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유럽 기독교 쇠퇴의 의미
수일전 벗으로부터 동영상을 하나 받았다. 그 내용은 기독교 국가라고 생각하든 유럽국가의 기독교가 쇠퇴하여 교회를 폐쇄하는 경우가 많고, 존립해 있어도 교인 수가 적어져서 유지 경영이 어렵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종교사회학자인 스테판 불리번트(Stephen Bullivant) 교수는 100년 안에 유럽에서 기독교가 살아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고 소개한다.
이 자료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계가 정확한 것은 아닐지라 해도 유럽국가에서 기독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는 시사(示唆)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유럽에서 역사가 500년 된 교회는 오래된 교회 축에도 못 낀다고 한다. 그런데 교인의 교회 출석율이 줄어들가고 있단다. 1950년대 교인의 90%가 예배에 참여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5% 정도의 교인만 참여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교회의 재정난으로 연결되어서 교회 건물 유지보수를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부동산 블로그에 교회당 매물이 많이 나와서 그 실태를 가늠하게 한다니 놀랍고 교회당 건물이 주택으로, 서점으로, 카페로, 서커스 훈련장으로, 식당으로, 술집으로 팔렸다니 민망스러운 일이다.
교인 없는 교회가 수없이 많은데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교회 건물이 사회의 애물단지처럼 취급된다고 한다. 마음 아픈 일이다. 유럽 하면 교회당이 있어서 관광명소가 되고 유럽의 문화를 대변하는 곳이었는데 오늘 그 안에 교인이 떠나니 사회의 골칫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유럽에 사는 16세에서 29세 청년들에게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을 했더니, 종교개혁의 선구자 얀 후스의 나라 체코(Czech) 91%를 필두로 해서 에스토니아(Estonia) 80%, 스웨덴(Sweden) 75%, 네덜란드(Netherland) 72%, 영국(UK) 70%, 헝가리(Hungary) 67%, 벨기에(Belgium) 65%, 프랑스(France) 64%, 덴마크(Denmark) 60%, 핀란드(Finland) 60%의 청년이 “아니라”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신(神)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유럽의 교회가 쇠퇴한 이유를 몇 가지로 들고 있는데 첫째, 출산율 저하, 둘째, 가치관의 상실, 셋째,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 주 5일제근무를 포함해서, 넷째, 고소득과 복지사회, 다섯째,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성경에 대한 회의(懷疑) 등을 이유를 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교회의 모습이 우리나라 교회 모습이 될 것 같다. 유럽국가의 교회는 천년 이상 역사를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톨릭이 200년을 넘겼고 개신교는 100년을 좀 넘긴 상황이다. 유럽이 기독교 국가가 된 배후에는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 후 유럽의 기독교는 정치와 연합하여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교회는 교권화되고, 사제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으니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교회는 형식화되어서 점점 그 본질을 잃어갔다고 본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가 세속화되도록 하였고 물질주의로 점차 가치관을 상실하여 기독교의 본질적 문제를 잃어버리고 우리의 삶과 유리된 교리 강화 등으로 삶을 위한 교회이기보다는 교회를 위한 교회로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절박함이 없는 사제들은 안일한 생활에 젖어있으니 성도들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겠는가! 식당의 음식이 맛이 없으면 손님은 떠나는 것은 이치이다. 맛없는 교회에 누가 남아 있겠는가?
교회 목사나 사제가 바로 서지 못하면 교인들이 바로 서겠는가? 신학교 교수가 생명력이 없는데 그에서 자라난 목회자들에게 생명력이 있겠는가? 오늘 교회 쇠퇴의 문제는 교회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이다. 유럽교회가 쇠퇴한 이유를 다섯 가지를 들었는데 이 문제와 결부하여 우리 교회의 실상을 보기로 하자!
첫째, 출산율감소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출산율이 제일 낮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 교회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창조 섭리는 말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얼마나 심각하게 전했는가? 진리를 삶에 접목하는 일이 목회자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땅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가서 많이 살면 그곳이 우리 땅이 된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동남아사람들의 땅이 될 것이다. 멀지 않아서 이들이 우리나라 지도층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인구 절벽과 교회는 무관한가? 따라서 교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가?
흑인과 이슬람을 보라 그들은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붕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층에서 출산을 피한 데서 왔다고 한다. 단순한 진리는 “사람 없으면 모든 것이 없다.”
둘째는 가치관의 상실이다. 물질의 풍요는 정신세계를 와해시키기 쉽다. 현실적 안락과 풍요는 정신적으로 더 차원 높은 생활로 이끌기보다는 현실부정, 좌절, 불만으로 연계되어서 자기 상실에 이르게도 한다.
우리나라 은둔(隱遁) 고립(孤立) 청년에 대한 통계는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50만이 넘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들에 대한 보건복지부 2023년 조사(21,360명)에 의하면 대졸 이상이 대부분이고 중졸 이하는 극소수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하고 고졸도 적은 편이니 이런 통계는 학력에서 오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고학력이라도 은둔, 고립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이들의 가정은 중산층이 많으나 본인은 하위층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취업 실패, 대인관계, 가족관계, 건강 관계로 은둔형이 되었고 회복 의지가 있어도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이런 고립 청년 중 기독교인 가정 출신은 얼마나 될까? 교회가 지닌 문제는 이런 데 있다. 교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청년들은 환경을 극복할만한 정신적 가치를 길러야 했겠지, 교회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삶에서 긍정적, 적극적, 도전 정신을 기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셋째,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이 종교의 필요성을 상실하게 한다. 이 역시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좋은 조건이었을 때와 어려운 조건이었을 때 자아의 실존적 가치를 실현하여 나아갈 가치관에 따르고 있다면 좋고 나쁜 환경이 문제 되지 않는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정신문화를 쇠퇴하게 한다면, 먼저 가치관을 기르지 못해서이다.
주 5일제 근무로 한가한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교회 예배출석보다는 오락이나 여행을 즐기게 됐다. 왜 이런 현상이 나왔는가 실질적으로 예배출석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배참석의 의미가 상실됐다는 말이다. 선택의 여지가 있으면 사람들은 더 낳은 쪽을 택한다는 평범한 이야기이다.
사랑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랑에서 믿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가치가 정립되어 있으면,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은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기독교가 쇠퇴한다는 말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고소득과 복지사회 도래가 기독교의 쇠퇴를 가져온다는 것은 정설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내면세계를 보면 전연 다른 이야기이다. 사회복지제도는 사회 재화의 재분배 방법의 하나이다. 국민 전체가 어느 정도 균등하게 물질적 부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 경제적으로 소외된 국민 즉 가난한 사람, 교육받고 싶은데 돈이 없는 사람, 병들었는데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교회가 위안이 되고 작으나마 원조를 받을 만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국가가 담당하게 되었고 교회는 그 역할을 잃게 되었다. 자연 교회의 의미가 상실된 것이라 본다. 그러나 이는 교회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이다.
물질적 복지는 국가가 담당하지만, 교회는 정신적 복지를 담당해야 한다. 교회에서 그 신도들은 영적 복지를 누리는가? 뜨거운 열정, 환상, 꿈 이런 것이 있어서 삶이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가? 매일 영적 호흡을 하는가? 기독교는 방법론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넘치는 삶에 초점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져야 하는 짐의 크기가 어떠하든 짐이 가볍고, 삶이 쉽고, 기운이 펄펄 나는 그런 삶인가? 세속정부와 기독교회는 그 역할이 다르다.
기독교회가 하던 일을 세속정부가 담당하게 되어서 교회가 쇠퇴했기보다는 교회의 본연의 할 일을 하지 못해서이다. 정신적, 영적 복지(福祉)는 세속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분명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따르고, 성경의 본질 문제를 교회가 다루어 간다면 기독교회는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근대과학의 발달이 성경 내용에 의문을 품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들은 성경을 허황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오늘 정보사회는 창의성을 가장 길러야 하는 중요 덕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은 청년들이 학습해야 하는 중요 분야이다. 이런 인문학은 허황하지 않은가? 서양에서 인문학의 형성은 대부분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과 성경의 본질은 서로 다른 측면을 설명하는 것이다. 꿈을 꾸고, 열정을 갖고, 비전을 갖게 하는 것이 성경이라면 과학은 이런 터 위에서 형성된 것이다. 과학은 자연의 현상 속에 숨어있는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과학의 발견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다.
나는 오늘 기독교회가 본질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교인들은 교회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느껴야 한다. 떠날 수 없는 힘이 교회에 있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비전을 길러서 새로운 세계로 나가게 해야 한다.
기독교회는 지역사회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회사역 중 설교가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만으로 지역사회와 하나 되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담임 목사체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 교회에는 사회복지 전담 목사, 상담 심리전담 목사, 교육 전문 목사, 음악 목사, 행정 목사 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목회자가 협동(協同) 목회(牧會) 체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담 심리나, 복지 사역을 통해서 지역사회와 소통 해야 하고 섬겨야 할 것이다. 청년교육을 전문으로 수행할 인재가 있어서 젊은 세대를 양육해야 할 것이다.
유럽 기독교회의 쇠퇴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곧 우리에게도 나타날 현상이다. 벌써 신학교 지망생이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유럽에는 목사나 사제가 아주 부족하다니 우리도 유럽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교인 역시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다. 개혁의 의지도 없고 변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다면 곧 우리에게 닥칠 일이다.
나는 유럽의 기독교 쇠퇴 현상을 보면서 세속화된 교회가 소멸한다는 점, 성경의 본질에서 떠나면 무력한 교회가 된다는 점과 이 사회와 유리(遊離)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면서 오늘 개신교회가 혁신(革新)하기를 바란다.
2024년 5월 24일(금)
Ⓒ 2024 J. K. Kim
'단 상(斷 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斷想)] 113. 홍부리 황새의 사랑과 인간 (9) | 2024.06.07 |
---|---|
[단상(斷想)] 112. 오월 남천의 자연 (7) | 2024.05.28 |
[단상(斷想)] 110. 한국 특수교육 130주년 기념 특별전 (3) | 2024.05.04 |
[단상(斷想)] 109. 한국 특수교육 130년 (9) | 2024.04.29 |
[단상(斷想)] 108. 남천의 봄 풍경 (9) | 2024.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