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138. 천국(天國)의 권태(倦怠)

profkim 2025. 4. 23. 17:50

철죽과 영산홍의 계절이다. 무었을 느끼게될까? ⓒ 2025 J. K. Kim

 

[단상(斷想)] 138. 천국(天國)의 권태(倦怠)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0년대 초 우리나라의 대중잡지로 희망(希望), 아리랑, 신태양, 사상계(思想界), 실화(實話), 여원(女苑) 등과 같은 잡지가 있어서 대중의 읽을 거리를 제공하였다. 전쟁으로 삭막한 사회환경에 비타민과 같았다 하면 될는지, 이때 어떤 잡지에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천국의 권태라는 글을 읽었다. 실화라고 소개했지만, 작가의 픽션이겠지, 그러나 가난과 전쟁의 고통에서 모두 힘들어하던 시절에 서민들에게 하룻저녁 읽을거리로서는 의미가 있었다.

 

  한 남자가 천국에 갔던 모양이다. 물론 세상을 하직하고 갔겠지, 이 사람이 천국에서 처음 만난 곳은 산천도 아름답고 집도 멋있는 곳이었는데 사는 사람이 없어서 적막했다. 더욱 놀란 것은 마당이고 길이고 모두가 "쌀"이었다. 세상에서 그리 귀하던 쌀이 지천이니 우선 천국의 풍요에 대해 놀랐다.

영산홍 ⓒ 2025 J. K. Kim

  이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멋있는 집을 하나 자기 집으로 정하고 낮이고 밤을 가리지 않고 나가서 쌀을 가져다가 집에 쌓았다. 거의 집을 채울 정도의 쌀이 저장되었다. 그러나 밥 달라는 아이들도 없고, 쌀 떨어졌다는 마누라의 잔소리도 없는 곳이니 그 많은 쌀이 무엇에 필요했겠는가! 이 사람은 하는 일에 재미를 잃었다.

  피난민 생활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들을 굶기고 한 줌 쌀을 위해서 그 얼마나 노력을 했었는가! 아이들은 한술이라도 더 먹으려 했고, 아내는 아이들 먹이느라 자신은 별로 얻어먹지도 못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이 천국이라는 곳은 먹을 것이 지천으로 많은 데 먹을 사람이 없다. 쌀을 가져다가 집에 쌓아두는 일에 싫증이 났다. 일해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많은 쌀을 포기하고 다른 마을로 가보기로 했다.

철죽 ⓒ 2025 J. K. Kim

  새로 간 마을 역시 산천도 수려하고 집들도 아름다웠다. 마음에 드는 집을 하나 정하여 자기 집으로 했다. 그런데 이 마을은 마당이고 길이고 모두 이었다. 이 사람은 놀라움으로 천국의 경이로움을 노래했다. 세상에서 그렇게 벌기가 어려웠던 돈이 널려있으니 천국의 풍요로움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일찍이 일어나서 돈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쌀을 집에 들이듯이 돈을 밤낮으로 집에 가져다 잘 정리하여 쌓아두었다. 하루는 돈을 가지러 나갔는데 저 건너편에 여인이 자신과 비슷하게 돈을 치마에 끓어 담고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세상에서 같이 살던 아내였다.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철죽 ⓒ 2025 J. K. Kim

  당신은 언제 여기에 왔소, 물으니 아내는 당신이 간 뒤 며칠 있다가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부부였으니 이 천국에서도 부부로 지내면 어떻겠소? 아내 역시 좋다고 하여 두 사람은 천국에서도 부부로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이 돈을 집에 가져다 쌓아두는 일을 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사람은 왜 돈을 가져다 쌓아두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돈을 가져와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돈을 달라는 아이들도 없고, 쌀 떨어졌다고 바가지 긁는 아내도 없다. 돈을 쓸데가 없다. 이 사람은 천국 생활의 의미를 점점 상실하게 되었다.

철죽 ⓒ 2025 J. K. Kim

  다른 마을을 가보고 싶어져서 살던 마을을 벗어나 이상한 마을로 들어섰는데 거기에는 제복을 입은 수문장이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검문하고 있었다. 수문장이 이 사람에게 성명과 생년월일을 물어서 다 말해주었더니 수문장이 장부를 찾아보더니 너는 아직 어기 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왔느냐며 문밖으로 쫓아냈다.

  천국에서 쫓겨난 이 사람 귀에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사람 소리 같은 것도 들려왔다. 좀 지나니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좀 더 지나니 아빠, 여보 부르는 소리도 아련히 들려왔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부산 피난민 판자촌이었다는 글이다.

철죽 ⓒ 2025 J. K. Kim

  전쟁과 가난 그리고 배고픔 등으로 삶에 지친 삶들의 넋두리일까! 비록 어렵게 살더라도 세상에는 삶의 이유가 있다는 변() 일까! 물질은 필요할 때 만 가치가 있다는 설명일까! 천국보다는 고생스러운 이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천국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한다고 하셨다. 천국은 가시적(可視的 visible)이 아니며 공간적(空間的 spatial)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신다. 그렇다면 물질이나, 사회적 관계나, 세상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형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영산 홍 ⓒ 2025 J. K. Kim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 안에(within you, among you, inside you ) 있다고 하셨다. 한 사람의 심령(心靈) 안에 이루어진다는 뜻이 있겠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사람들 사이에 천국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천국은 사람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 안에 이루어진다는 설명으로 보면 적절할 것이다.

  천국에 갔던 사람은 왜 거기서 권태를 느끼게 되었을까? 그가 간 천국은 역시 물질의 세계였다. 거기서 행위(行爲)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삶의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천국은 사람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 안에 내 심령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산다고 해도 심령의 변화가 없으면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철죽 ⓒ 2025 J. K. Kim

  천국은 지옥 같은 삶을 살던 사람이 혁명적 변화를 겪고 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에게 지옥은 왜 오는가? 불신(不信)이 가져다주는 삶은 불안, 공포, 스트레스, 좌절, 포기, 불만과 불평 등 행위로 나타나서 일이 꼬이고, 건강이 나빠지고, 삶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없게 된다. 이런 삶이 지옥일 것이다.

철죽 ⓒ 2025 J. K. Kim

  불신의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은 혁명이고, 이런 혁명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되고, 이전에 알지 못하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전환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보라 새사람이 되었도다. 이 사람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는 평안함이 있고, 삶이 즐겁고, 믿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사랑의 수고가 있고,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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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