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37. 균 형(均 衡)
며칠 전 사랑하는 정준모 목사(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전 총회장)께서 몇 장의 사진을 보내 주었다. 정 목사께서 유타주 동부의 모압마을(Moab County)의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을 지나며 촬영한 이미지이다. 좋은 사진을 접하고 한 장씩 음미하였다. 그리고 이 공원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사진 중 한 장의 바위 이름이 균형(Balanced Rock)이었다. 이 공원에 균형(均衡)이 잘 잡힌 바위나 아치가 무척 많았다, 그런데 아래 게시한 바위의 명칭이 균형 이다. 왜,“균형”이란 명칭을 붙였을까? 보기에 좀 불안하지 않은가? 그리고 피사의 사탑(斜塔)을 연상(聯想)하게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아치스 국립공원은 1928년 4월 12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1년 11월 12일 미국의 국립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3억 년 전, 이 지역에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수 백미 터 두께의 사암 지대가 콜로라도 고원(Colorado Plateau)에 형성되었고 이후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나게 된 사암(砂巖)이 1억 년여의 침식(浸蝕) 작용으로 현재와 같은 모래 아치와 바위들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미국 유타주 동부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유타주 모압(Moab)에서 북쪽으로 6km 떨어진 콜로라도강과 인접해 있다. 공원에는 2,000개 이상의 천연 사암 아치가 있으며, 다양한 지질 자원이 형성되어있다.
이 공원의 넓이는 콜로라도 고원에 310km²에 자리하고 있으며,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은 코끼리 뷰트(Elephant Butte)로 해발 1,723m 이고 가장 낮은 곳은 관광안내소(visitor center) 부근이 해발 1,245m이다. 공원의 강우량은 250mm 미만으로 사막지대이다.
내가 쓰려고 하는 글로 돌아와 보면 미학(美學)에서는 아름다움을 정의할 때 세 가지 조건을 들고 있다. 첫째 대칭(對稱)의 조화, 둘째 전체(全體)와 부분(部分)의 조화, 셋째, 미적 쾌감(快感)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치스 공원의 “균형” 바위는 대칭의 조화도 전체와 부분의 조화도 잘 이루어진 것 같지가 않다. 균형이 잘 잡혀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묘한 역학관계에서 현상(現象)을 잘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보는 이로 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균형 바위” 밑에 선다면 약간의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행여 무너지지는 않을까? 미학에서 정의한 아름다움은 균형이 잘 잡혀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데 이 바위는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이 바위를 균형 바위라 명명한 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힘을 설명하고자 함이라 미루어본다. 피사의 사탑은 5.5도가 기울어졌다고 한다. 균형이 잘 잡힌 건물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탑을 보려는 관광객은 날로 증가하고 사탑이 바로 서 있었다면 탑을 보러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탑이 가진 역사성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오랜 세월을 잘 버티어온 일 등은 피사의 사탑이 명성을 얻기에 충분했다.
피사의 사탑(斜塔, leaning tower in Pisa)은 1174년 착공되었다. 이 종탑은 56m 높이에 흰 대리석으로 지었는데 건물의 기초부가 무른 땅속으로 가라앉으면서 기울어지는 것을 발견했는데 8층 중 3층이 완공되었을 때이었다. 보완을 거쳐 건축을 계속했지만, 건물은 기울어진 탑으로 완공이 되었다. 그러나 이 탑이 오늘도 건재하고 유명한 탑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어떻게 피사의 사탑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부산대 신문(호수 1557)의 기사 가운데 피사의 사탑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글이 있어서 그 글 내용을 잠시 소개하기로 한다.
이탈리아 미라노(Milano)의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을 걷다 보면,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사탑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기울어진 탑으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입니다! 지금 피사의 사탑은 남쪽으로 약 5.5도 기울어졌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피사의 사탑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무게중심이 건물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한다.
건물의 균형을 유지하는 축이 건물 내부에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나는 건축이나 물리학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이 기사를 보고 오뚜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중심축을 오뚜기 내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오뚜기가 바로 서기도 하고 10도 기울기로 서기도 할 것이다. 오뚜기가 어떤 모습을 하던 균형을 유지하면서 서 있게 된다. 외견상 어떤 모습이 되었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면 된다는 생각이다.
정신세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객관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성공적으로 잘 삶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게 자신이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극한 상황에서 오히려 깨달음과 강인한 의지를 갖고 승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정신적 균형을 잘 유지해 나간 사람들일 것이다.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오히려 위대한 업적을 남긴 몇 사람을 살펴보면 좋겠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e: 1905-1997)은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의 혹독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창시한 로고 테라피(Logotherapy, 의미요법)는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라도 의미를 찾고, 창조해 내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에 대한 깨달음과 그 위대한 힘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사람을 무너트릴 수 없다는 깨달음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은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깨달은 것이었고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 악조건에서도 사람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각성(覺醒), 의미부여, 미래를 향한 경험의 재구성 등으로 그는 보았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자신이 만든 회사 애플(Apple)에서 해고당했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회사설립 10년여에 있었던 일이고 당시 회사 자본금 20억 불(한화 2조 3천억원), 직원이 4,000명이나 되는 큰 회사이며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잡스는 포기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이 잡스를 바로 세우는 축이었다. 잡스는 두 회사 넥스트(NeXT)와 픽사(Pixar)를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이를 기반으로 애플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좌절과 포기는 정신적 균형이 깨졌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정신적 축이 확실하면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 1840-1924)은 평범한 사업가였다. 유대인으로 독일서 나서 자라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철물 관계 사업을 하였다. 그러던 그가 70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글 청춘(the youth)은 나이나, 피부의 탄력이나, 빨간 입술에 있지 않고 열정, 꿈, 사랑 같은 정신적 가치에 있다고 한다. 멕아더 장군의 집무실에 울만의 글이 걸려있었고 패전한 일본인들 특히 기업인들에게 많은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노쇠한 다는 것은 열정이나 꿈이 사라졌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지 나이가 많아서 생긴 일이 아니다. 정신적 가치를 유지한다면 삶의 균형은 잘 유지될 것이다.
헬렌켈러를 길러낸 설리반 선생(Ann Sulivan; 1866-1936)은 Boston의 보호소에 수용되어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지하 독방에 수용되어 지냈다. 그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주셨다. 이 시설에 간호사 로라(Laura)를 만나게 되었고 로라의 사랑은 설리반을 일깨우고 일으켜 세웠다. 설리반은 이 시설에서 나와서 퍼킨스맹학교(Perkins Blind School, NY)에 입학하고 졸업한 후 시각, 청각장애와 말을 못하는 헬렌켈러(Helen Keller, 1880-1968)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헬렌켈러에게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선생이다. 이 두 여인은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지만, 이들로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도록 한 힘은 사랑과 희망과 용기였다. 이것이 삶을 유지하게 한 정신적 가치였다.
최근 미국 NBC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America’s got Talent에 6월 8일 출연한 제인 마르크제프스키(Jane Marxevsky, 30세)는 폐, 척수와 간 암 환자로서 앞으로 6개월간 생존 할수 있으며 그 생존 가능성은 2%라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가수이다. 그의 죽음을 받아드리는 진솔한 심정을 노래한 자작곡을 부른 노래의 제목은 “괜찮아!”(It is Okay!) 이었다. 제인은 기독교 대학을 나왔고 그에게는 믿음에서 오는 환희와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시한부 인생 생존 가능성은 2%이지만 해맑은 얼굴에 평안한 모습으로 부른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죽음을 초탈한 그의 모습은 어디서 왔을까? 심사위원들은 그녀에게 골든 버져(golden buzzer)를 울려서 그를 격려했고 머리 위에서는 폭죽과 꽃가루가 쏟아져 내려 울 때 제인은 무릎을 꿇고 기뻐하였다.
교육은 무엇이고, 종교는 무엇인가요? 이 세상은 평탄하지 않아도 굳건히 살아 갈 힘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살아 생동(生動)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그 무엇인가 삶의 중심에 심어 주어야 소명을 다했다. 하지 않겠는지요!
이미지를 제공해 주신 정준모 목사께 감사를 드립니다.
2021년 8월 1일(일)
Ⓒ 2021 by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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