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순 종 (順 從)
순종이란 용어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단어이다. 특히 성경에서는 순종이란 단어가 많이 언급된다. 우선 느낄 때 순종이란 힘들고,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어떤 행위라고 생각된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다. 제사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데 그보다는 순종이 훨씬 좋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힘들어도 순종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 부모, 선생, 권위자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순종하는 행위가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대부분 순종에는 힘든 경우가 많아서 일 것이다. 또 하라는 지시가 부당한 예도 있겠고, 도무지 나와는 관계가 없고, 지시자를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 것이다. 순종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짜증 나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지시에 따르면 자유로워지고, 부유해지고, 건강해지고, 자녀가 잘되고, 하는 일이 잘 풀려나간다면 누구나 즐거이 순종할 것이다.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운동을 즐기는 경우는 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을까? 이유가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순종(順從, 히 샤마' (שָׁמַע), 헬 휘파쿠오' (ὑπακούω), 뜻 경청하다. 이해하다.)은 바로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논의하고 있다. 사람의 행복(幸福), 건강(健康), 형통(亨通), 생육(生育)과 번성(繁盛), 극복(克復), 승리(勝利)의 길을 은유(隱喩)한다. 따르면 복이 오고 거부하면 삶에서 실패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 성경은 사람을 위해서 이것저것 하라고 하는가?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 시에 아덴(Athens)을 방문한 일이 있다. 당시 아덴은 세계의 학문의 중심지요 철학이 번성한 도시이다. 아덴 사람들은 신기성(新奇性) 기질을 갖고 있어서 새로운 것을 좋아했다.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와 스토아학파(Stoics)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이나 도전을 좋아해서 바울을 아레오파고스(Archon of the Areopagus)로 데리고 가서 토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이때 철학자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고 오히려 만민(萬民)에게 생명(生命)과 호흡(呼吸)과 만물(萬物)을 친히 주시는 분이라고 설명한다. 오로지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언급된 사람이 해야 할 일, 예를 들면 십계명 같은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계명이란 뜻이다. 믿음과 사랑이 사람의 삶에 고귀한 가치가 있음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는 너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들었다면, 네 평안함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끊어지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사람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명령을 내렸는데, 이 명령을 하나님을 위해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순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 도전방식, 때를 알아서 정성을 기울여 수행했을 것이다. 그 위에 즐거움으로 수행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내적 자아의 각성과 자기발견에 의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가졌어도 각성이 없으면 활용할 수 없다. 자기를 발견하고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 이런 사람의 눈은 열려서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남이 못 듣는 소리를 들어 깨닫고, 다른 사람은 도무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삶의 이유가 자기에게 있는 사람들이 갖는 특색이다.
독재자의 명령이나, 강압적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어렵다. 타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행위의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순종은 그 명령이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행복을 이루려는 것으로, 해야 할 이유가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참된 복은 자기변화 이겠지, 가장 이상적인 행위를 자기 주도적으로, 즐기면서 행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해야 할 일을 즐기는 사람은 결과와 관계없이 복된 사람이고 많은 결실을 얻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순종은 이런 의미이다. 실존적 가치를 수행하는 기초는 믿음과 사랑이다.
2025년 5월 9일(금)
ⓒ 2025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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