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etta S. Hall MD & Sherwood Hall(로제타의 아들 1893년 생) 1911년 촬영
149. 로제타 홀 선교사의 후예들
우리나라 개화기인 19세기 말인 1890년 10월 13일에 제물포(인천)를 통해서 조선 한성에 들어온 25세의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은 미국 북감리교 파송 의료선교사이다.
로제타 홀 선교사는 미국 뉴욕주 출신으로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Pennsylvania; WMCP), 현재는 드렉셀대 의과대학(Drexe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을 졸업하고 조선에 파견되었다. 로제타 홀 선교사에게 맡겨진 첫 임무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여성병원인 보구녀관(普救女館,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원장(1890~1893)이었다.
Rosetta S. Hall MD과 평양맹아학교 졸업생
로제타 홀 선교사는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 교육을 처음 시작했고 특히 뉴욕 포인트를 기반으로 한 평양 점자(New York Point, 4점식)를 한글 창제(創製)하여 시각장애인들의 문해를 위한 기본 도구를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1909년에는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학교 교육을 열어서 신교육을 받게 하였다. 평양맹아학교(平壤盲啞學校)는 1894년에 시각장애 교육을 열고, 1909년에는 청각장애 교육을 열어 한국 특수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평양맹아학교 졸업생이 결혼해서 두 딸을 두었다.
로제타 홀 선교사는 의료선교사이다. 당연히 한국의 여성 진료와 여성을 진료할 수 있는 조선인 여의사 및 간호사와 약제사 등의 양성은 로제타 홀 선교사가 놓을 수 없는 과제였다. 이런 열망은 미국, 중국의 의과대학에 유학시켜서 여의사를 양성 했으며, 일본 강점기의 관립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등을 통하여 여의사 양성을 지원하다가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朝鮮女子醫學講習所, KWMI)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여자 의사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이때는 로제타 홀 선교사가 63세이고 한국 선교 38년째이니 그의 선교 말년의 일이었다.
Rosetta S. Hall MD이 설립한 조선여자의학강습소(KWMI) 첫해 입학생 1928년 9월 4일
로제타 홀 선교사는 1928년에 서울 종로구 창신동 소재 루이스 홀에서 개교했는데 이 건물은 미국 북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WFMS)의 선교 활동 거점이었다고 한다. 로제타 선교사는 6회 입학생(1933년)까지 보고 한국 선교 43년, 68세로 은퇴하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Rosetta S. Hall MD의 1933년 은퇴 환송식 만찬을 마치고 조선여자의학강습소(KWMI) 교직원과 재학생이 한강 변에서 기념촬영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현재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존재한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개교일은 1928년 9월 4일이 되고 2028년이면 개교 100주년이 될 것이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로제타 홀 탄생 16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있었다. 로제타 홀 선교사의 시각장애인 사랑과 교육이라는 주제로 발표해 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기꺼이 다녀왔다. 이 심포지엄을 주최한 기관은 “로제타 홀 기념사업회”였다. 이런 단체가 있었다는 자체를 몰랐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2025년 11월 27일(목)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개최된 로제타 홀 탄생 160주년 기념 심포지엄 공고 포스터
고려대학교는 김성수 선생이 설립하신 민족학교로 널리 알려져 있고 기독교가 바탕이 된 학교는 아니다. 그런데 로제타 홀 선교사가 설립하신 조선여자의학강습소(KWMI)가 여러 경로를 거쳐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 그래서 로제타 홀 선교사의 기독교 정신이 살아있을까? 늘 염려하고 있었다.
이런 우려는 기우였다. 이번 심포지엄을 주최한 “로제타 홀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윤환 교수, 회장 신현주 교수)”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안암병원에 원목실에 원목(이경희 목사)이 있어서 환자를 돌보고, 의과대학 안암병원에 신우회, 고대 의대 간호대 기독학생회, 아프리카미래재단 등이 있어서 제삼 세계의 복음화와 사회부흥을 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포지엄 전에 안암병원 원목실에서 좌로부터 김윤환 이사장, 이은일 교수, 이경희 목사, 박건우 교수, 김정권 교수 Ⓒ Y. W. Kim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고대 의대 교우회 의료사회봉사회 소개도 있었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선교 보고와 캄보디아 단기선교 보고 등이 있어서 우리가 어두운 시절에 빛을 받았던 것 같이 그 빛을 널리 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썩으면 수십 배의 결실을 걷는다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참된 말씀이었다.
졸업생으로 의사가 된 분 중에서는 로제타 홀 선교사의 영적 세계를 이어받아서 오지에 의료선교사로 가신 분도 있다고 하니 로제타 홀 선교사가 은둔의 땅, 이 조선에 심은 사랑은 겨자씨와 같이, 누룩과 같이 퍼져나가서 온 세계를 밝히 비치는 빛으로 영원히 존재하고 꺼지지 않을 것이다.
심포지엄 장면 Ⓒ Y. H. Kim
나는 이날 로제타 홀 선교사가 친필로 쓴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책 제작 경위 설명문” 원본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로제타 홀 기념사업회에 증정했다. 이 자료는 부본으로 낱장에 기록한 것인데 또 다른 하나는 점자책 표지에 기록되어있다. 이 점자책은 대한민국 문화재청에서 2022년 1월 5일 국가 등록문화재 제821호(등록일: 2022년 1월 5일; 명칭: 로제타 홀 한글 점자 교재)로 등록되었다.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 제작한 한국 최초의 점자책 제작 경위설명문(원본) 액자와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 기념엽서(당일 소인된 것) 1매를 로제타 기념사업회장 신현주 교수에게 증정했다. 화면에 비친 영상의 설명문은 점자책 표지에 로제타 홀 선교사가 쓰신 것이고, 이 자료는 부본으로 한 장 별도로 쓰신 것이다. Ⓒ Y. H. Kim
내가 소장했던 마지막 원본 자료이다. 로제타 기록물과 사진은 모두 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과 점자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의 파일은 모두 로제타기념사업회에 보냈다. 앞으로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활용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