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92. 우리도 잘살아보세

profkim 2023. 8. 31. 12:17

청도군 신도마을에 있는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대통령 동상

 

                            92. 우리도 잘살아보세

 

 

 

 

  내가 사는 곳에서 30여 분 드라이브하면 청도군 신도리에 있는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에 다다른다.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더러 내가 찾는 곳이다. 대체로 한산하고 철 따라 꽃도 피고 산세도 아름다워 한번 들렀다 오면 심신의 쉼을 얻는 곳이다. 이곳 주민은 오래전부터 자조(自助) 정신이 강했던 모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983일 경남 수해 지역 시찰을 위해 전용 열차로 부산 방면으로 가던 중 신도마을의 주민들이 마을 안길과 제방을 복구하는 모습을 보고 열차에서 내려 이 마을을 둘러보고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공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대통령이 다음 해인 1970422일 전국 지방 장관 회의 때 전국 마을이 "청도 신도마을"처럼 되도록 지시한 것이 새마을 운동의 효시가 되었고 이 마을이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자료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B%8F%84%EA%B5%B0%EC%9D%98_%EC%83%88%EB%A7%88%EC%9D%84_%EC%9A%B4%EB%8F%99)

공원내에 세워진 박 대통령이 새마을을 설명하는 동상

  새마을 운동의 구호는 근면, 자조, 협동인데 이는 민족 중흥운동의 기치(旗幟)이다. 신도마을은 다른 어떤 마을보다 달랐다. 자립정신과 협동 정신으로 다른 마을보다 더 많이 개발되어있어서 박 대통령은 바로 이것이다. 생각하고 이 운동을 전국 운동으로 전개하도록 했던 모양이다. 민족 부흥은 그 민족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지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정신을 갖는 것이 곧 민족 부흥 운동이다. 오늘 우리 국가의 발전은 그 국민의 자립정신과 협동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그들의 생산성 제고와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원초적(原初的) 힘이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강점이고 자유로울 때 이것이 가능하다는 원리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힘이다.

공원내에 세워진 새마을 로고 동상과 새마을발상지기념관

  박정희 대통령의 염원은 이 가난한 나라를 어떻게 잘사는 나라로 만들 것인가에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자산도 없고, 기술도 없고, 산업설비도 전연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세계에서 최빈(最貧) 국가였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자본과 기술과 시설 설비가 갖추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나라에서 무엇을 가지고 국부(國富)를 이루겠는가?

 

  나는 경제학자도, 정치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암울한 시대를 같이 살아왔고 또 오늘 선진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서 목격자이고 체험한 사람이다. 그러니 아는 것이 천박하고 식견도 많이 부족하지만, 이런 문외한이 본 바를, 경험한 바를, 깨달은 바를 글로 쓰려는 것이다. 이 점을 십분 고려하여 읽어 주기 바란다.

새마을 운동 52주년 기념 아치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근대화, 산업화를 견인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확신한다. 오늘 내가 쓰려는 글은 이 근대화의 마중물(종잣돈)에 관한 것과 산업화로 갈 수 있게 한 초석(礎石)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자산이 없는 나라에서 마중물을 마련하기가 쉬웠겠는가? 우리나라 산업화의 종잣돈은 여러 가지 루트에서 마련되었겠지만 나는 세 가지가 대표적이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1965년에 한일청구권, 둘째, 월남전 파병, 셋째,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 등에 의한 수입금을 들 수 있는데 이외에도 원양어선 등 여러 수입원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로 가게 된 기초는 첫째, 경부고속도로와 둘째, 포항제철이라고 본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사심 없이 한 분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신도마을 주민의 자력 봉사활동을 보고 전용 열차를 세웠던 신거역사

  한일청구권협정이 이루어진 것은 1965년이다. 이때 보상금은 3억 불과 차관 2억 불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일본의 외화보유고가 21억 불이었다니까 보상금은 보유액의 14.3%, 차관은 9.5%이니 요사이 5억 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많은 액수였다고 생각된다. 이 보상금이 우리나라 산업화의 종잣돈으로 쓰인 것이다. 특히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에 쓰였다고 한다.

 

  이 보상금은 어떤 돈인가? 우리 선조가 그들에게 굴욕을 당하고, 젊은이는 군대로, 나이가 좀 든 분들은 보국대로, 처녀들은 일본군 강제위안부(정신대)로 잡혀가서 싸움터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영령들, 국내에선 그들에게 수탈당한 백성들의 원한이 서려 있는 삶의 대가가 아닌가? 조금이라도 헛되이 써서는 아니 될 자금이다.

이 꽃 데드로비움은 싱가포르에서 촬영한 것으로 이광요 수상을 생각했다.

  우리나라 근대화에 이바지한 종잣돈의 두 번째는 월남파병이다. 우리나라에서 월남에 파병한 것은 19649월 의무대와 태권도 교관단이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19678월까지 4차례에 걸쳐 국군이 베트남에 파견되었다. 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해병 2여단(청룡부대) 등 전투병력을 보내고, 뒤이어 육군 9사단(백마부대)을 파견한다.(자료 출처: https://blog.naver.com/akekdthkl200/223050877952)

 

  정부는 이들을 왜 파병했을까? 나라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당시 남한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북한에 밀렸고, 극한의 가난은 우리가 벗어나야 할 최우선 과제였다. 동남아 국가에서도 우리는 더 가난한 최빈국이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파병인데 우리 군대는 5만 병력 규모를 유지했고(누계 합산으로 총 30만 명, 전사자가 4,663)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에 걸쳐 563,387건의 작전을 수행했다고 한다.

 

  여기서 들어온 자금은 핏값이라 해야 한다. 우리나라 근대화는 피 값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피를 팔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스위스는 산지가 국토의 90%이어서 자연 농지가 적었다. 농업시대의 농지가 적다는 것은 곧 가난을 의미한다.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농토가 없다면 가난한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세 후기부터 그들은 젊은이를 용병(傭兵, Reislaufer)으로 수출했다. 피를 팔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가난이었다.

이 빈사의 사자상(Löwendenkmal)은 스위스 국민이 지금도 자신들의 선조가 용병을 했음을 기억하는 상징물이다. (자료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C3%B6wendenkmal_Luzern_20101115_1315_photo_by_Pcs34560.jpg)

  스위스국민은 피를 팔아서는 아니 된다는 각성이 이루어졌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산이 있었다. 그래서 산을 개발하고, 프랑스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분들이 시계기술을 가져와서 이것을 개발하게 되었다. 부가가치가 높은 시계산업은 스위스의 대표 산업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피를 판 대가로 영세중립국이 되었지만, 국방력이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지금도 45세까지 방위군으로 편성되고 비상식량을 항상 준비해 둔다고 한다. 스위스는 오늘 세계에서 최고의 복지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들도 피를 팔았고 우리도 피를 팔았다. 스위스는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고 우리는 다 잊어버리고 역사 자체를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산업화의 종잣돈은 셋째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게서 찾아야 한다. 1960연대 국가재건을 위한 개발연대 초기의 외화 획득과 실업률 감소를 위해서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게 된다. 이들이 우리나라 경제개발에 많이 이바지하게 된다. 독일에 근로자로 파견된 파독 광부·간호사의 공식 규모는 광부의 경우 1963년부터 1977년까지 7936, 간호사는 1950년대 말부터 1976년까지 1723명 등 총 18659명이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나라 산업화에 이바지한 바가 적지 않은 것이다.

꽃봉오리 같은 청년들이 독일에서 젊음을 바쳐 나라를 일으켰다.

  가난을 극복하려는 젊은이들의 청춘과 삶을 모두 바쳐서 탄광 막장에서 또 병원에서 극한의 험한 일들을 기꺼이 수행한 젊은이들의 삶이 우리 산업화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1960년대 아시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가 가난 탈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때 하나 잊어서는 아니 될 일이 있다. 이런 종잣돈이 개인 사리사욕에 충족되지 않고 산업발전에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아시아 많은 국가가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지도자들의 부도덕성과 비전 없는 정책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본의 산업화는 우리보다 100년이 앞선다. 1860년대 메이지유신(明治維新)부터라고 본다면 우리는 1960년대 시작이니 많이 뒤졌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이 산업화로 나아가는 정로(正路)를 걸었다고 생각된다. 그 첫째가 국토 기반시설의 확충으로 고속도로 건설이었다. 교통시설의 확충은 산업화로 가는 첩경일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주변국에서 모두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했었다. 국내에서도 반대의견이 컸다. 야당지도 자들은 결사반대하였다. 이는 가는 길을 몰라서 반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 1번 고속국도(부산시 구서동에서 서울 양재동 종점, 총연장 416km)를 건설했다. 현재 우리나라 고속국도는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남북으로 연결되는 고속국도 6(15번 고속국도65번 고속국도), 동서로 연결되는 고속국도 6(10번 고속국도60번 고속국도)가 있고, 이에서 나오는 지선(支線)이 있어서 교통망을 이루고 있다. 이를 산업의 대동맥이라 할 것이다.

1번 고속국도로 시작된 우리나라 고속국도의 현재 도로망은 거미줄 처럼 잘 짜여져있다. (자료 출처:https://postfiles.pstatic.net/20151112_60/hoya_1900_1447300513601RFF6g_JPEG/20.jpg?type=w2)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철강산업에 있었다. 철이 있어서 건설, It, 가전, 조선, 자동차, 항공, 방위산업 등 첨단 산업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일본 청구권 보상금이 이루어낸 중요한 산업은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이다.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고 제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던 이 나라에서 현재 연간 생산량 2,800만 톤이 넘는 철 생산국이 된 것은 포항제철로부터이라고 보아야 한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손꼽히는 나라에서도 제철 산업이 불가능한데 한국은 할 수 없다고 평가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제철(製鐵)은 정말 절실한 것이었다. 자본도 부족하고, 기술도 없고, 아무 경험도 없는 우리나라가 이 일을 해낸 것은 절실한 필요일 것이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국가나 기업 그 모두는 도덕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오늘 역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도덕성이다.

이 꽃은 거미백합꽃인데 싱가포르 호텔에서 촬영했고 박정희 대통령과 이광요 수상을 연상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당시 부당한 일을 당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점은 박정희 대통령의 과()가 될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응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나라 사랑이나 국민의 가난 극복에 대한 의지는 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던 그 시대에 나라가 산업화로 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서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다고 본다. 이는 그의 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8월의 모과는 잘자라고있다. 가을이 되면 노랏케 성숙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곧 정신적 풍요가 올 것이다.

  오늘 너무 잘산다고 모두 말한다. 나라나 사회가 부강할 때 사양길로 접어든다는 것은 역사가 말한다. 우리는 오늘 참으로 잘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물질적으로 부를 이루었다고 그것이 잘사는 길이 아니다. 우리가 선진 사회로 가는 길은 정신적 가치에 달려있다.

 

  종교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끝장이 난다. 그들이 물질로 영적 세계가 흐려진다면 맛 잃은 소금일 것이다. 나는 건강한 종교가 우리 사회의 보루(堡壘)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사회가 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교육 역시 사람 같은 사람을 길러서 우리 사회가 하나 되는 아우르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 국민이 모두 정말 잘살기 위해서 물질의 부유를 넘어서 정신세계에서 풍요를 누리고, 도덕성이 뛰어나고, 자유로운 가운데 협동심을 길러서, 자유민주주의를 이루어 어엿한 선진국으로 가기를 바란다.

 

 

202830()

2023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