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 주 문

profkim 2020. 3. 11. 16:43



주   문

 


 

   

최근 외식(外食)문화가 보편화됨에 따라 주말이나 생일이면 가정에서 상()을 차리는 것보다는 식당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이때 고객의 다양한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식당은 고객의 구미에 맞는 식단도 준비할 수 있는 식당이다.


고급 식당은 고객으로 하여금 선택의 기회와 폭을 넓힘으로 개성을 가미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낸다. 고객은 자신의 기호에 알맞은 식단을 제공받음으로써 만족의 수위가 높아진다.


양식을 선택하는 경우 우선 음식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스테이크(steak)를 선택했다면 어느 정도를 익힐 것인가(덜 익힐 것, 보통 익힐 것, 잘 익힐 것, rare, medium, welldone)를 선택하고 그 다음 딸려 나오는 음식 중 볶은 밥, 감자 튀김(french fry) 또는 군 감자(baked potato)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전채음식(appetizer)은 어떤 것으로 할 것이며 후식(dessert)은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만찬에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선택의 과정이 있다. 이런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이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을 수도 있다. 한국 요리를 선택한다면 메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싱겁게 하라든지, 맵지 않게 해야 한다든지 양을 어떻게 조정하라든지 하여 자신의 기호에 맞추게 된다. 특히 한국 음식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음식 쓰레기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손님의 기호에 맞추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주문에 의한 음식 문화는 고객의 기호에 맞는 음식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즐긴다는 것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 그 날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주방장의 의도에 따라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면 보기 좋은 음식을 제공하겠지만 그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에게 그것을 그냥 먹어달라고 주문한다면 여기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하나는 음식이 절대 부족하여 양적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때 음식이란 허기를 채우는 수단으로 어떤 것이든 수용하는 입장이다. 이들에게는 음식이라는 것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평 없이 주방장 메뉴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양적으로는 이미 충족되어 개성을 강조하고 질적 삶을 추구하는 부류이다.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주방장 메뉴는 수용되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식당과 학교는 무엇이 다른가? 둘 다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고, 고객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전자가 인간의 일차적 욕구를 충족하는 가시적 문화의 창출이라면 후자는 정신적,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는 비가시적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식당과 학교는 모두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전자가 잠시적, 반복적, 구체적 문제의 해결이라면 후자는 지속적, 현실적 문제의 연속적 과정을 다루며 현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와 현상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 양상은 다르지만 모두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 학교의 오늘의 현실은 일방적 주방장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과 같다. 모든 것을 학교가 결정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자하면 적어도 이러이러한 것은 기본적으로 배워야 한다느니, 필수 과목은 누구나 이수해야 한다는 뿌리깊은 기능주의자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오늘을 가리켜 질적 사회, 질적 교육, 질적 삶을 추구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질이란 무엇인가? 질은 주관적인 것이다. 각자가 최선의 것을 추구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각자의 최선은 공통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교육은 각자가 최선의 것을 추구하도록 개인 학생의 선택적 상황을 더욱 확장하고 개인이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도록 조성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교육은 학생에게 선택적 상황을 계속 확장해야 한다. 선택적 상황은 탈현대인의 질적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택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은 주체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학교교육은 학생의 자아의식이나 가치관을 기르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하고 그래서 스스로 잘 결정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문제적 상황에서 스스로 갈 길을 잘 갈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인 학생의 삶, 직업, 결혼, 자녀 기르기를 통해서 각자의 의미가 부각되도록 양육하는 것이 학교이고 학교는 맞춤교육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그들의 가정을 아름답게 이루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자세, 일을 사랑하는 실존적 자아를 실현해 갈 수 있도록 학교는 모든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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