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떠 남
새벽에 비가 내렸다. 올해 장마철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으나 오늘 새벽에 내린 비는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어 날씨도 무척 시원해졌다. 아침 일찍이 서둘러서 창녕에 갈 준비를 하였다. 수일 전 창녕에 계신 지인(知人; Y 교장)으로부터 8월 초에 서울로 이사를 하시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어쩌나 하든 차에 아무래도 떠나시기 전에 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서 점점 늙어가는 세대가 하나둘 줄어들고 이런저런 이유로 만날 수 없게 되어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창녕에 있던 더케이서드에이지(silver town)에 내가 6년을 사는 동안 많은 훌륭한 분들을 만났고 Y 교장은 그중의 한 분이다. 다른 분들은 다 떠나서 지금은 만날 수 없다. Y 교장이 떠나시면 더케이서드에이지 거주하시던 분중에서 창녕을 마지막으로 떠나시는 분이 될 것이다.
경산에서 청도 가는 길은 국도가 잘 조성되어 고속도로와 같아 쉽게 접근하였고 청도서 창녕은 20번 국도로 접속하여 갔다. 가는 길에 비티재와 방골재를 넘게되는 데 경관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비온 뒤 드라이브는 싱그러움을 더했다. 비티재를 넘으면서 목백일홍이 만개하기 시작하여 저절로 시흥(詩興)이 돋았다. 무척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7월은 목백일홍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방골재를 넘으면서 더케이서드에이지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페인트 칠을 한 것이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빈집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워서 더케이서드에이지에 들렸다. 현관 앞에는 줄로 출입금지 라인을 쳐 놓았고 건물이 폐쇄되었음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현관 앞에서 잠시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캄캄했다. 현관문에 방문객은 안내소로 연락하라는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를 넣었더니 직원이 나와서 보니 전에 서드에이지 근무하던 직원이어서 안으로 안내를 받아서 방제실로 갔다. 전 방제실 직원 6명이 그대로 근무를 하며 건물을 관리한다고 하였다.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서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주차장에는 프라임요양병원 관계 차들이 많이 주차되어있었고 현관 앞은 출입하는 사람이 없어서 적막감이 서려 있었다. 우리가 많이 이용했던 버스는 기약 없이 서 있었다. 직원들의 말로는 현재로는 아무 대책이 없다 하니 아쉬움을 더할 뿐이었다. 입주민이 가꾸던 텃밭은 직원들이 농사를 지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요양병원은 여전히 잘 운영하는 것 같았다. 겉모습으로는 비교적 활발해 보였다. 캠퍼스를 대강 둘러보고는 떠나서 창녕읍 내에 있는 코아루 아파트로 갔다. 도착하니 Y 교장 내외분은 벌써 현관에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반가운 만남이었다. 팔십 대 후반, 불편하지만 이동하실 수는 있으니 다행이다. 식당에서 오찬을 하면서 환담(歡談)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자연 지난날들의 회고담이 많았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 부모에 의탁해서 살게 되고 장년에는 스스로 자립하여 살지만, 노년에는 자식에게 의지하여 산다고 한다. 세태가 달라져서 그 형태가 바뀌었다고 해도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케이서드에이지에서 13년을 사셨다고 한다. 회사가 문을 닫고 일단 창녕에 눌러앉으시려 했는데 사정이 바뀌어서 서울 아드님이 사시는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떠나는 아쉬움을 말로 다 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노령인구는 증가하고 가족제도는 단위 가족 중심으로 변해서 자식과 같이 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노년을 위한 사회제도는 아직 제대로 정착되어있지가 않다. 일부 노인들을 위해 세워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피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며, 만들어진 제도가 질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찬 후에 Y 교장 내외분과 함께 서드에이지 캠퍼스를 차로 한번 둘러보았다. 이제 떠나시면 언제 다시 사드에이지를 보시겠는가! 가는 길과 캠퍼스를 둘러보는 동안 내외분은 많은 회상(回想)의 말씀을 하셨다. “그땐! 그랬는데”, 아쉬움의 회한(悔恨)이라 할까, 아쉬움이 많은 시간이었다. 지난 몇 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Y 교장이 사시는 아파트에 모셔드리고 화왕산을 한 바퀴 휘둘러서 돌아오면서 인생은 무엇일까? 노년은 어찌 살아야 지혜로울까? 가장 자연스러움은 어떤 것일까? 파란 하늘이 드높게 보인다. 가을을 재촉하는가 보다.
2022년 7월 23일(토)
Ⓒ 2022 J. K. Kim
더케이서드에이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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