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남천(南川)에 겨울이 오면
벌써 11월이 다 가려 한다. 입동(立冬)도 지났고, 소설(小雪)이 지났다. 나는 겨울로 접어들면 은근히 철새의 도래를 기다리게 된다. 철새라야 소백로 무리와 청둥오리 등 종이 빈약하고 개체 수도 적은 편이지만 샛강에서 볼 수 있는 호사(好事)일 것이다. 지난여름 강바닥을 준설 해서 오리의 먹이는 풍족하지 않을 것 같고, 수초군락이 사라져서 둥지 틀 곳도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요사이 전국 강변의 둔치 정비가 잘되어 걷기 트랙도 좋고, 주변 경관도 잘 조성되어있어 공원처럼 아름답다. 남천 역시 경산 주변의 둔치는 잘 조성되어있다. 제방과 둔치 변에 식수(植樹)도 많이 했고 화단 조성 역시 잘되어있는 편이다. 나는 남천에서 자연을 많이 배운다. 젊었을 때 관심을 두지 못했던 수목, 꽃, 열매 등이 눈에 들어오고 처음 보는 것은 사전을 찾아서 지식을 쌓아가니 이 또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자연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는 것을 요즘 많이 알게 되었다.
하천 생태에 대해서도 관심 두게 되었다. 남천에 서식하는 조류에 관해서도 하나둘 알게 되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게 되었다. 자연은 항상 허기져있다는 누구의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요즘 이를 알게 되었다. 자연의 활동은 모두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수생식물(水生植物)을 먹는 오리 유는 종일 물속을 드나들고 물고기를 먹는 조류는 수면을 들여다보며 종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며칠 날씨가 무척 포근하더니 오늘은 기온이 급강하했다. 며칠 전 소 백로 무리가 수십수 보이기 시작했다. 반가운 손님이다. 청둥오리도 몇 종이 더 온 것 같아서 오후에는 예의 관찰을 하고 손님들에게는 환영의 메시지를 전한다. 알아들을 리는 없겠지만 자연과의 대화는 언어가 아니니, 소통은 되었을 것이다.
텃새인 대백로와 왜가리와 해오라기는 개체 수가 많지 않지만, 강을 풍요롭게 하는 터줏대감들이다. 이들과 철새가 어울리면 꾀 강이 활발해 보인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민물가마우지도 남천을 찾아서 날개를 펴고 휴식을 한다. 청둥오리도 여러 종이 찾아오고 개체 수도 많이 늘어난다. 초겨울에는 물병아리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잠수해서 작은 물고기나 수생식물을 먹고 산다. 남천은 겨울이 더 활발하다고 생각된다.
철새들이 남천에 머무느냐 떠나느냐는 오로지 먹이가 결정한다. 먹이가 풍족하면 그 개체 수가 늘어나지만, 먹이가 부족하면 곧 떠나게 된다. 이로써 남천의 생태 현상을 대강(大綱) 가늠하게 된다. 인간이 간섭하고 있는 강은 그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자연 상태를 보전하도록 하는 일이다.
겨울로 접어들면 잎이 떨어진 활엽수는 옷을 벗고 나목(裸木)이 된다. 그러나 몇 종의 나무는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서 멋을 부린다. 갈색 잔디와 잘 어울리고 사람의 시선을 끌게 된다. 겨울의 배고픈 새들의 먹이가 되고 새들은 그 씨앗을 멀리 운반하여 다른 곳에 배설물로 번식을 도우니 자연의 섭리가 오묘하다. 겨울은 단순한 휴식기가 아니다. 풍요로운 재생산의 시기이다.
오늘도 남천 둔치를 걷는다. 걷기는 내 건강에 필수이지만 이 생태 현상에서 나는 많은 영감을 얻고, 자연의 순환 원리를 배운다. 생명체 하나하나가 큰 우주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며 이들 중 그 누구도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이 작은 강 하나에도 수천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고 그들이 서로 돕고 있다는 큰 원리를 보면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알려준다. 먹이사슬에서 어느 하나가 빠지면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단순한 원리가 남천에도 존재한다.
겨울이 오면 나는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만날 철새들의 삶, 그들의 활동 상황, 그들의 이동 등 모든 것이 관심사이다. 그리고 남천 주변의 생태 현상에 대해서도 겨울철만이 갖는 특성이 있으니 이 역시 나에게는 스승이 된다. 풍요로운 겨울을 노래한다. 나는 이 겨울을 즐기려 한다.
2023년 11월 25일(토)
Ⓒ 2023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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