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135. 아미시 사람들

profkim 2025. 3. 3. 15:32

대가족을 이룬 이들은 전통 복장을 하였으나 아이들은 맨발이다. 자료 출처: https://i.namu.wiki/i/r4Qefetjl96giLZe2Fr0oBDeHK46l2W115WKTPxFhc9fyo8enPnF1Gs-08OgvXDwmhaQDShfDdYegTySjzqMkFTC8Co6YITFPLoOmtLlsOza-a398UDAME6ylNCq5ZQenj-YhtsdgytkRugAU_ZuyQ.webp

135. 아미시 사람들

 

  십여 년 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Pennsylvania) 더치 카운티(Dutch Country)의 랭커스터(Lancaster)에 사는 재침례파(再浸禮派) 사람들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들을 아미시(Amish)라 부르고 대부분 문명을 거부하고 전통적 농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1693년 스위스(Swiss)와 알자스(Alsace, 프랑스 북동부 지역) 출신으로 야코프 아만(Jakob Ammann)이 전근대 유럽의 종교 박해를 피해 신세계로 이끌고 온 재침례파 계열 신도들의 후손들이다.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아만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랭커스터의 아미시는 약 3만 명이 거주하는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아미시 마을에 방문객이나 여행객을 위한 모텔도 있다. ⓒ 2014 J. K. Kim

  재침례파(재세례파)는 대체로 초대 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또는 소련이나 우크라이나 등으로 옮겨서 자신들만의 컴뮤니티를 형성하고 산 사람들이다. 재침례파는 수많은 분파를 이루어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방문한 아미시 마을은 메노파의 한 분파로써 19세기의 농촌 생활을 고수하며, 현대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랭커스터의 아미시 사람들은 농업, 목공, 수공예와 같은 전통적인 직업에 종사하며 산다. 이에 비해서 메노파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재세례파의 스위스형제단은 종교개혁 신학자 울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가 이끄는 국가 교회의 요구에 따르지 않아서 박해가 시작될 무렵인 15251월 최초로 교회를 구성했다. 츠빙글리가 제시한 요구사항은 유아 세례문제였지만 실제 쟁점은 교회 성격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로서 그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교회의 참된 구성원이라고 이들은 믿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국가 행정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서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가 직접 인도한다고 했다. 스위스 형제단은 곧 박해를 받고 유럽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이들의 교리적 입장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이들은 소련, 우크라이나, 아메리카 대륙 등지로 이민 가야만 했다.

아미시 여성들의 전통적 복장 검소하고 단색중심이다. 자료 출처: https://blog.kakaocdn.net/dn/cstKiw/btsMzrjy1C9/Tm2F5sIYBAYItD4TXkKi6k/img.jpg

  메노파는 16세기 재세례파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 두 운동은 서로 다르다. 재세례파 중 급진적이고 강경파인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 1489~1525) 같은 사람과 달리, 1536년 재세례파 운동에 가담한 네덜란드 사제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는 온건파에 속하고 북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한 운동을 전개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 전쟁 시기에 메노나이트가 구호 활동을 했었으며 이들의 후예들이었다.

  스위스의 메노파 주교 제이콥 암만(Jacob Amman 1644-1712)은 재세례파 지도자들이 모여 결의한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The Schleitheim Confession)이 잘 지켜지지 않음을 보고 순수한 성서적 생활방식을 보존하기 위해 메노파를 떠나 암만파 교회를 세우게 된다. 아미시는 암만파 사람들이다.

아미시 마을에 제과점이 있어서 여행객과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 2014 J. K. Kim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이들을 재침례파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이들이 유아세례를 거부한다. 아직 어렸을 때 신앙고백을 할 수 없을 때 이루어진 세례는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만이 정식 교인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보면 된다.

  나는 아미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주로 소개하려 한다. 이들의 생활상을 말하려니 자연 그들의 종교적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하므로 그 흐름을 간단히 보아왔다. 내가 펜실베이니아 아미시 마을에서 느낀 점은 마치 19세기 이전의 유럽의 농촌과 농부를 보는 것 같은 것이었다.

아미시 여성들의 야구 게임, 맨발의 청춘. 자료 출처: https://i.namu.wiki/i/Q0l2kFYUkcaoxp_oaFLAZEs7rDpsiHnTLlisb5Sl5eHriTpnjIlSK1IrmBfHaSzAaatDmYQwcQQrYMGRb-CU5xcRdRpxzEgbeHe2dhEYSz-uhlU_yREvatgyQgff7_gY6Hq7J_Pul_b_etY3T-7qGA.webp

  이들은 현대 문명을 거부한다. 따라서 전기 사용도 거부하고, 자동차도 거부하고, 현대인이 누리는 대부분의 기기를 거부하며 옛날 방식을 고수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산아(産兒) 제한도 거의 하지 않아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농촌에 군거(群居)하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기 때문에 폐쇄된 사회라 할 수 있다. 폐쇄된 사회가 갖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고 보인다.

  아미시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지역을 획정(劃定)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역에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 사는데 이들의 비율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들어오면 정부가 해주는 지반시설(전기, 수도, 통신 등)이 잘 조성되지 않아서 일반 시민이 불편하다고 한다.

아미시 가족의 나들이, 어른은 신을 신었으나 아이들은 맨발이다. 자료 출처: https://blog.kakaocdn.net/dn/ckTqPc/btsMy2jZ24K/PtFB8wVLkL4AWRjLZJCDD1/img.jpg

  이 문명사회에서 전기 사용을 거부하니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세탁기도 없고, 전등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농사도 수작업으로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대형 트랙터는 사용한다고 한다. 산아 제한도 하지 않으니 인구 증가율이 높다. 농업을 하니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자연 아이를 많이 낳아야 했을 것이다.

  학교 교육도 8학년까지 하고 그 이상은 자율인가 보다. 미국은 가정학교(home school)가 인정되니까 자유이지만 의무교육제도가 강화된 나라에서는 부모가 처벌을 받게 된다. 군대도 거부하니까 미국 개척기에는 상당한 불이익을 당한 것 같다.

 

  이들 사회는 자급자족하면서 사회를 유지하니까, 외부 사회와 교류가 적은 편이라 한다. 요즘은 일부에서는 사회적 교류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보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 종교 고립주의자들은 아니다. 일반 지역에 이들이 들어가 사는 형태이니, 또 사회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일반인들도 이웃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다만 이들이 많이 들어오면 지역의 지반시설 확충은 늦은가 보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아미시 가족의 마차(buggy) 나들이. 자료 출처: https://www.bing.com/images/search?view=detailV2&ccid=j4zpn%2f34&id=520C90CB0228B1BB612D51389A64452902C4E9DC&thid=OIP.j4zpn_34BuPhCUYFtLlMwAHaE8&mediaurl=https%3a%2f%2fcdn.historycollection.com%2fwp-content%2fuploads%2f2019%2f01%2fvariety-KC-1.jpg&exph=480&expw=720&q=%ec%95%84%eb%af%b8%ec%8b%9c&simid=608002215753571547&FORM=IRPRST&ck=BEEC0C1BC8229A6C3E48DED20A65E5F1&selectedIndex=460&itb=0

  이들이 사는 마을에는 마차(馬車 buggy) 다니는 길이 있고 가족 단위로 마차로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차로 이동하니 요즘과 같은 시대에 이동에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그러나 이런 불편을 즐거이 감수하고 있다. 세탁기나 건조기도 없으니 손빨래를 하고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 형태이다.

  이들의 행색은 단색 옷이 주이지만 고풍스러운 정장에 결혼을 한 사람은 턱수염을 길러서 근엄하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자가 결혼하면 상투를 트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아이들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양복을 입고 다닌다. 그런데 신을 신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맨발이다. 여성들도 맨발로 운동도 하고 다니기도 한다. 맨발은 건강에 좋을 것이다.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는 형태이지만 약간의 지역사회와 교류는 있다고 한다. 이들의 삶은 자연과 가장 가깝고 건강식을 한다. 마을에 제과점도 있고 식당도 있어서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었다.

 

아미시 마을에 식당이 있다. 사회와 교류하는 것이다. ⓒ 2014 J. K. Kim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독특하게 개발된 그들만의 독일어(Pennsylvania Dutch)를 사용하지만, 영어도 사용한다고 한다. 문명과 단절된 상황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지만 이들의 삶을 단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재세례파의 분파가 다양하듯이 각 지역이나 개인의 삶 그 자체가 너무 다양해서 내가 방문한 아미시 마을로 이들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는 아미시의 모습을 보고 유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 세례파 중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도 있었다고 한다. 몇몇 지도자가 부를 누리며 구성원을 지배하게 되어 존속할 수 없었다고 한다. 초대 교회 유무상 통이나 재산 공유 개념은 가난을 가져오게 되고 소수의 지배층의 부도덕으로 연결된다. 또 생산성 저하로 말미암아서 모두가 가난하게 된다는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다.

아미시 마을에 그로서리, 그들의 농산물을 판매한다. 자료 출처: https://i.namu.wiki/i/pXLoR2bglnSq26S_Px7OAEV4mF3VM9QrLfFXjxdJLtbt6Ey2HDPmDsSdJFpBBn0xrDpA3dSOkYjJdBv81G2ax48IyLZ3sSZ7nOST7juzaYqxXKR76TtYmkNrH86f_FXDfOaphVq6LesfnIM3BwiIGg.webp

  아미시 공동체는 엄격한 생활 방식과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독특한 신조를 지니고 있는데 그 내용은 성경 중심 특히 복음서 중심으로 산상수훈을 중요시한다. 유아 세례를 부정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정교(政敎)분리 원칙이고 세속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해서 물질주의를 멀리한다. 개인보다는 공동체 중심이라는 점이 이들의 특색이라 하면 되겠다.

  아미시는 겔라센하이트(Gelassenheit) 즉 순종, 겸손, 평화를 존중하고, 개인보다 공동체 중심을 가치로 여기고, 오르드눙(Ordnung) 즉 공동체 규율을 준행하여 현대 문명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 이들의 신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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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