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134. 활(弓)의 노래

profkim 2025. 2. 17. 12:24

 

134. ()의 노래

 

 

  우정(友情)을 사전적 의미로 보면 친구 사이에 나누는 정신적 유대감을 말할 때 쓰인다. '동맹'보다 더 강한 형태의 대인관계이다. 우정의 개념이 소수와의 매우 깊은 관계로 본다. 가장 친한 친구 한두 사람과 더 강렬한 관계를 갖는 경우라 하면 어떨까! 우정은 말 자체가 아름답다. 우리 삶에서 우정을 나누며 지내는 벗이 진정 몇 명이나 될까? 아리송하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에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지낸 두 청년이 있었다. 이들의 우정은 지금도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윗(David) 왕과 다윗을 죽이려고 10여 년을 추적한 사울(Saul) 왕의 아들인 요나단(Jonathan)의 우정이다. 이 둘의 관계는 아이러니하다.

  다윗은 적국(敵國)인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적장 골리앗을 물매로 쳐 죽여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국가 유공자이고 사울의 둘째 딸과 결혼을 했으니 사울의 사위인데 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을까? 사울의 의심은 다윗이 자기 자리인 왕좌를 노린다고 생각해서 다윗을 제거하려 한 것이다. 사울 왕 치세 40년 중 후반 10년을 다윗을 잡으러 다녔으니 그 소모가 어떠했겠는가! 다윗은 악령이 들었었다고 한다.

  요나단은 사울의 후계자이다. 그러니 사울 왕의 생각과 같다면 다윗은 요나단의 정적(政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여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깊게 사랑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사울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아버지인 사울 왕에게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윗의 안전을 항상 배려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너무 깊어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관계이다.

  이들이 젊었을 때 둘의 관계를 성경에서는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 하였다.”라고 설명하여 그들의 우정이 어떠했는지를 말한다.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아버지 사울 왕 때문에 일상에서 많이 누리지 못했다. 다윗이 도피 생활할 때 한번 만난 일이 다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우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오늘을 살면서 우리 세태에서 일어나는 일과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진정 사람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요나단이 왕좌에 연연했으면 이런 우정이 가능했을까? 둘 사이에 욕심이 있으면 우정은 사라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울 왕과 요나단 형제는 적국인 블레셋과 길보다 산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고 사울 왕국은 종식된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 생각도 못 했었다. 자기 종족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고, 그 가운데 자기 가문이 가장 미약하고, 그 가운데 자기 집은 제일 보잘것없다고 고백했다. 그때 그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사울이 권좌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면서 욕심이 커졌다. 그래서 길을 벗어나게 된다. 국가 유공자이면서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과 그의 벗 요나단을 애도하는 애절한 시, 활의 노래를 지어 후세대에 전한다.

  다윗은 벗이요 형과 같았던 요나단과 그의 아버지 사울의 죽음을 깊은 곳으로부터 슬픔을 느끼고, 이 두 삶의 미덕과 장점들을 나열하며 이스라엘 딸들에게 슬퍼할 것과 블레셋의 대표 성읍인 가드와 아스클론에서 축제의 분위기로 떠들썩할 그들을 생각하며 이스라엘의 슬픔을 상기시킨다. 길보아산에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의 칼과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되었다는 애곡(哀曲)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노래이다.

 

        활(弓)의 노래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구나.

오호라, 용맹한 두 영웅이 쓰러졌도다.

 

가드 땅에 이 소식을 알리지 마라.

아스클론 거리에도 소문내지 마라.

블레셋 딸들이 기뻐하며 춤출까 두렵고,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를까 염려스럽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는 비도 이슬도 내리지 말고,

제물 바칠 밭도 없을지어다.

그곳에서 두 영웅의 방패가 버려졌구나.

 

죽은 자의 피와 용사의 기름 속에서,

요나단의 활은 헛되이 떠나지 않았고,

사울의 칼 또한 헛되이 돌아오지 않았도다.

 

사울과 요나단은 살아생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이였으니,

죽음조차 그들을 갈라놓지 못했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했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며 울어라.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를 화려하게 입혔고,

금 장신구로 너희 옷을 장식했도다.

 

오호라, 두 영웅이 전쟁 중에 쓰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구나.

 

  활의 노래는 다윗을 괴롭힌 사울 왕과 벗인 요나단의 죽음을 마음 아파하면서 부른 애절한 노래이다. 요나단의 위대함, 다윗의 관용, 즉 원수 같은 사울 왕을 위해서 애절한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을까? 길보아산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 왕 부자를 위한 다윗의 조가(弔歌)  “활의 노래는 보편적 관념의 세계를 초탈한 더 높은 차원의 승화된 삶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가?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 이웃과의 관계를 쉽게 버릴 수 있지 않은가! 진실 왜곡, 거짓 조작, 배신, 배반이 성행하고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지 않은가! 오늘 우리 사회는 물질적 부유함을 이루었지만, 인간의 참됨을 잊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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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