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권위(權威)와 협동(協同)

profkim 2020. 12. 15. 15:08

 

 

 

 

                              권위(權威)와 협동(協同)

 


 우리는 탈현대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수십 년 전에 비해 놀라운 변화를 겪으면서 이를 산전벽해(山田碧海)의 변혁이라 했다. 또 매일의 삶을 통해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에 비해서 우리의 사고의 틀은 그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정치, 교육, 삶의 방식 등 실 생활의 변화가 문제된다. 비교적 기업은 급속하게 대응하고 있는 편이다.

 

 우리는 농업사화를 거쳐서 산업사회를 살아왔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하게 살 던 사람이 산업사회 대량생산을 통해서 물질적 부요를 누리게 된다. 이는 기계화, 자동화에 의한 대량생산의 선물이었다. 산업사회 체제아래 사회체제와 교육체제가 형성되고 그에 부응하는 적응방식을 사람들은 체득하고 익숙하게 되었다. 산업사회를 유지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교육이었다.

 

 산업사회체제는 직선(直線)으로 표현한다. 상하관계, 명령-수행관계, 관료적 위계체제를 중심으로 한다. 사람은 옆 사람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상하관계에서 공장의 노동자로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명령-수행은 기본이 되었고 교육은 생산 인력을 길러내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읽기, 쓰기, 말하기, 샘하기는 생산노동자에게 필수요소였다. 이때 상급자나, 경력이 많은 사람이 권위자(權威者)이고 이들이 지시 명령을 하면 하급자들은 명령 수행을 하는 체제가 된다. 이때를 권위주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근대 교육은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권위주의적 이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은 그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며 순종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람 사이에는 경쟁적 관계가 형성되었고 타자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등식이 조성되었다. 이런 풍토는 교육 뿐 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었고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양적으로 충족한 사람들은 물질로만 만족할 수 가 없었다. 그 다음 그들은 개성(個性), 질적 삶, 감성(感性), 행복 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이에 부응한 패러다임은 주관적이고 거시적 가치관을 불러오게 되고, 오늘 정보사회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소위 혁명이라 할 만한 변화이었다. 탈현대라고 하는 정보사회는 원(員)으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동은 직선사회에서 원의 사회로 이동을 의미한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은 창의성이다. 개성, 질적 삶, 감성,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부응 하려면 매우 다양한 사회를 조성해야한다. 상업사회에서 두 사람이 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문제가 없었는데 정보사회인 오늘 누구와도 같은 옷을 입으면 좋아하지 않는다. 개성시대이다. 자기만의 삶, 자신의 느낌이 중요하고, 자신이 행복하면 객관적으로 어떠하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협동(協同; cooperation)이다. 협력(協力; collaboration)과 협동은 유사한 단어이지만 나는 여기서 협력을 좀 더 구체적 행위로, 협동을 좀 더 추상적이고 사회적 개념으로 구분지어 쓰고자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산업사회가 객관적 사회라면 정보사회는 주관적 사회이다. 생산체제가 바뀌었고 대량생산을 위한 생산라인은 소량생산을 위한 여러 개의 협동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협동체제 아래서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필수요소는 협력일 것이다.

 

 탈현대 정보사회는 공산품의 생산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체제라 해도 좋을 것이다. 다품종소량생산이란 질적 사회가 이루어야할 과제이었다. 그래서 팀으로 구성된 사람들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로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각자는 창의적 사고를 통해서 전체 팀이 이루고자하는 목표에 자기의 역할을 창출해 내야하고 전체 목표와 조화를 이루어 나아가야했다. 그래서 팀은 토의를 통해서 전체 목표가 가장 효율화되도록 회의와 수정을 반복하게 된다. 산업사회에서 개인에게 요구하지 않던 창의성을 정보사회에서는 강력히 요구하게 되었고, 협력할 수 있을 때 더 큰 창의적인 목표를 수행 할 수 있게 된다.

 

 협동이나 창의성은 객관적 능력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다.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自信), 자애(自愛), 자존(自尊)과 같은 정신적 자세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수용하는 수렴적 사고가 아니라 자신의 속에서 발산되는 확산적 사고를 요구하게 된다. 정해진 틀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 말이다. 나는 이를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떠오르는 사람” 이라한다. 여름철에 뭉게구름을 보라, 그 얼마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가!

 

 정보사회는 연령의 경계가 없어졌고, 연령은 결코 권위가 될 수 없다. 또 경력이 권위가 될 수 없다. 상하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상사라는 권위도 없어진 사회이다. 평등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집단이어야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갈 것이다. 성간(性間)의 역할도 없어졌다. 가정과 직장의 경계도 없어졌다. 이 문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잘 들어났다. 많은 직장인들이 재댁 근무를 하면서도 회사는 불편을 느끼지 않는 곳이 많다.

 

 시대는 변했는데 우리는 아직 산업사회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코 정보사회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변해야한다. 국어, 수학이 아직 필수 과목으로 남아있다. 시대를 모르는 상황이다. 필수로 남아야할 이유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오히려 예체능 실과가 더 중요한 시대임을 모르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변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 예로 교회체제를 들어 본다. 교회야 말로 전형적 관료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라는 개념은 1인 목사 밑에 여러 명의 부목사가 지시를 받아가며 그 활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 하위 교회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이 체제에서 한 사람이 무능하면 그 교회는 결코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교회가 교회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 행적담당 목사, 설교담당 목사, 교육담당 목사, 음악담당 목사, 사회복지담당 목사 등으로 구성되어 협동체제로 운영된다면 각자가 창의적 역할 수행을 할 것이고 전체 교회목표에 부응하도록 토의와 조정을 거듭하여 목표수행을 한다면 생명력이 나타날 것이다.

 

 

 

 산업사회는 주로 기능주의가 지배해온 사회이고 병리이론이 원용된 사회이다. 여기서는 경쟁이 기본이었고 사람에 따라서 성공하는 사람과 사회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실패자가 되었다. 이 실패는 사회의 준거에 의한 것이지 한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권위주의 시대의 사회현상이다.

 

 정보사회는 인간주의 내지 탈 패러다임시대이다. 주로 생태이론이 지배해 왔다. 모든 사람은 자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은 동등한 사회 일원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위해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타자와 협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이 상황을 위 그림으로 설명한다.

 

 권위시대로 일컫던 산업사회는 갈등과 경쟁이 주를 이루었던 사회이고 승자와 실패자가 극명히 나뉘는 사회이고 정보사회는 협력과 협동이 주된 사회이고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되는 시대이다.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탈현대 정보사회에 부응한 정치, 교육, 경제, 행정, 복지가 이루어지는 능력 있는 사회를 갈구한다.

 


2020년 12월 15일(화)
Ⓒ 2020 by J. K. Kim

 

 

'단 상(斷 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매로 나무를 안다.  (0) 2021.01.23
메리 크리스마스  (0) 2020.12.19
질 시(嫉視)  (0) 2020.12.11
시 선(視線)  (0) 2020.10.27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0) 20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