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57. 오 늘(today)

profkim 2022. 7. 16. 10:24

 

 

미국 NJ 허드슨강변이다. 이 장면은 우주역사상 한번만 존재한다.

 

                     [단상(斷想)] 57. 오 늘(today)

 

 

 

  삶의 여정(旅程)에서 오늘을 수없이 만나고 오늘의 연속으로 살아간다. 이 단상을 쓰면서 제목을 종말(終末)이라 하려 했다. 제목이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 접었다. 그리고 오늘(today)이라는 제목으로 고쳐 쓰기로 했다. 나에게 오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이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일 년이 되고, 한평생이 된다. 그 오늘은 나의 한평생에서 어떤 가치를 지닐까?

 

  어저께, 오늘과 내일은 과거, 현재와 미래이다. 어저께는 지나갔으니 내 날이 아니다.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역시 내 날이 아니다. 현재, 오늘만이 내 날이고 실존적 자기를 실현하는 날이다. 내가 사는 것은 바로 오늘이고 오늘이 지나가면 내 전체 삶 가운데 하루, 오늘은 영원히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내가 소비한 시간은 곧 내 생명을 쓴 것이라 할 것이다. 시간을 사용한 것은 생명을 쓴 것이지, 그러니 소중한 것이고 내 생명에 부응할만한 의미 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를 시간의 종말이라 한다.

 

벚꽃이 피어서 봄을 알린다. 벚꽃은 한 순간의 자기표현이다.

  육신의 호흡(呼吸)이 끝나면 죽었다고 한다. 이는 개인의 종말이지만 개인의 종말은 시간의 종말 연속 선상에서 일어나는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죽음의 개념을 신체적 죽음에서 찾기 때문에 시간적 종말에 관한 심각한 사념(思念)은 없게 된다. 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흐름이겠지, 죽음을 자연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지, 그렇기 위해서 오늘의 삶이 자연스러워야 할 것이다. 오늘이 나에게 최고의 날이고, 의미 있는 날이고, 가장 가치 있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개화하는 벚꽃과 진달래는 왜 모양이 다를까?

  1960년대 카스터 장군”(Custer of the West, 1967)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미국 서부 개척 당시의 가장 치열했던 원주민(native, 이들은 Indian이 아니다)과 전쟁 이야기이다. 카스터라는 사람이 잔인한 전쟁을 치른 이야기이다. 이때 원주민 추장이 앞장서서 나가면서 외친 소리오늘은 죽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라는 대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 온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삶의 철학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이 죽어도 좋은 날이라면 그는 달관(達觀)했다고 볼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은 대부분이 몽골족(Mongolian)이다. 이들에게는 지금도 몽고점이 있다. 이들은 기마 족이기 때문에 빙하시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문명 즉 북미(北美) 원주민을 위시해서 아즈택(Azteca), 마야(Maya), 잉카(Inca) 문명은 모두 음양(陰陽)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음력(陰曆) 달력을 써왔다. 동양적 사고가 기반이 된 문명이다.

 

봄에 개화하는 조팝나무 꽃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낼까?

  우리는 준비(準備)란 말을 자주 쓴다. 준비해야 한다. 노후를 준비하고, 입시를 준비하고, 입사(入社)를 준비해야 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다가올 날을 보장받고자 한다. 그러면 오늘은 내일을 위한 수단이 된다. 이런 준비가 내일을 보장해줄까? 이렇게 산다면 평생 준비하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자기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목적적이고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해야 한다.

 

  오늘을 준비로 사는 사람과 자아실현의 날로 사는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항상 쫓기고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걱정하는 반면 자기를 실현해 가는 사람은 생동력이 넘치고 자율적이고 평안을 누린다. 이런 사람에게는 항상 성취감이 있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연인으로 살아가겠지, 스스로 자기 삶의 가치를 설정하여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 수행한다면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개나리꽃은 꽃이 진 뒤에도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준비는 의미가 없겠지, 그러나 오늘의 자기실현은 그 자체가 내일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 오늘을 잘 산사람은 내일도 잘 살 준비가 이미 그속에 내재(內在)해 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생의 최고의 날이 언제입니까? 질문을 받는다면 서슴없이 오늘 이 시간입니다. 라고 답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결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게 된다. 그래서 양적 성취를 추구하게 된다. 물론 세상에 사니 비교하게도 되고 이웃의 상황이 나를 자극하기도 하겠지만, 내 인생은 내 것이지 타자의 것이 아니다. 자신이 흔들리는 것이 내적 자아가 확고하지 못해서이다. 내 인생을 확고히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불도화의 최고의 날은 언제일까? 꽃필때일까?

  어느 날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오늘을 최고의 날로 살아가는 지혜가 있으면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의 죽음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는 없을 것이고 평화롭고 극히 자연스럽겠지, 물리적 죽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자체가 죽음의 과정이다. 그래서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주간 십자가에 달리시기 3일 전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키신 일이 있다. 많은 강화를 하셨지만, 오늘을 사는 지혜에 관한 몇 가지 강화를 하셨다. 앞으로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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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