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08. 교실이 무너진다.

profkim 2020. 3. 8. 14:56



교실이 무너진다.

 


 

  

얼마 전 연구실을 옮겼다. 새 연구실은 전망이 좋은 곳이다. 문천지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전개되는 겹겹의 산이며 적당히 늘어선 수목들이며, 확 트인 전경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져서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연구실을 옮기며 웬만한 것은 모두 버렸다. 30여 년이나 사용한 연구실이니 오래된 책이며, 서류며, 비품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오래 쓰던 연구실을 떠나면서 옛 연구실과 거기서 보유하고 있던 자료가 많이 버려지는 현상은 한 시대가 또 다른 시대로 전이하면서 일어나는 인류의 과제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버릴 것을 못 버리면 새로운 장으로 넘어 갈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매우 심각한 갈등에 놓여 있다. 학생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교육은 20세기 산업사회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자연히 학생과 학교교육은 일치점을 찾지 못하게 되고 학생은 학교를 떠나든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체제는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기초지식기술기능을 갖춘 노동자를 생산하는 체제에 부합한 것이다. 산업사회의 기술자나 기능공 양성에는 외적 성취표준이 있고 그것에 도달해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으며 자격증은 사회생활의 기초가 된다. 대부분의 교육은 외부에서 학생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보편성이 강조되었고 단순하고, 경쟁적이고, 지식습득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탈산업사회는 질적 사회이고, 개성시대이며 다양성의 시대여서 창의성과 협동정신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살고 있으며 개성을 나타내고자 하며 또 무엇이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자 한다. 산업사회의 학교는 이런 정보사회를 사는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학교교육의 병리현상은 학교의 교육체체, 교육과정 운영 방법, 교수학습 방략, 교육자료의 개념 등이 새 시대의 새로운 인간 육성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데서 생긴 것이다.

현 체제의 교육은 우리가 양적으로 결핍이 크던 시대의 교육으로는 적합했지만 질을 추구하는 시대의 교육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

보편적, 표준적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에서는 학습에서 제외된 학생이 절반이 넘는다. 표준적 교육과정은 생활연령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학생의 정신연령 범위는 생활연령의 3분의 2가 되는데 이를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어 왔던 일이지만 표면화되지 않았었고 요즘 그것이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초고등학교 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교육환경의 열약, 교권의 실추, 다인수 학급 등의 요인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탈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대응되는 학교교육의 운영, 교육과정의 질적 운영 패러다임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학급당 인원수를 줄이면 좋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학급당 인원수가 25명 이하가 될 때부터 학습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학급당 인원수 35명이라는 방안으로 당장 무슨 효과가 나타나리라 보지 않는다. 그러나 학급당 학생을 줄이는 일은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실붕괴의 문제는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탈현대적 패러다임을 교육에 적용하여야 한다. 오늘 우리교육의 병리현상은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수요자의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교육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재구조화 되어야 하고 새 시대에 걸맞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

더욱이 현재 학교교육은 학생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하고 있다. 많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교과내용이 재미가 없어서 학생의 지적 호기심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교과서 편찬자나 교과 교육 전문가의 컨텐츠 구성에 성의가 부족하다고는 보지 않지만 지나치게 기능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교육은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다는 것은 메시지가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과 접근방식이 학생의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다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선택 기회 부족이 문제이다. 7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2, 3학년 교육과정이 선택교육과정으로 제정되었는데 이는 21세기 교육과정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모든 학교 교육과정은 선택적이어서 자신의 능력흥미취향에 따라서 과목이나 내용을 선택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자기 주도적자율적 학습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학생이 더 떠나기 전에 우리교육이 변해야 한다. 정보사회 지배 패러다임에 알맞은 학교로 재구조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즐기고 의미를 찾고 삶에 진정 도움을 줄 수 있는 학교로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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