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양과 염소

profkim 2021. 2. 21. 17:18

 

믿음이란 기초위에 모든 것이 건설됩니다.

 양과 염소, 우리에게는 비슷한 짐승이다. 가축에 대해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단상으로 쓰고자 하는 양과 염소는 아주 대칭되는 개념으로 써야겠다.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 고난주간 셋째 날 화요일 낮에 성전 강화를 하시고 저녁에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감람산 강화를 하셨다. 이때 우리의 삶의 중요한 지표를 강화하셨다.

 

  내러티브의 구성은 마지막 날의 심판이다. 양으로 비유된 사람들은 심판장 우편에 서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심판장이 복 받은 자들이여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으라고 하면서 이유를 설명하는데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른 쪽의 양들은 나는 그런 일을 한일이 없었다고 부인한다. 심판장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 니라라고 일러주신다. 왼쪽에 서있는 염소들에게는 이와 정반대의 말씀을 하신다.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 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보내진다. 사람들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심판장에게 한 것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심판장에게 행한 것이다. 이 세상에 생존하는 모든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곧 예수님에게 드린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부모, 형제자매, 이웃,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섬기고 나누면 그것이 곧 주님께 드린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사랑하라 이르신다. 크고 위대한 일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섬기면 그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런 삶은 구원을 얻은 의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양식일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1960년대 성배(聖杯, Grail, du Graal)라는 영화를 본 일이 있었다. 영화 제목 외에 영화관련 정보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유럽의 중세말기에는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 사용한 포도주 잔에 대한 신비주의적 가상 내러티브가 많아서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곤 하였다. 20세기에도 성배에 대한 영화는 꾀나 여러 편이 제작되기도 했었다. 내가 본 영화는 유럽의 귀족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성배를 찾아나셨다는 이야기이다.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이제 이 귀족에게도 하루 먹을 돈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한 거지가 깡통을 내 밀면서 구걸을 한다. 이 귀족은 한 끼 더 먹고 죽으나 안 먹고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남은 돈을 깡통에 넣는다. 그 순간 거지의 깡통이 성배로 바뀐다는 픽션 이다.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에 관하여 라는 아주 짧은 글이 있다. 자신이 타자로부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는 글이다. “당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 할 것이라 하였다. 소자를 포함해서 내가 만나는 모든 분이 나의 VIP라면 그의 삶은 섬기는 삶이 될 것이다.

 

  이런 행위가 중요한 것 같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 정신적(영적) 가치가 중요하다. 섬기고 나누는 행위는 믿음과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한다. 그 실체는 무엇인가? 믿는다는 의미를 제대로 설명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믿음은 하나의 가치체계이다. “믿음의 눈을 통해서 사람을 보고, 일을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고, 자연 환경을 보고, 사회를 보면 판단이 달라진다. 부정적으로 보던 어제와 오늘은 전연 다른 세상이 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데 사람은 믿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허상일 것이다. 교회생활은 열심히 참 잘하는데 가정생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이 엉망이라면 믿음 생활의 진수(眞髓)를 모르는 사람이다.

 

  믿음이 없으면 사랑의 행위는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곧 생활이다. 믿음의 터 위에서 살며 믿음을 실현하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사랑의 행위가 바로 이웃에게 행하는 섬김과 나눔이 될 것이다. 이들이 오른 쪽의 양들이다.

 

  예수님의 이날 강화에서 세 가지 알레고리를 주셨다.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 매일 성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매일 충성스럽게 살라는 메시지, 그리고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라고 하신다. 이 세 가지 가르치심은 동시적으로 이해하여야겠다. 즉 우리의 삶에서 매시간이 나의 종말로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매 시간 충성(faithfull)하므로 사람을 섬기라는 강화이시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긴다는 대 원리를 알게 된다. 교회 안에 머무는 삶이나, 가정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의 가난하고 소이된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포함해서 나와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행하는 것이 곧 주님께 행하는 것임을 배운다. 내가 만나는 모든 분은 나의 VIP이고 주님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른 쪽의 의인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2021217

2021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