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溫柔)와 겸손(謙遜)
-예수님의 품성-
오늘 우리는 예수님 품성을 닮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예수님 품성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답이 막연할 수가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자신을 소개하신 일이 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까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신 일이 있다. 이 때 예수님 자신이 자신의 품성을 언급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gentle)하고 겸손(humble)하니”(마11:29) 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성품은 이 두 가지 온유와 겸손일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품성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배우라하셨다. 자신과 더불어 멍에를 메고 배우라하셨다. 멍에는 같이 메는 것이다. 직접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배우라는 뜻이다.
사전에서 온유는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고 정의한다. 거친 성격과 대칭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은 원수(怨讎)를 용서하는 부드러움(눅23:34), 누구를 만나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마9:36; 20:34; 막1:41; 요11:33), 민망해 하시는 마음(눅19:41-44), 죄인을 품는 마음(요8:1-11)과 같은 것들일 것이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고 하셨다. 그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마5:5) 이라 하셨다. 팔복의 전반 4덕목은 후반 4덕목과 짝을 이루는데 이는 인과(因果)의 관계로도 설명 할 수 있다. 온유한 심령에서 화평하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온유한 사람이 사람들과 화평할 것이다. 그러니 화평의 원천(原泉)은 온유가 될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것(마5:9) 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사람은 그 집의 아들일 것이다. 그럼으로 온유한 심령은 하나님의 아들의 심령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온유한 성품을 지니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온유하시다고 하셨다. 온유와 화평의 관계를 팔복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아래 도식에서 보아 두도록 한다.
온 유 ⇨ 땅을 기업으로 받음 (마5:5)
⇩ ⇧
화 평 ⇨ 하나님의 아들 (마5:9)
아들은 그 집의 주인이니 우리가 온유한 심령을 갖는다면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백성이 된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품성을 예수님과 같이 멍에를 매고 배운다. 우리가 그의 품성에까지 자라야하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화목하게 하시려고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의 화목의 제물이 되셨다.(롬5:6-11)
우리가 죄인일 때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져 살아왔다. 죄는 결코 하나님과 어우러져 살 수 없다. 죄는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게 된다. 하나님은 이를 해소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다. 진노를 받아야 할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10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에서 언급된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을 성취하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화목을 여신 분이고 구약의 주제가 하나님의 긍휼(출34:6, 7; 시103:8-14; 사43:25)이라면 자기 백성과 세우신 언약의 선물(렘31:31-34)을 성취하신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가까이 할 수 있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롬5:11).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화목뿐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화목도 이루신 것이다(엡2:16). 십자가의 의미는 사람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었고, 사람사이에도 원수 되었던 관계를 화해하고 화평을 이루신 사역이시다. 그래서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예수님의 온유한 심령은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들이기 때문에 “땅을 기업(基業)으로 받게 된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 품성 즉 온유하심을 나타내심으로 설명하셨다.
그리스도의 품성 온유를 통하여 이루신 화평은 우리들도 세상에서 이루어야할 덕목이다. 가정에서, 이웃과 더불어,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 성도들 사이애서 우리가 화평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다. 안디옥 교인들이 그리스도인(christian) 이란 호칭을 들은 것처럼 세상에서 삶이 성도로서 부족함이 없어야겠다.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세상이 알 것이다.
다음 겸손은 예수님의 또 다른 품성이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되실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으니(빌2:6, 7) 이 보다 더 큰 겸손이 어디 있겠는가? 왜 이렇게 낮아지셔야 했는가? 그 속에는 “복종” 이라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겸손에는 구속사역의 의미를 내포한다. (요12:20-36)
겸손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한 “십자가사건” 이 이루어지는 필요충족조건이라 보여 진다. 예수님은 낮아지시고 복종하심으로 만인구속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게 된다. 이 기쁜 소식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진리” 이며 소망이 없던 사람이 희망이 생기고 꿈을 꾸게 되고, 병들었던 사람이 나음을 입고, 활력이 생기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되는 구원 사역이다.
예수님은 겸손에 대해 가르치셨다(눅14:7-14). 잔치 집에 초청받아갔을 때 앉는 자리에 대해서 강화하셨다.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윗자리 보다는 낮은 자리에 앉으라 하신다. 낮은 자리에서 불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헐 씬 영광스럽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낮은 데로 내려가게 되면 참담한 상황이 된다. 언제나 낮은 자리를 택하라고 강화(講話)하셨다.
겸손은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순종하는 것으로 이는 인생이 가장 잘 되는 길이며, 행복해지며, 풍요를 누리는 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순종을 원하시는 것은 인생으로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교만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된다. 솔로몬의 패역(왕상11:1-13; 대하10:12-15), 북조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의 패역(왕상12:25-33), 남조 유다의 므낫세 왕의 패역(왕하21:11-15) 등은 모두 교만에서 온 것들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고난주간 제5일 목요일에 유월절을 맞아 제자들과 유월절(마지막) 만찬을 가지신다. 이 예식 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다. 그리고 내가 선생이 되어서 너희(제자들)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롤 섬기라하셨다.(요13:1-20) 예수님은 이 낮아짐을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다(요13:15).
그러나 이날도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높으냐? 논쟁이 있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겸손에 대해 강화하신 이유는 그들 제자에게 종의 자세를 갖기를 원하신 것이며 낮아져서 사람들을 섬기기를 바라신 것이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있은 후 그 품성이 바뀌었을 것이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겸손한 품성을 지니시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이 누가 높으냐의 논쟁이 있었던 것처럼, 교회에서 누가 높으냐? 집에서 누가 크냐? 우리 사회에서 누가 높으냐? 수 없는 계급 논쟁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성, 오늘 민주사회에서 평등성은 사라졌다.
산과 들이 누가 높으냐의 논쟁이 벌어졌다. 산은 내가 높은 곳에 있으니 내가 높다고 하였다. 들은 별소리하지 마라, 나는 이 넓은 들을 관장하니 내가 높다고 하였다. 모두 어리석은 이야기이다. 산은 산이고, 들은 들이고, 강은 강이고, 바위는 바위이고, 나무는 나무일뿐이지 누가 높고 낮은 것이 아니지, 그냥 자연이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겸손은 무엇인가 바위가 있는 곳에서 그 주위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도움으로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가족, 직장 동료, 이웃, 성도, 벗들이 경쟁 상대가 아니고 나를 도와주는 없어서는 아니 될 도우미들이다. 경쟁 사회에서는 경쟁 상대가 없어지면 내가 승리하는 것이지만 오늘 같은 협동사회에서 이웃은 나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버팀 목이다. 우리가 존중해야할 존재들이다.
예수님의 품성, 온유와 겸손을 우리도 배워서 하나님의 아들로 기업을 받고 아들의 삶을 삶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쁨과 감사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살전5:16-18)를 생활화하여 매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온유와 겸손' 카테고리의 다른 글
07. 예수님을 닮은 사람 (0) | 2020.03.12 |
---|---|
04. 아름다운 조화 (0) | 2020.03.11 |
3. 꽃길에서 (0) | 2020.03.11 |
05. 아름다운 봄 (0) | 2020.03.10 |
06. 바닷가로의 초대 (0) | 2020.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