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섬기는 사람
출세(出世), 성공(成功), 승진(昇進) 등 듣기 좋은 말이 많다. 인간의 본성에는 높아지고 싶은 심성이 있는가 보다. 잘난 사람, 잘나가는 사람,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모두의 선망(羨望)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모든 것을 잃으면 허탈해하고 인생무상을 말하게 된다.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과 2년에서 3년여를 동행한 사람들이다. 이런 훌륭한 선생 밑에서 이 정도의 수련을 받았으면 결이 삭았을 법도 한데 이들은 예수님이 잡혀가시는 그 시간까지도 누가 높으냐? 논쟁했다고 하니 참 허망한 일이다. 선생은 잡혀가는데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으니 그 당시 그들의 정신상태를 가늠할 만하다.
그들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다. 예수 선생을 따라다니면 세상에서 한자리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다. 제자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린 왕국은 공간적이고 가시적인 왕국이었다. 세속정부가 세워지고 한자리하기를 바랐겠지, 그러니 누가 높으냐는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메시아왕국은 공간적이고 가시적이지 않다. 정신적 세계이고, 영적 세계이다. 이 두 개의 가치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이 본 예수는 위대하였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한센병 환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맹인이 눈을 뜨고,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는 능력은 로마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신 분이고 곧 지상에 메시아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이적(異蹟)만 보았을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진정 높은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치신다.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 여리고근처에서 제자들의 누가 높으냐의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현상은 마지막 만찬장에서도 일어났으니 예수님 제자 교육은 실패하신 것 같다.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유언(遺言) 같은 가르침을 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섬기라 하시고 서로 사랑하라 가르치신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계속되었다.
제자들의 변화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 후에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난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고 볼 세례를 받게 된다. 이 시간이 모든 것이 변하는 시간이다. 제자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공간적이고 가시적 왕국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이루어진 왕국 즉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났다. 그리고 진정 높아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제자들은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었고 죽기까지 섬기는 삶으로 일관하게 된다.
나는 섬기는 삶의 대표적 모형이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어떠한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자고, 쉼 없이 수고하여 자식들을 돕고 아무 소득이 없어도 모든 것을 바쳐서 주는 삶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섬기는 삶이라 생각한다. 거기에는 이해관계가 없다. 오로지 일방적으로 주는 삶이지,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고 일방적이다. 이것이 섬기는 사람의 자세이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 왜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사랑이겠지, 사랑하니까 모든 것을 줄 수 있겠지, 우리는 섬기는 행위(行爲)로 섬기는 사람이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 행위가 사랑에서 연유했을 때만 섬기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사랑에 근거하지 않은 선행이나 남을 위한 행위는 섬김이라 하지 않는다. 이것은 가짜이다. 사람 눈에 보이기 위한 행위는 섬김이라 하지 않는다.
선각자들은 낮은 곳에서 섬긴 경우가 많다. 참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하였고, 생명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대통령이 섬기는 사람이라면 국가가 번영하고 국민이 행복해지겠고, 기업주가 섬기는 사람이라면 그 기업이 번창할 것이고 그에 고용된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다. 내가 거명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를 활성화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섬기는 사람이 왜 높은 사람일까? 어떤 경우라도 섬기는 사람은 영향력이 커서, 가정, 기업, 사회, 국가·민족을 부흥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들의 행위는 모두를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 하셨고 섬기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주: 호랑가시나무 열매는 회색빛 겨울을 밝히는 등불과 같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이 나무와 열매를 많이 쓴다. 우리나라에 연말에 불우이웃돕기 배지(badge)에 사용된 사랑의 열매가 이 열매라고 하기도 한다. 세 개의 빨간 열매는 나, 가족, 이웃을 상징하고 줄기는 사랑을 상징한다고 하니 사람 사랑이라 하면 좋겠다. 우리 가족, 사회, 민족을 연결해 주는 고리가 사랑이다.
2023년 11월 19일(일)
Ⓒ 2023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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