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가 1857년에 발표한 작품 “이삭 줍는 사람들”우리는 화폭을 읽어 보면 좋겠다. 밀레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 자료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2%AD_%EC%A4%8D%EB%8A%94_%EC%97%AC%EC%9D%B8%EB%93%A4
150. 이삭 줍는 사람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되새길 때마다, 지난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리고 그 삶이 오로지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나의 삶에서 스스로 노력하고 수고한 부분은 아주 미미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누린 것들은 참으로 풍성했다.
나의 노력은 농부의 수고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저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서 이삭을 줍는 사람의 수고와 같았다고 생각한다. 농부에게는 농토가 있고, 철 따라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가꾸고 거두는 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자연이 결실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사과나무 꽃, 꽃과 사과라는 열매는 오로지 하나님의 섭리로 주시는 은혜의 열매이다. Ⓒ 2026 J. K. Kim
나는 이런 농부의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가을 들녘에서 농부가 후하게 남겨준 이삭을 주웠을 뿐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결실을 허락하셨다는 은혜의 섭리가 있고, 농부가 넉넉히 흘려준 마음이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은혜다.
사과나무 꽃, 꽃과 사과라는 열매는 오로지 하나님의 섭리로 주시는 은혜의 열매이다. Ⓒ 2026 J. K. Kim
'이삭줍기' 하면 우선 성경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그 며느리 룻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남편을 여읜 룻이 홀로 된 시어머니를 따라 모압 땅(요단당과 사해 동쪽의 땅)에서 가나안 땅 베들레헴(사해 서쪽의 땅, 예로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으로,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나오미는 본래 베들레헴에 살았으나 기근을 피해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이주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이 결혼했으나 그들마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는다. 베들레헴에서 떠난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둘째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강청(强請)하여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튜립은 황량한 4월의 들녘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런 형상과 색채를 인간이 표출할 수 있을까? Ⓒ 2026 J. K. Kim
귀향한 고부(姑婦)는 생계가 막막했다. 결국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들판으로 나간다. 이는 극히 가난한 이들이 택할 수밖에 없는 고된 노동이었다. 당시 이방 여인 룻이 지극한 효부(孝婦)라는 소문은 이미 베들레헴에 널리 퍼져있었다.
룻이 보아스라는 부자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 주인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이삭을 넉넉히 흘려주고 마실 물도 챙겨주라고 일러준다. 덕분에 룻은 조금 더 수월하게 이삭을 주울 수 있었다. 이후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는 성경 역사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튜립은 황량한 4월의 들녘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런 형상과 색채를 인간이 표출할 수 있을까? Ⓒ 2026 J. K. Kim
이삭 줍는 여인과 농부의 관계, 그리고 농부의 후한 인심은 가난한 여인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룻은 농부의 은혜를 입어 비로소 삶의 풍성함을 맛보았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만이 기쁨과 감사를 누릴 수 있다. 반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믿음이 없기에 늘 두렵고 만족함이 없으며, 불평이 앞서 그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다.
이삭 줍는 여인의 이미지는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가 1857년에 발표한 작품 “이삭 줍는 사람들”을 통해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주계급 즉 상류계층은 이 여인들을 단순히 곱게만 바라보지 않았다. 그림을 보면 이삭을 줍는 세 여인 저 너머로 산더미 같은 노적가리와 일꾼들, 그리고 말을 탄 감독관이 보인다. 풍요로운 배경과 대비되는 여인들의 모습은 하층 노동자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지주들의 비판을 받을 개연성(蓋然性)이 충분했다.
밀레는 당시 프랑스 농촌 사회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노동의 신성함과 신앙심을 내면화한 "만종"같은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프랑스 혁명 직후의 사회적 갈등 속에서 빈곤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1859년 작인 만종(晩鐘)은 삼종기도(Angelus)를 올리는 경건한 모습이다.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던 작품이다. 자료 출처: blob:https://gemini.google.com/ee19c512-100c-487d-8c06-fd122ec2b502
오늘 내가 이삭 줍는 사람을 이야기하며 룻의 기사나 밀레의 그림 속에 담긴 종교적·사회적 문제를 깊이 파헤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삭 줍는 행위'가 나의 삶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을 뿐이다.
벚꽃 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남쪽 지방의 3월 말경 벚꽃이 한창이다. 자연의 섭리를 가슴 깊이에 받아드리는 메시지이다. Ⓒ 2026 J. K. Kim
이삭을 줍는 이는 대체로 가난한 이들이었겠지만, 그 또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연한 노동의 삶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삭을 줍는 행위는 일시적이며, 조직적이거나 계획된 일은 아니다.
내가 나의 삶을 '이삭 줍는 삶'에 비유한 것은, 노력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나를 풍성하게 채우신 창조주의 은혜와 이웃(농부)들이 베풀어준 후한 인심이 있었음을 고백하고자 함이다.
벚꽃과 호수; 우리나라 남쪽 지방의 3월 말경 벚꽃이 한창이다. 자연의 섭리를 가슴 깊이에 받아드리는 메시지이다. Ⓒ 2026 J. K. Kim
요즘은 농촌에서 이삭 줍는 풍경을 보기 어렵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면서 옛 정취와 함께 이 용어도 젊은 세대에게서 잊혀 가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의 들녘에서 주워 올린 은혜의 이삭들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