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네팔 선교사 김정근 이사장
<편집자 주>
김정근 선교사(네팔 밀알학교 이사장)와 백향숙 선교사 부부는 복음의 오지(奧地) 네팔에서 24년간 낮은 곳에서 네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섬기는 분이다. 네팔 장로회신학대학 재건을 위해서도 오랜 시간을 바쳐왔다고 한다. 김정근 선교사는 한국에서 주로 특수교육교사로 일해 왔었다. 그러나 그의 소명은 현직 교사를 퇴직하고라도 선교현장에 나가야만 했었다. 남다른 소명의식이라 할 수 있다.
낮은 곳에서 봉사하라시는 주님의 소명(召命)으로 낮은 곳 즉 네팔의 장애인들에게로 향했다. 네팔의 신분제도 때문에 장애인은 사람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김정근 선교사는 그들의 인권 그리고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총회를 배경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수교육, 신학교육, 사회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은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김정근 선교사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한다. 김정권
낮은 곳에서 봉사하라
나는 대구대학교 부속 특수학교 교사로 23년, 비장애 학교에서 2년간 교사로 근무하였고 대구의 개척교회에서 장로로 섬겼다. 1999년 선교사로 가기 위해 명예퇴직하였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통합, 이하 총회로 표기함) 선교사로 허락되어 훈련을 받고 2000년 총회에서 대구 제일교회 전문인 선교사로 네팔에 파송 받았다.
중국 연변 과기대(科技大)에서 교수 및 특수교육 사역을 하려고 준비했으나. 장애인 선교를 하려면 가장 가난한 나라 네팔, 그것도 카스트 신분제도의 차별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네팔 장애인을 섬기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장로회 신학대학교(통합, 장신대로 표기함) 선교학 교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후 밤낮 환상으로 손짓하는 네팔 장애인들의 초청에 히말라야 힌두교의 나라 네팔로 선교지를 변경하였다.
자연 그대로의 네팔, 눈 덮인 히말라야는 정말 아름다웠으나 네팔 생활에 준비되지 못한 나와 가족은 언어도 문화도 생소하여 매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길에 나서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데 나의 눈에는 장애인들의 힘든 모습들이 보였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장애인들이 있었고 이들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 어떤 모양이든 존재했으나 네팔에서는 전혀 관심과 배려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이를 보는 나는 하나님 아버지 저들 중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받아들여 믿음의 삶을 살도록 저를 사용해 주세요하며 기도하였다.
첫째, 교회를 통한 장애인 교육과 복지
개척교회와 장애아 데이 케어센터(day care center)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서 나는 현지인 파트너 목회자 부부를 만나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교회 안에 6개월 과정 사회복지프로그램으로 재봉(裁縫) 봉제(縫製)를 시작하였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과정을 마치면 취직도 하였고 취직 못 한 사람은 재봉틀을 사주어서 집에서 옷을 만들어 오면 팔아서 생활하게 하였다. 교회는 조금씩 발전하였고. 십일조도 늘어났다.
교회 안에 장애아 데이 케어센터(day care center)를 열고 교사를 임용한 후 학생을 모집하였으나 모집이 되지 않았다. 네팔 힌두 카스트(caste) 사회에서 장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네팔 힌두인들은 너는 왜 장애아들을 교육하려 하느냐?며 수차례 생명의 위협을 가하였다. 이런 상황이 되니 파트너 목회자도 협조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카스트 신분 사회에서 장애인은 가장 낮은 계급으로 천대하며 소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장애아동 집을 열세 번 정도 방문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3명을 겨우 모집하였다. 학부모는 장애아동을 학교에 보냈으니 필요한 것이나 생활비를 요구하는 정도였다. 무조건 주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둘째, 네팔 지도급 인사와의 교류
네팔 국립 트리부반(Tribhuvan University) 대학교 교수, 교육부 직원, 초중고 교장 교사 중심으로 특수교육 관련 세미나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친구 특수교육관련자와 동역하며 실시하게 되었다. 네팔의 지도급 인사와 교류하는 것은 팀 접근으로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네팔 대학이나 교육부 관계자와 만나고 열심히 연출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네팔 계급사회에서 장애인 복지를 위한 접근은 직접 장애인을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류층 지도 계급에게 계몽, 봉사와 전도사역을 해야 했었다. 한편 이들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세미나에 참석하고 증명서를 많이 받아 놓는 것이 큰 요건이었다. 약간의 세미나 수당도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도급 계층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 역시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였다.
셋째,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나는 현지교회를 중심으로 특수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래도 현지교회 교인들은 특수교육에 마음을 열어 기도해 주었고 격려도 해주었다. 그래서 현지교회가 특수교육의 기반이 되기 위해 교회 개척과 든든히 세우기 사역을 시작하였다. 교회 개척과 든든히 세우기를 기도하였다. 한국, 미국, 캐나다 등 교회로부터 개척을 위한 지원이 되어 많은 교회를 세우고 사역하게 되었다. 그래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장애인을 이해하는 것이 달랐다.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이와 함께 나는 현지어 습득을 위해 트리부반 대학교 외국인을 위한 네팔어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3년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 꾸준히 공부하여 네팔어로 소통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 힘들었으나 현지어로 소통은 선교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었다.
간호사인 아내 백향숙 선교사는 병든 교인들을 치료했고, 한 지역을 선정하여 방문치료선교를 하였다. 이때 지역 정부에 보건소(health post)를 세워 주었다. 이것으로 지역정부에 의료 사역 허가를 받았다. 이후 다른 지역에도 보건소(health post)를 세워 주었다.
넷째, 특수학교, 선교 센터, 교회와 호스피스 건물 건축
수도 카트만두(Kathmandu) 외곽인 탕곳(Thankot) 지역에 2004년부터 네팔밀알미선센터(Nepal Milal Mission Center)부지를 매입하고, 네팔 밀알학교(Nepal Milal School for the Developmental Disorder Children)와 네팔 샘물호스피스(Nepal Sammul Hospice) 센터와 교회 건축을 시작하였다. 건축 기금이 지원되면 자금이 허용하는 만큼씩만 공사하느라 오랜 시간 소요되었다. 한국 샘물 호스피스, 하와이 땅끝 선교재단, 여러 교회에서 헌금하였다. 건물마다 후원자 명단표시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건물 맨 위층에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을 따라서 기도하였다. 건축을 마치기 위해 주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떼를 썼고 현실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기도하면서도 도움 주실 분들을 찾아갈까? 도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집사람 백 선교사는 말해 주었다. 기도실에는 그때 사용하던 방석이 있고, 네팔어로 꾸나이 찐디뜨 너거려! 띠므로 아사라이 단여바드꼬 쁘라따라 마뜨러이 거러(“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빌립보 4장 6절)를 붙여 놓았다.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고 기다렸으며 기적을 이루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네팔 밀알학교는 네팔과 같은 카스트 신분 사회에서 소외되어 버림받은 발달장애 학생들이 전문 특수교육과 직업교육, 치료 교육을 받으며 사회 완전 참여(total normalization)를 준비하고 있다. 네팔 샘물호스피스는 말기 암 환자들을 관리하고 돌보아 구원받아 하늘 가는 길을 안내하는 병원 시설이다.
다섯째, 네팔을 변화시키는 지극히 “작은 자 섬김” 사역
네팔 사역에서 내가 받은 복 중, 하나는 한국 천안 나사랫 대학 재활학과에서 네팔 현지 논문네팔 카스트사회에서의 장애인 인식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현장을 깊이 연구하게 되었으며 네팔 장애인 연구에 참고자료가 되었다. 이 학위는 사역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특수교육담당자 양성기관 설치 참여, 신학교 운영과 대팔 대지진 복구, 빈곤 아동 교육지원 등 사업을 하고 있다.
한편 그때까지 네팔에 특수교육 전문가와 교사들을 양성하는 기관이 없어, 대학에 특수교육과를 여는 것이 절실하였다. 2014년 국립창원대 사업 제삼 세계 보통교육지원프로그램이 우리나라 교육부에서 네팔지원 승인을 받았다. 그때 나는 네팔 현지 코디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2014년 시작하여 국립 트리부반대학에 박사과정까지 특수교육과가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 4개 대학교 특수교육 과에서 인재양성이 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팀과 함께 여타 많은 연구 중 네팔 특수교육 통합교육 프로그램 연구 (Nepal Special Education Integration Program)가 채택되어 네팔에서 시행되고 있다.
네팔의 대지진(진도 7.9)이 2015년에 있을 때, 나는 네팔선교사회 회장이었는데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통합) 교단의 지진헌금 15억과 교회 등 헌금으로 긴급 구호와 복구 사역을 주도하여 학교, 교회복구, 쉘터 건축을 하므로 네팔 정부와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을 선교사가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네팔 장로회신학대학교(Nepal Presbyterian Theology Seminary)를 운영해 오면서 아세아신학연맹에 가입하는 등 신학교 재건사업과 네팔 남부지역의 언약신학교(Nepal New Covenant Collage) 건축에도 참여하였다.
한국 밀알복지재단이 SBS 방송 희망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네팔 탕곳 지역의 4개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빈곤층 아동들에게 12년 동안 중식, 학용품, 생필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 봉사는 빈곤층 아동들의 출석률을 높여 학교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 바가 있다. 이 일로 나는 네팔 정부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나의 네팔에서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서의 섬김(마태 25장 31절~46절)과 장애인 사역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 영광을 나타내시기(요한 9장 1절~3절) 위한 것으로 힌두교가 주종을 이루는 네팔(카스트-Caste 윤회-Life-Recycle)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2024년 5월 5일(일)
Ⓒ 2024 J. K. Kim
김정근 선교사 네팔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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