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88. 징검다리

profkim 2023. 7. 21. 18:09

장마철 대지를 환하게 꾸며주는 나리꽃의 아름다움

 

                                       88. 징검다리

 

 

 

  어렸을 때 개울을 건너려면 더러 징검다리를 건넌 일이 있다. 그 시절 징검다리는 간격이 넓어서 어린이에게는 건너가기가 힘들었다. 그것도 돌을 잘 다듬은 것이 아니고 자연석을 적당히 놓은 것이어서 조심해서 건너야 했다. 흐르는 물이 많을 때면 두려움이었다.

 

  내가 사는 경산 남천에는 징검다리가 많이 놓여있다. 징검다리는 어릴 적 추억이 깃들어있어서 정겹게 느껴진다. 남천의 어떤 징검다리는 아예 그 위를 다 돌로 덮어서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것뿐이지 일반 교량과 같다. 그렇게 하지 않은 징검다리라도 돌을 촘촘히 놓아서 건너다니는 데 불편함이 전연 없다. 어린이들도 건널 수 있고 애완견도 건너다닌다. 남천의 징검다리는 자연석으로 놓은 것과 다듬은 돌을 촘촘히 놓은 것이 있다.

 

장맛비로 남천의 징검다리에 물이 넘쳐 흐른다.

  자연석 징검다리는 아무래도 다니기가 불편하겠지, 그래서 통행하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높이도 낮아서 물이 조금만 많이 흘러도 통행을 하지 못한다. 여간 조심을 해야 하고 물이라도 많이 흐르면 건너기가 힘들다. 이때 포기하고 돌아서면 강을 건널 수 없겠지, 그래서 좀 넓어도 조심해서 잘 건너야 한다.

 

  요 며칠 사이 장맛비가 왔고 어떤 곳에는 폭우가 쏟아져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하천 제방 뚝이 무너져서 한 마을 전체가 침수되었고 사망자와 실종자가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하니 자연의 조화(造化)에 인간은 그저 무능함을 더 실감하게 된다. 스페인에서는 시간당 100mm의 비가 내려 도로로 물이 덮쳐서 운행 중인 자동차가 떠내려가고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니 자연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공원교 앞 좀 낮은 징검다리는 완전히 물에 잠겼다.

  어제 남천의 둔치를 걸었다. 나는 남천 서안(西岸)으로 걸어서 남쪽의 공원교(公園橋)까지 가서 징검다리를 건너 남천 동안(東岸)으로 내려와서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서안으로 오는 코스를 걷는데 어저께는 징검다리에 물이 넘쳐 흘러서 도무지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었다. 그래서 남천 서안으로 내려가서 공원교(公園橋)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거리를 약간 줄여서 3km를 걸었다.

 

  올해는 징검다리에 물이 넘치는 횟수가 좀 많은 편이다. 돌아오는 길에 징검다리 앞에서 잠시 물 구경을 하였다. 세차게 흘러드는 물줄기가 징검다리 돌에 부딪혀서 굉음(轟音)을 내며 흘러간다. 이 근처에서 먹이를 사냥하던 백로며, 왜 가리, 해오라기 등은 보이지 않았다. 먹이 사냥 장소로 적당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남천의 징검다리를 넘쳐 흐르는 물줄기가 굉음을 낸다. 동영상

   건널 수 없는 징검다리에서 내 삶의 과정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했다.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생각하고 고민했던 일들이 있다. 징검다리를 넘쳐 흐르는 물은 곧 물이 줄어들고 징검다리로 건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조금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장벽은 이런 예측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근심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더러는 좌절하기도 하고 포기할 때가 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징검다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좀 지나가면 해결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가기 위해서 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지혜와 마찬가지로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지혜도 있으면 좋겠다.

 

징검다리는 물이 넘쳐도 둔치에는 백일홍이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성경에서 바울은 사랑의 중요성을 많이 갈파한 사람이다. 그는 사랑의 행위로 첫째, “오래 참는다.”라고 한다. 이는 시간의 문제이니 삶의 여정에서 참고 사는데 그 기저에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있다. 참는 것이 쉽겠는가? 내가 참는데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기다림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는 무게가 없으니 참는 일이 어렵다고 할 수 없겠지, 바울은 둘째,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라고 한다. 전 생애(生涯)를 참고 사는데 이는 사랑의 기다림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애플사(Apple)의 창설자인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를 기억한다. 그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양부모 밑에서 자라서 샌프란시스코의 리드(Reed College) 대학에 진학했지만, 양부모의 저축한 돈을 모두 쓴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한 학기를 마치고 자퇴해서 세 학기를 그 대학에 무적학생으로 자유롭게 공부하면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특히 서체(書體) 공부는 뒤에 애플사가 예쁜 인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리꽃의 꽃말은 진실, 희망이라 한다.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고 하면 어떨까!

  잡스는 19세에 양아버지의 차고에서 두 사람이 애플사를 창업하고 10년을 경영하는 동안 직원은 4,000명이 되고 자본금은 200억 달러가 되는 큰 기업으로 키웠다. 경영의 합리화를 위해서 경영진을 영입했는데 1년 뒤 이들에 의해서 애플에서 해고되었으니,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해고라니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첫째 부끄러웠겠지, 그리고 실의에 차 있었겠지, 그래서 실리콘밸리(Silicon Vally)를 떠나려 생각했으나 차츰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월의 백일홍은 우기(雨期)에 우리에게 아름다움의 빛을 전한다.

  그 후 5년간 잡스는 컴퓨터회사인 넥스트(NeXT)와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Pixar)를 창업해서 대성하게 된다. 반대로 잡스가 없는 애플은 쇠퇴해 져서 결국 픽사에 합병되고 잡스는 자연스럽게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된다. 잡스는 어떤 도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를 극복하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이 빈 벤치에서 무엇이 생각나시는지요?

  참 지혜는 무엇인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한다면 삶의 대강(大綱)을 터득했다 할 것이다. 사랑 안에는 믿음이 있어서 이런 사람은 자신(自信)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는다.

 

공원교 앞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 건널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 나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남천 둔치를 걸을 것이다. 징검다리에 물이 넘치면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을 것이다. 내일도 물이 넘치면 하루 더 기다릴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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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