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넘어 행복으로
인류는 자유를 위해 오랜 시간 투쟁하여 왔다. "자유가 아니면 주검을" 이라는 구호(catch phrase)는 인류사회가 오래도록 추구해온 가치이다. 산업사회의 가치가 객관성과 구체성에 있었기 때문에 이분법적 사고가 주된 흐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외된 계층은 항상 있었고 사회 표준에 맞지 아니하는 계층은 소외되고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구조주의자들(structuralist)은 사회 불균형이 계급 간의 불균형에서 온다고 보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계급투쟁을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생산성이 낮아지고, 고용은 줄고, 경제가 악화되었다. 소외되고 억압된 계층은 더 참담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paradigm)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소외 그것은 억압이며 상실이다.
자유 민주주의 사상이나 대량생산 체제에서 인간의 평등성이나 인권의 보장은 필연적으로 추구해야하는 과제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 경제적, 문화적 평등성을 보장 받도록 사회는 발전해 왔다. 개인은 존중되고 최대의 자기실현을 보장하도록 사회제도가 구안 되었다. 특수교육계에서는 이런 시도를 위해 많은 교육모형을 추구해왔다. 통합교육, mainstream, IEP, 교육에서 진단평가의 강조, 특수교육체제의 강화 등은 모두 개인을 생각하기 보다는 특수교육 대상 집단을 가정한 것들이고 이런 것들이 특수교육대상 아동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 가정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정보사회이고, 질적 사회이며, 개성시대이다. 교육, 복지, 학생을 보는 눈이 변했고 교육, 복지, 사회정책의 개념이 달라진 것이다. 개인은 유구한 역사 가운데 오로지 한 번 존재하는 것으로 그 만의 존재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집단과 결부해서 그를 이해하면 아니 된다. 그러나 그는 전체 환경의 일부로 생태적의미를 갖는 다는 점에서 유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 개인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배워야하고, 사회나 환경과 어떻게 교호(交互)하는 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먼저 그에게 가장 의미 있고, 그가 사랑하는 것, 그의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추구되도록 해야 한다. 바로 개인의 행복의 추구이다. 우리가 추구하고자하는 이상은 개인을 가장 행복하게 인도해 주는 일이다.
현대 산업사회가 추구해 오던 평등, 자유, 자아실현의 가치는 양적, 제도적, 객관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탈현대 정보사회의 가치는 질적, 개인적, 주관적 행복을 통한 자아실현이 추구해야하는 가치이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교육, 복지, 사회정책은 지원중심이 되어야한다. 진단 평가의 개념은 개인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개인에게 최적의 생존환경이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그 개인이 원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교육, 복지, 사회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오늘은 자유를 넘어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이며 우리의 노력은 이런데 맞추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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