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자족(自足)
자족(自足)은 “스스로 만족함”이라고 사전에서 설명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삶이라 해야겠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만족하게 여기는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만족하다고 생각할까? 어떤 의미에서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도전하지 않을까?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사람은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야생동물은 대부분 시간을 먹이활동에 보낸다. 이유는 항상 허기져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 동인(動因) 가운데 배고픔은 강력하다. 스티브 잡스도 청년들에게 헝그리 정신(stay hungry)을 가지라고 권고했다. 왜 그러냐 하면 배고픔은 강렬한 행동의 동기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신체 내부에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욕구(need) 즉 동인(motive, drive)을 갖고 있다. 배부른 사람은 먹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만족한 상태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고 만족하지 않은 상태여야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족한 삶이란 필요한 행동을 유발할 수 없다는 뜻이 될 것이다. 성현(聖賢)들은 대체로 자족한 삶을 산 것 같다. 세상의 조건과 관계없이 만족하게 살았기에 그들은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자족한 삶을 산 사람은 도전이 없었겠는가? 그들에게도 수많은 도전의 장르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도전을 이겨내고 이른 경지(境地)일 것이다.
성서에서 다윗왕은 성군(聖君)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진실한 사람에게도 실수는 있었다. 군대를 전쟁터로 내보내고 왕궁에서 편안한 낮잠(午睡)을 즐긴 왕이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불러들여 간통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한 아이가 출생했는데 하나님의 징벌로 이 아이를 죽이시기로 정했다.
아이가 병으로 앓게 되자 다윗왕은 금식하며 기도를 드렸다. 옆의 신하들이 보기에 그 기도는 처절했었다. 그래서 아이가 죽었는데 왕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왕은 눈치로 아이가 죽은 것을 감지하고, “아이가 죽었느냐? 물으니 신하들이 그렇다고 했다. 그 즉시 일어나서 세수하고 음식을 먹으며 여상히 정무(政務)를 보았다. 이런 태도는 과정(過程)에서 최선을 다하였지만, 더 놀라운 것은 결과에 대한 완전 승복(承服)이다. 결과에 연연(戀戀)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1958-)는 음악을 좋아하고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자라났다. 12세 때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하다가 공으로 머리를 강타당하게 된다. 본래 녹내장을 갖고 있었는데 이 공으로 완전 실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도(中途) 실명(失明)이다. 이런 때 심리적 갈등은 아주 큰 것이다. 보첼리의 말을 빌리면 “딱 1시간만 울자, 그리고 이 어두운 세계에 빨리 적응하자”라고 기술한다. 중도 실명자가 1시간 울고 이를 극복하고 어둠에 적응하겠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고 더욱이 12세 소년이다. 나는 안드레아 보첼 리가 이룬 법학적, 음악적 성취보다도 12세 소년의 인간승리를 높게 평가한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부모의 바람에 따라서 피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가 되었을 때 모두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가 없어서 변호사직을 내려놓고 세계적 테너 가수로 오늘 우뚝 섰다. 법학박사, 변호사, 세계적 테너 가수, 그가 이룬 업적은 대단하지만 12세 소년으로서 짧은 시간에 현실을 받아들인 그의 정신이 더 위대하고 아름답다.
보첼리의 자서전적 자기 기록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꼭 한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덴 일주일이면 충분했지요. 자기 연민에 빠지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힘들답니다. 슬픔을 빨리 극복할수록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힘이 강해진다는 거,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보첼리는 이런 삶의 지혜가 그의 재능을 꽃피워서 오페라 가수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주기도 송(The Lord’s Prayer)을 아래 파일을 클릭하셔서 한번 들어보시면 그의 삶을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자족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에 대한 승복(承服)이고 수용(受容)이다. 여기에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도전이 있었다는 전제가 있다. 열심히 살고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연연함 없이 만족하는 삶일 것이다. 세상사는 얻을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의 삶을 결정 짓는 예도 있다. 이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족하는 사람은 상황과 관계없이 자유롭고 여유가 있겠지, 바울은 그의 말년에 빌립보 교회에 편지 하면서 “나는 비천(卑賤)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라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술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어떤가? 호화롭고 풍요로울 수도 있고, 빈곤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예도 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자족하며 살까? 이런 상황과 자족한 삶은 관계가 없어 보인다.
바울은 비교적 좋은 가문에서 출생하고 좋은 선생에게 배우기도 하였다. 일본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賀川 豊彦) 목사는 기생첩에서 태어났고 자라기는 아버지 본처 슬하에서였다.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고 양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출신 성분이나, 성장 배경, 현재 상황 등 이런 것과 자족한 삶은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선각자들은 상황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하고 개척하는 사람이다. 주어진 상황을 원망하고, 거부하면 보첼리의 말처럼 더 힘들어지니까 빨리 벗어나서 그에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힘이 그 속에서 솟구쳐오를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믿음과 사랑이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이런 힘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자족하며, 감사하며, 기쁨으로 산다면 삶이 쉬워지고, 자유로워지고, 많은 것을 얻고, 성취하게 되어 승리하는 삶이 보장될 것이다.
2023년 8월 3일(목)
Ⓒ 2023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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