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6월이 오면 생각나는 일
아련히 들려오는 포성(砲聲) 그리고 길거리에는 메가폰을 잡은 군인들이 “군인들은 즉시 귀대(歸隊)하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창한 날씨의 일요일이었다. 우리나라에 비극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이때 국방군은 일요일엔 외박하던 때이다. 그러니 군인들이 영내(營內)에 없었고, 메가폰을 잡은 군인들이 외박한 군인들의 귀대를 독려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2차대전을 치르기는 했어도 직접 포화 속에 싸이지는 않았다. 일본 본토에는 비행기 폭격(爆擊)이 극렬했지만, 한반도에는 그런 폭격은 없었다. 하루이틀사이에 포성(砲聲)은 더 가까워지고 커졌다. 육지에서 들리는 포성을 듣는 일은 처음이었다. 포성이 커질수록 공포에 쌓이게 되었다. 북쪽 하늘에서는 마른번개가 쳤다. 이는 분명 밤의 포화에서 생긴 섬광(閃光)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난민대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남하하는 백성들, 짐을 지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군상들 그 모두는 포화(砲火)를 피하여 남으로 이동하는 피난민 행렬이었다. 군인들을 실은 트럭은 전선으로 향해 바쁘게 북으로 향해 갔다. 그러나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소총뿐이었고 북의 군대는 비행기와 탱크를 앞세운 따발총으로 무장한 군대였다. 상대가 되지 않는 대결이었다.
국방군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려 쫓겨내러 왔다. 전쟁이 일어나고 불과 3일 만에 서울에 근접해 들어왔다. 그리고 제4일이 되는 새벽에 서울은 저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한강철교는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에 파괴되어서 아직 북쪽 군대가 서울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서울에서 나오지 못하고 묶여있게 되는 한 원인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납북(拉北)인사가 많았던 것도 지도부의 미숙한 처사에서 연유되었다고 보인다.
북쪽의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고 계획적으로 남하한 것이고 대한민국 국군은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을 맞게 된 것이다. 결과는 북쪽 군대의 일방적 승리로 이어졌다. 수많은 군인과 경찰이 죽고 민간인 학살도 수없이 행해졌다.
광복 후 대한민국 안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집단인 남로당(南朝鮮 勞動黨, Workers' Party of South Korea)이 있었다. 남한의 노동당이란 뜻이다. 여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연루된 분들이 많았다. 정부 수립 후 1949년 10월에는 이분들에게 자수의 기회가 주어졌고 약 33만 명이 자수하게 된다. 이분들은 남과 북에서 모두 회색분자(灰色分子) 취급을 받게 되어 전쟁 중에 희생이 컸던 것 같다. 전쟁 중에 내 주변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실종자들이다.
전쟁이 일어나니 총 가진 사람이 법이고 사소한 원한에도 밀고하는 일이 많아서 민간인 희생이 늘어나게 된다. 전쟁 와중에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이런 유의 희생자가 많았다. 참 아쉽고, 우리 민족의 잔학성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 아팠다. 무모한 전쟁이 아노미 현상을 만들어내고 윤리나 도덕이나 법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총이 법 위에 군림하여 힘이 되는 세상이다.
미국을 위시한 UN군이 참전하게 되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 북쪽의 군대는 북으로 쫓겨가게 된다. 국군은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그러나 1949년 공산혁명을 이룩한 중공군이 개입하게 되고 소위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대규모 공세에 UN군은 후퇴를 거듭하게 되고 1951년 1월 4일은 다시 서울을 내어주게 된다. 그리고 휴전협정을 맺은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여를 치열한 전쟁으로 전 국토가 피폐해지는 참화를 입게 된다.
나는 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에 서울에 살고 있었으며 1.4 후퇴 때 화물열차 지붕 위에 몸을 싣고 남하했다. 한강은 보트로 연결된 가교(假橋)를 건넜고 이틀을 걸어서 영등포역에 저녁에 도착하여 여러 열차가 서 있는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우리 가족은 분산하여 화물열차 지붕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기차를 타고 다음 해 1월 1일 새벽에 대구역에 내렸다. 화물열차를 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 할 것이다.
전쟁은 무모한 일이고 인간의 욕심의 산물이다. 살상과 파괴가 자행되고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어떤 사람들이 자행할까?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한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우리는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패권(覇權)주의자들은 자신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 오늘날 패권국 가는 어느 나라인가? 결국은 그들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전쟁의 참화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껴보라, 진정한 정의는 무엇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어떤 것들인가? 전쟁은 무서운 것이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짖이다.
인류는 스스로 멸망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열강들이 만들어 놓은 원자탄의 양은 얼마일까?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충분한 양일 것이다. 또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자연 파괴는 어떠한가. 가공할 만한 고난을 예고하고 있다.
전쟁은 정치적 이유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몇몇 사람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잘 조화되어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는 반면 모든 국민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사회이다. 이념논쟁은 시대에 뒤진 것이고 자유와 복지가 이루어진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이다. 전쟁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빼앗아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유월로 접어들면서 한국전쟁과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가난하게 살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무고하게 희생당한 분들에 대한 애도, 오늘의 번영을 잘 지켜서 후손에게 유산으로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념논쟁에 대한 우려, 우리나라에 지혜로운 지도자를 주실 것을 기도한다.
2023년 6월 25일(일)
Ⓒ 2023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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