심
[요의(要義)]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7가지 이적과 기사 중 마지막 7번째 이적 기사이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전했을 것이다 마르다의 전갈 내용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셔서 치유해 주시기를 바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음을 아시고 계셨다(요11:13). 그래서 예수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러 베다니로 가신다.
수전절에 바리새와 서기관들과의 예수님의 존재 문제로 논쟁이 일어나고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함으로 잠시 요단강 동편 베레아 지방 베다니 동리에 피하여 계실 때 일어난 일이다. 요단 동쪽의 베다니 동리(요1:28)와 나사로가 산 요단강 서쪽 베다니 동리(예루살렘의 동남쪽 3km지점) 사이는 대략 걸어서 하룻길이었다고 한다.
이 항목의 내용구성을 보면 1. 나사로의 가족(요11:1, 2), 2. 나사로가 병들었음을 연락받는 예수님(요11:3, 4), 3. 2일 후에 베다니로 가시려는 예수님(요11:5-8), 4. 낮에는 빛이 있어서 실족하지 않음(요11:9, 10), 5. 나사로가 죽었다고 선언하심(요11:11-14), 6. 나사로를 살리심은 무리가 믿게 하기 위함(요11:15, 16)으로 구성된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고 그를 예수님이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가 되고 무리가 믿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첫째, 요한은 이 항목의 시작을 “어떤 병자가 있다.”라고 시작한다. 이어서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가 사는 베다니 마을에 사는 나사로라고 그의 가족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나사로는 마리아의 오라버니라고 소개한다. 따라서 이들 3인은 세 남매이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대접을 잘한 마르다와 종려 주일 전날 안식일에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예수님에게 비싼 향유 한 옥합을 발에 붓고 그 머리털로 닦아준 마리아(마26:6-13; 막14:3-9; 요12:1-12)이다. 세 남매는 예수님 사역과 밀접히 관계되어 있었다. 마리아의 기름 부음 사건과 나사로의 죽음 사건은 시간상으로 보면 나사로의 죽음과 살리심이 먼저이고 마리아의 기름 부음은 그 몇 달 뒤가 된다.
둘째,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다고 전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사로를 예수님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으니 오셔서 치유해 주세요, 라는 메시지가 은유 되어있다. 나사로가 병들었고 위중하니까 예수님에게 전갈(傳喝) 자를 보냈고 전갈 자가 가는데 하루는 걸렸을 것이다. 전갈을 받은 예수님은 나사로의 이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병이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하고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신다.
셋째, 예수님은 마르다, 마리아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평소에 돈독한 관계가 있으셨고 고난주간에도 이 집에서 성전을 왕래하셨다. 고난주간 전에도 베다니 마르다의 집에 유숙하셨다. 성경에 나타난 가정 중에 예수님이 가장 많이 드나드신 가정이다. 이들 세 남매를 예수님이 많이 사랑하셨다.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으시고 바로 나서서 그에게 가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레아에 2일을 더 유숙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예수님은 모든 상황을 다 아시고 계셨고, 때를 맞추려고 그러셨다고 추측이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망하면 하루 만에 장례를 지낸다. 그래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장례 지내는 예도 있었다. 무덤에 수일간 있었다면 죽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누구도 나사로 죽음에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나사로를 살리시면 확실히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베다니 나사로에게 가자고 하셨다. 제자들은 상황이 험악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좀 전 수전절에 성전에서 바리새와 서기관들이 돌로 치려 한 곳이다(요10:31). 이 사건 때문에 실은 베레아 지방으로 피신을 하신 것인데 그곳으로 다시 가자고 하시니 제자들의 걱정은 많았을 것이다. 예수님 공생애 3년 차는 적대세력이 팽배해 있었고 종교지도자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제거하려 한 때이다. 다시 예루살렘 근처로 가시는 것은 위험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그곳으로 가시고자 한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지금은 낮이고 빛이 있으니 실족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빛 되신 자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있으므로 사역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고 생명 그 안에는 빛이 있다고 설명하며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고 한다(요1:4-6).
빛이 세상에 왔으나 그 빛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빛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있는 동안 사역을 계속해야 하며 나사로를 살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고 설명하신다. 사람이 빛이 없으면 실족하게 된다. 요한의 설명은 생명이 빛이라고 본 것이며 생명을 갖은 성도는 빛에 거하고 그 안에서 사역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것이다.
다섯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베다니로 가자고 하실 때 이미 나사로가 죽었음을 아시고 하신 말씀이고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깨우러 가자고 하셔서 제자들은 정말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예수님은 직설적으로 나사로가 죽었다(요11:14).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잠들었다고 말씀한 것이다. 제자들은 죽음이 아니고 세상에서 잠시 잠들었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다시 말씀하신다.
여섯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설명하신다. 나사로가 죽고 그를 살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지만, 제자들과 무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니 이 일이 기쁨이라고 설명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적대적 관계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이 일로 아주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게 되었다.
요한은 이 당시의 상황을 도마의 선언을 통해서 설명한다. 매우 살벌한 상황이었다. 얼마 전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하던 곳이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잠시 베레아 지방으로 피신해 계셨다. 여기서 유대로 가자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다. 도마는 용맹스럽게 다른 제자들을 향하여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6). 말한다. 이 길은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제자들도 다 알고 있다. 제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베다니로 향하여 간다.
[오늘 묵상(默想)]
1.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드님 되심을 나타낼 수 있을까?
2.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를 위하여 죽을 곳으로 가신다. 나도 할 수 있을까?
3. 죽을 수도 있는 길로 간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성경 본문>
1. 요11:1-16
11: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11: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 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11: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11: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11: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하시니
11: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1: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하시니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성경: 요11:17-37
장소: 베다니(지도 참조, 예루살렘 남동 쪽)
때: 29, 30 A.D.(예수님이 요단강 건너 베레아 지방에서 베다니로 오신 후)
등장인물: 예수님, 제자들, 나사로의 가족, 군중들
중요 메시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심
[요의(要義)]
이 항목에서 다루는 내용은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셔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시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나사로가 살아난다고 확신을 주시고 마르다의 신앙고백과 마리아를 측은히 여기시는 예수님과 마르다와 마리아의 나사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도 둘러선 무리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이 항목의 내용구성은 1. 예수님 베다니에 도착하심(요11:17-19), 2. 마르다를 만나심(요11:20-27), 3. 마리아를 만나심(요11:28-35), 4. 무리의 반응(요11:36, 37)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이 베다니 동리 근처까지 오셨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러 나가고 예수님이 오신 것을 모르는 마리아는 집에 있었다고 한다. 나사로의 죽음 때문에 많은 친지가 문상을 와서 집에 손님이 많았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상을 당하면 서로 위로하였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는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장사지낸 지 4일이나 된 때이었다. 나사로의 죽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 가시는 곳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으니까! 많은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셨을 것이다. 무리의 일부는 예수님과 적대적 관계의 사람들이었다.
둘째,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처음 한 말은“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1:21) 마리아도 첫 말은 마르다와 같았다(요11:32). 두 여인 모두 확신하고 있었다. “주님이 계셨으면 오라버니는 죽지 않았다.” 아쉬움이 진한 말이다. 그리고 마르다는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실 줄 압니다.“(요11:22) 라고 고백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요11:23) 하시니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살아나겠지요, 라고 조금 전의 고백과는 다른 말을 한다. 예수님은 즉시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는데 마르다는 부활의 때를 생각했으니 부활 신앙은 가지고 있었으나 요11:22의 고백은 허구이었다.
이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26) 다시 예수님은 확신을 심어주신다.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7) 신앙고백을 한다. 마르다와 예수님의 만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르다를 통해서 고백받는 신앙고백의 장(場)이었다.
셋째, 예수님은 마리아를 부르셨다. 예수님 오신 것을 모르고 있던 마리아는 급히 예수님께 나아간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비통함을 나타낸다. 마리아도 첫 말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11:32). 분명히 이 여인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주님의 능력이다.
마리아가 우는 것과 따라온 무리가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도 마음이 비통하심으로 눈물을 흘리시고 나사로의 무덤이 어디 있는가를 물으신다. 마르다의 만남에서는 하나님 아들로서 정체성과 신앙고백을 받아내셨고 마리아와의 만남에서는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의 심성을 나타내셨다.
넷째, 이 장면을 바라보는 무리는 대부분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받아드렸을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이들 남매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아쉬움이 섞인 말이나,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말이다. 그러나 일부 적대적 생각하는 사람들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왜 이 나사로는 살리지 못했는가? 조롱과 비난의 말을 하였다. 이런 부류는 대부분 종교지도자일 것이다. 나사로 사건은 큰 사건이고 예수님 공생애 3년 차 마지막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결심을 굳게 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 묵상(默想)]
1.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드님 되심을 나타낼 수 있을까?
2.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다면 나와의 관계는 어떠할까?
<성경 본문>
1. 요11:17-37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 짜 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 이다.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11: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 이다. 하더라.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11: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2024년 3월 11일(월)
Ⓒ 2024 J. K. Kim
이 묵상 자료에 사용한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의 저작권은 재단법인 대한성서공회 소유이며 재단법인 대한성서공회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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