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베들레헴의 모라비안
나는 두 번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을 찾았다. 이곳은 냄새가 나는 곳이다. 진짜 같은 냄새! 진짜 참기름은 냄새가 어떨까? 우리가 이야기할 때 더러 진국이란 말을 쓴다. 진국은 어떨까? 가짜가 많은 세상에서 진짜는 어떤 모습일까? 무슨 단서라도 찾고 싶은 심정으로 베들레헴을 찾았다. 첫 번째 방문한 후에 쓴 단상은 2020년 5월 19일([단상(斷想)] 21. 모라비안의 삶// http://blog.daum.net/enjoytoo/179) 이다.
단상 21에서는 모라비안의 청교도적 삶의 연원과 얀후스, 진젠돌프, 스팡겐베르그 등 모라비안의 지도자들의 고난의 길과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와의 관계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왜 이들이 청교도(淸敎徒)가 되어야 했는가를 오늘 우리는 알아야한다. 이때 내가 모두(冒頭)에 쓴 글을 다시 한번 더 게재한다.
교회는 무엇이고 신학은 무엇인가?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오늘 거대한 기독교회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구사(驅使)하고 있는가? 사이비 기독교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으며 왜 그들의 유혹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은가?
베들레헴은 한적한 곳이다. 그리 복잡하지 않고 공간도 넓고 수목도 많아서 여유를 즐길 만하다. 두 번째 방문이어서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이 더러 있었다. 베들레헴 다운타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에서 관광안내소(visitor center)를 방문하고 그에 붙어있는 가운디 건물(Gaundie House)을 둘러보았다. 이 건물은 베들레헴에서 첫 번째로 지어진(1810) 벽돌 2층 가옥이다.
이 건물주인 가운디 씨(John Sebastian Goundie, 1773-1852)는 베들레헴의 시장, 소방서장 등을 역임하고 도시발전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하였고 현재 이 건물은 베들레헴의 역사 문화재로 남게 되었다. 19세기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가구, 의상, 사무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베들레헴의 모라비안(체코의 모라비아 지방 출신)은 카톨릭교회의 핍박을 피하여서 대서양 변의 항구 도시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Savannah, Georgia)에 정착했었다. 이곳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와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의 촬영지로 유명하지만, 이들이 정착할 때는 한적한 촌이었다.
이 지역에서 모라비안의 감독 스팡겐베르그(August Gottlieb Spangenberg, 1704~1792)와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가 처음 만난 곳이고 웨슬리 목사가 크게 감동을 한 곳(웨슬리는 1736년 2월 6일 미국 조지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2월 7일 슈팡갠베르그 목사를 만난다.)이기도 하다. 웨슬리는 대서양 항해(航海) 중에도 모라비안의 신앙심에 탄복했고 그 후 영국에 돌아가서도 모라비안 교회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모라비안은 1741년 사바나에서 본거지(本據地)를 펜실베니아주 베들 레헴으로 옮겼다. 현재는 베들레헴이 모라비안의 중심지이다.
모라비안은 체코의 얀 후스(Jan Hus, 1369-1415)의 추종자들이다. 후스는 가톨릭 사제였다. 그는 성경과 설교는 그 나라의 언어로 이루어져야 하고, 교회의 세속주의(worldliness)를 배격하고 교회의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로마 가톨릭이 후스를 1415년 화형(火刑)에 처했다.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왜 이루어지는가? 교권화된 세력들은 막강해지고, 부와 권력은 타락으로 연계된다. 후스는 최초의 종교개혁자이고 독일의 말틴 루터(M. Luther, 1483-1546)를 위시한 많은 종교개혁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모라비안(Moravian)은 체코의 모라비아 지방 출신들의 사람들이고 얀 후스의 경건주의 신앙(信仰) 노선(路線)을 추종했다. 1457년에 그들 스스로 형제단(兄弟團; Unity of the Brethren)을 결성하여 거룩한 생활을 해왔고 전도도 해 왔다. 이들이 최초의 청교도(淸敎徒)들이다. 그러나 이들 교회는 삼십년전쟁(1618-1648, 신교와 구교의 전쟁)을 계기로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본국에서 말살(eradicate)하려 했다.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도피하여 숨어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모라비안은 떠돌이 생활에서 1722년 독일의 작센주(Saxony, 독일 동부의 주)의 귀족인 진젠돌프(Nicholas Ludwig won Zimzendorf, 1700-1760)가 모라비안의 지도자가 되고 진젠돌프 영지에 이들을 거주하게 하며 돌보아 주게 되었다. 정착촌이 형성되고 형제단원들은 모여서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영지를 헤른후트(Herrnhut, 뜻 “하나님의 돌보심”)라고 하였다.
이들은 세계로 선교의 무대를 넓혔다. 미국 초기 13개주에 선교사업을 실행하였다. 이들은 미국 원주민, 가난한 사람, 노예 등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직업(특히 목공, 조리법, 정비공장)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예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노예가 되어서 선교사로 나아갔고, 기술을 가지고 나아가서 생계도 유지하고 전도와 생업을 갖게 하는 살아있는 전도자였다.
진젠돌프는 1741년 이 공동체를 사바나에서 펜실베니아주 베들레헴으로 옮겼는데 이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유대의 성지 예수님 탄생하신 곳인 베들레헴의 지명을 이곳에 붙이기로 하였다. 그 후 베들레헴은 산업 도시로 발전하였고 그 주변으로 모라비안의 활동 무대는 널리 퍼져나갔다.
모라비안은 아주 기본이 되는 모토(motto)는 “단합”이고 “자유와 사랑”을 기본으로 하였다. 진젠돌프는 일을 강조하였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일하지만 일함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보았다. 이런 원리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선교사역도 이런 원리로 수행한다. 모라비안 60명이 모이면 선교사를 한 명 파송하였다.
이들은 돈을 벌어서 다시 선교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전략은 “Profit for the Lord”로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둔다는 개념일 것이다. 모라비안은 1732년에서 1760년까지 226명의 선교사를 그린랜드(Greenland), 버진 아일렌드(Virgin Island), 수리남(Suriname), 골드 코스트(Gold Coast), 북미(北美) 원주민(natives), 자메이카(Jamaica), 서인도 제도의 안티과(Antigua) 등에 파송했다고 한다. 이들 지역은 노예가 있는 곳이거나 아주 낙후된 가난한 지역이다. 낮은 곳으로 간 것이다.
모라비안은 삶 그 자체가 선교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경건주의자들이고 삶이 성경의 원리에 따르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자들이다. 이들은 낮은 곳에서 가난한 사랍들과 노예와, 병든 사람들과 같이한 삶이었고, 삶의 현장이 선교의 장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 이고 이것이 곧 그들이 드리는 “영적예배” 일 것이다. 예배는 나의 삶을 통해서 드리는 것이다. 삶 자체가 예배임을 보여준 사람들이 모라비안이었다.
모라비안은 가장 성경원리에 따라 산 사람들이고 최초의 청교도(protestant)이고, 얀 후스는 최초의 종교개혁자이고 순교자이며, 진젠돌프는 경건주의 자이고 청교도 지도자였다. 이들에 의해서 최초의 선교사 파송, 선교운동이 일어났고, 이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영국의 감리교 창설자이신 존 웨슬리에 영적 각성을 갖게 하여서 감리교 창설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이들의 선교는 세계선교의 효시(嚆矢)가 되었다. 나는 이런 냄새를 베들레헴에서 채취(採取)하려 하였다.
오늘 개신교회는 너무 비대해져서 초기의 고난이나 박해와 같은 것이 없으니 스스로 나태해지기 쉽다. 조직이 비대해지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종교는 교권화되고 세속화되어가게 된다. 그러면 또 다른 개혁세력이 나타나게 된다. 기존세력은 신 세력을 탄압하게 된다. 가톨릭이 청교도를 핍박한 것과 같다.
베들레헴을 둘러보면서 초기의 모라비안과 오늘의 모라비안은 무엇이 다를까? 변질하지는 않았을까? 몇백 년을 내려오면서 순수성을 잘 지키기가 쉽겠는가? 화려하게 변신한 오늘의 모습이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2023년 10월 3일(화)
Ⓒ 2023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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