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55. 길 (道)
초원(草原)에 길(道 the way)이 있다. 이 길은 동물들이 다녀서 만들어진 길이다. 무리 지어 반복적으로 다니면 길이 난다. 길을 아는 동물은 무리의 대장이 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경륜이 싸여야 길을 알게 되고 무리를 이끌게 된다. 그래서 이 지도자는 무리의 생명을 책임지게 된다.
동물에게 길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동물이 이동하는 중요한 이유는 먹이와 물이다. 그러니 이 길은 생명선과 같다. 잘못 길을 인도하면 무리 전체가 죽음을 맡게도 될 것이다. 길은 동물에게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누우 수십만 마리를 이끄는 대장은 그 책임이 막중할 것이다. 그들은 강(江)도 건너야 한다. 누우 대장은 건너기 가장 쉬운 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식자들도 그곳을 알고 있다. 이런 강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배고픈 악어는 이때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누우의 처지(處地)이다. 이들은 강을 건너기 전 강둑에 모여 선다. 그리고 굶주린 악어 떼를 피해서 안전하게 강을 건널 시기를 가늠한다.
대장 누우가 어느 지점을 도강지점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희생 누우 수가 결정된다. 왜? 이들은 강을 건너야 하는가? 그 넘어는 새로 자라나는 초지가 있기 때문이다. 길에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 하는 것은 그 뒤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할머니 코끼리가 무리를 이끈다고 한다. 이 코끼리는 먹거리와 마실 물이 있는 곳을 알고 있기에 길을 인도한다. 길을 아는 자 그는 곧 무리의 대장이 될 것이다. 가장(家長)이 길을 모르면 가족이 고생하고, 대통령이 길을 모르면 국민이 곤란에 빠진다.
로마에는 성벽이 없었다고 한다. 성벽이 없어도 방어할 자신이 있다면 성벽은 필요 없을 것이다. 또 고대사회에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길을 잘 열면 공격하기도 쉽지만, 적의 침공도 쉽게 받게 된다. 그러나 길은 물류가 흐르는 통로이다. 이로 인해 로마는 천년 제국을 이룰 수 있는 한 요소를 갖춘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즘 도로건설 기술이 선진화되어서 온 국토가 그물망처럼 고속도로로 연결되어있다. 큰 고속도로로 남북을 잇는 고속국도 6개(15번 고속국도∼65번 고속국도), 동서를 잇는 고속국도 6개(10번 고속국도∼60번 고속국도)로 동서남북을 연결하고 서울·부산 고속도로(1번 고속국도)가 있고 수없이 많은 지선(支線)도로를 갖고 있다. 이런 도로가 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축조기술은 놀랄 만하다. 아직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그물망처럼 건설된 도로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기반이 될 것이다.
길은 잘 축조되어있지만, 길의 구조, 길의 활용방법 등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동물들에게 길이 생명선인 것같이 사람에게도 길은 생명선이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산업혁명 시대 지도를 아는 사람이 세계를 제패했다면 오늘날은 길을 갖고 잘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성경에서 세례 요한이 요단강 변에서 세례를 베풀고 회개를 외쳤다. 그때 요한은 그의 소명을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 곧 광야의 소리가 있어 주의 길을 곧게 한다는 점과 이 기쁜 소식은 모든 육체가 듣고 보게 될 것을 강조한다. 곧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다(눅3:16).
여기서 말하는 길은 이사야가 예언한 사40:3, 4의 내용에서 밝힌 대로(大路)를 예비하는 사람이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언덕과 산이 낮아져서 대로가 열린다. 요새 말로 하면 고속도로가 열리는 것이다. 요한의 선언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 정신세계의 삶에 고속도로가 열린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로 달리면 얼마나 쉽겠는가! 이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길을 예비하러 오신 분이 세례 요한이다.
사람의 삶이란 골짜기도 지나야 하고 높은 산도 넘어야 한다. 그 도정이 무척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골짜기를 높이고 산을 깎아내려 고속도로를 개척한다면 얼마나 쉽게 가겠는가.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축조기술을 보면 골짜기에는 육교(陸橋)를 놓고 산은 터널(tunnel)을 뚫어서 평탄한 길을 만드니 얼마나 기발한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삶의 평탄한 길 즉 고속도로를 주어 평안하게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우리 삶의 고속도로는 곧 “믿음”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속도로를 주신 것이다. 높은 산이 낮아지고 깊은 골짜기가 메워져서 평탄한 길을 여는 것이다. 산을 넘고 골짜기를 건너간다는 것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데 믿음이란 대로로 가면 아주 쉽고, 편안하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된다. 물리적 길이 있는가 하면 정신세계에 길이 있다. 그 길을 알면 생명으로 연결된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라 하셨다. 그 길이 진리이고 이 진리가 곧 생명이라 하셨다. 이는 하나이다.
믿음의 실현 가치는 “사랑”이다. (갈5:6) 고속도로에는 자동차가 달려야 한다. 달리는 자동차가 있어서 그곳에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리는 자동차는 길이 있음을 실증(實證)하는 것이다. 길이 없는데 자동차가 달린다면 그것은 허상(虛像)이겠지, 길이 있는데 자동차가 달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空虛)이겠지, 믿음이 없는데 사랑의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허상일 것이다. 믿음은 있는데 사랑이 없으면 그는 공허한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믿음에서 연유한다. 믿음이 길이고 사랑은 그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는 길에 관한 것이고 그것이 곧 생명이다.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이다.
나는 젊은 세대에게 길을 배우라 권고한다. 먼저 눈에 보이는 길을 배워야 한다. 길이 만들어진 원리, 길의 구조, 길의 효율적 이용방법을 알고 타자에게 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 정신세계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배워야 한다. 성경에도 길이 있다. 고속도로가 있고, 국도가 있고, 지방도로가 있다. 마을 길도 있겠지,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잘 가르치게 될 것이다.
2022년 6월 18일(토)
Ⓒ 2022 J. K. Kim
[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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