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 신(革 新)
사람에게는 항상 변화가 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변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점진적인 것이고 하나는 혁명적인 것이다. 전자는 삶에서 조금씩 배워가며 변화는 것들이다. 후자는 어제와 오늘이 전연 다른 세계가 이루어지는 혁신이다.
빨강색 렌즈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빨강색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빨강 렌즈 안경을 벗고 파란색 렌즈의 안경으로 바꾸면 모든 사물이 파라케 보일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학습에 의한 변화가 아니고 렌즈의 바꿈에서 오는 변화이다.
의심이라는 렌즈를 쓰고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모두 회색빛 거짓으로 보이고 사람을 볼 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행동 때문에 믿고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의 틀에서 정직하게도 부정직하게도 보일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자연을 보고, 사회를 본다면 그는 평안하고 행복해 질 것이다.
기독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데 있다. 모든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때 그들은 새 하늘(新 天)과 새 땅(新 地)을 볼 것이다. 어제의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으로 변하게 된다. 오늘과 같이 사이비 종교가 신천지(新天地)를 부르짖을 때 기독교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묻고 싶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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