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86. 둥지

profkim 2023. 6. 30. 09:34

 

내 둥지 앞 남천 제방에 아름답게 조성된 꽃단지이다.

 

                                      86. 둥  지

 

 

 

  둥지는 동물이 자신이 살아갈 안식처, 적을 방어하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만든 보급자리 라고 사전에서 설명한다. 자연의 동물은 대체로 스스로 집을 짓고 살아가며 새끼를 기르고 자신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서 둥지를 만들고 산다. 이 둥지가 그들의 안식처이고 보금자리인 것이다.

 

  사람에게도 안식처가 필요하고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분업 사회에서 사람이 스스로 집을 짓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전문 건축회사에서 만든 집을 구매해서 살게 된다.

 

아파트 단지내 조경된 영산홍의 자태는 봄소식으로 충만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의식주(衣食住)라 한다. 그 가운데서도 주거(住居) 환경(環境)은 아주 중요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교육문제가 있고 직장과 깊은 관계가 있어서 우리 삶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결혼을 앞둔 젊은 세대가 결혼을 포기하는 이유 가운데 주택을 마련할 수 없어서가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주거환경도 바뀌어 가겠지, 결혼 초의 환경과 자녀가 생산되고 자랄 때 환경이 다를 것이고 노년이 되었을 때 주거환경은 또 다를 것이다. 미국에서 보니 결혼 초에는 아파트에 살다가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 주택으로 가서 마당에 나무도 심고 꽃도 자라는 것을 보게 하고, 흙을 만져보게도 한다. 그래서 자연과 만나는 기회를 얻게 한다. 자녀가 대학에 가고 결혼해서 아이들을 기르고 나면 그 부모는 노년이 되어 콘도미니엄이나 노인 아파트로 옮기게 된다. 그러면 집 밖은 관리할 필요가 없고 내부만 관리하게 되니 훨씬 삶의 짐을 덜게 된다.

 

경산 남천에 4월에 만개한 유채꽃은 벌과 나비와 사람을 불러드린다.

  우리의 경우는 젊으나 늙으나 대부분 사람이 아파트에 산다. 편리라는 핑계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 그 크기를 줄여서 노년을 보내기에 적절한 공간을 선택하게 된다. 나도 여러 번 이사했다. 제일 오래 산 주택에서는 38년을 살았으니 자주 이사한 편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며, 소유하고 있던 것이며, 사람과의 관계이며, 마음의 짐도 덜어내야 한다. 언제 떠나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지혜일 것이다. 이번에 내가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조그만 아파트이다. 내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담 없이 살다가 두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재산으로서 의미가 아니라 삶의 둥지로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삶이 안정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남천을 찾는 겨울 철새 소백로와 텃새인 물오리의 둥지는 어디쯤 있을까?

  짐을 많이 정리했기에 큰 짐은 없어도 또 모이고 쌓인 것들이 있어서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종일 일을 하였다. 법적인 서류를 정리하는 데도 며칠 걸렸다. 이런 일 자체가 번거롭기에 이번 일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경산 남천 변의 아파트여서 둔치에 걷기가 좋고 물 흐르는 것도 조금 보여서 눈의 피로를 덜 수도 있다. 아침저녁으로 걷기에도 좋은 편이다. 자연환경도 내가 살아갈 만하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을 만나서 대화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물새들, 수초군락, 흐르는 물, 수목, 사철 피는 꽃은 여유로운 삶을 보장할만하다. 노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경산 남천 양안(兩岸)으로 전계된 걷기 트랙과 수초와 새들은 자연과 대화장소이다.

  만족하며 사는 삶은 복된 삶이다. 환경의 문제는 아니다. 정신세계의 가치관의 문제이다. 환경도 좋고 삶에서 기쁨을 갖고 감사할 수 있다면 최고이겠지,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천 세대(世代) 가까이 살고 있다. 그래서 공동시설(共同施設)도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나는 fitness를 자주 이용한다. 여기서 새벽에 나이 든 사람 셋이서 더러 만나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신다.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아파트가 큰 단지(團地)라 할 수 있으니 생태계에는 폐를 많이 끼쳤을 것이다. 이 땅에 살고 있던 많은 생명은 모두 쫓겨났을 것이고 생태계 단절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편리한 만큼 자연이 훼손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생물에 대한 배려는 많이 못 하는 편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그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유채꽃이 지고 나면 남천을 장식하는 금계국(金鷄菊)이 둔치를 장식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둥지를 만들되 자연에 순응하여 자신이 만든다. 굴이나, 구멍, 팬 곳, 숲속을 이용하고 둥지를 만들 때도 자연의 소재를 가져다가 자연에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다. 인간도 원시시대 동굴에서 살았고 그래서 동굴 암각화(暗刻畫)가 더러 발견되는 것 같다.

 

  남아프리카 극한 상황에 사는 베짜기 새는 나뭇가지 끝부분에 집을 짓는데 짚과 잔가지를 모아서 둥지를 둥글게 짓고 입구는 아래쪽으로 내어서 적이 들어 올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높이도 지상에서 약 3m 정도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위치이고 위쪽에서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마치 나뭇가지에 공이 주렁주렁 달린 것 같은 모습이다.

 

겨울에 더 개체수가 늘어나는 물오리 떼는 겨울 강의 생명력을 더한다.

  이 지역의 또 다른 베짜기 새는 대형 둥지를 틀어서 여러 가구가 공동생활을 한다고 한다. 마치 인간의 아파트에 사는 이치와 같다고 해야 할까! 이 역시 위쪽은 짚을 두껍게 만들어서 도저히 침입할 수 없게 하고 출입구는 아래쪽으로 내서 포식자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여러 마리의 새가 공동생활을 한다고 하니 그 지혜가 놀랍다. 이런 둥지는 천년(千年)이나 된 것도 있다고 하니 더 놀라울 뿐이다.

 

  두더지나 오소리, 등 땅굴을 파는 동물은 지하 수십 미터의 땅굴을 여러 개 연결하여 파고 출입구도 여러 개를 만들고, 침실, 육아실, 저장고 등을 만들어 산다니 안전한 복음자리일 것이다. 통풍도 잘되고 침수도 막고, 도피로도 확보하니 진정 보금자리일 것이다. 이들을 통해서 지하에 산소공급이 된다고 하니 이는 자연에 유익을 끼치는 집이 아니겠는가!

 

수초군락과 어우러진 숲은 묻 생명의 안식처이다.

  비버는 수상가옥을 건축하는 달인이라 한다. 비버는 주변의 나무를 잘라서 물길을 막고 물밑에서부터 물 위까지 크게 집을 짓는다. 그리고 출입구는 물아래로 낸다. 그러니 포식자가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 새끼를 기를 공간이 있고 침실이 있다니 안락한 보금자리가 아니겠는가! 이들의 집은 물에 영양(營養)을 공급하여 주변을 풍요롭게 한다고 한다. 자연 친화적이고 자연에 유익을 끼치는 둥지이다.

 

  늑대 무리가 새끼를 낳을 때는 오소리 같은 땅굴 짐승의 둥지를 점령한다고 한다. 그러면 오소리는 두말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이는 분명 약탈이겠지, 그러나 이 역시 자연의 현상이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대리모에게 제 새끼를 맡긴다고 하니 이는 파렴치이지, 그러나 이 역시 자연의 한 현상이다. 인간 세상에서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자연에서는 순리가 되는가 보다.

 

대백로와 소백로의 먹이 활동은 종일 이루어진다. 이들의 밤의 안식처는 어디일까?

  나는 내 삶의 남은 여정을 조그만 둥지에 틀려 한다. 이 세상의 내 것이 존재하겠는가, 모두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니, 소중히 다루고 잘 쓰다가 또 누군가에게 넘겨주어야겠다. 내가 만년에 편히 지낼 둥지가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 사회가 배 풀어준 넉넉한 인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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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