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교육
객관적 사실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정답이 될 수 있다. 색, 모양, 개수, 무게 등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서 이렇게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도록 그런 것이라도 보편적, 객관적으로 이해되기를 소망해 왔었다.
아주 쉽게 이해하자면 질감(質感)과 같은 것을 색이나 모양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처리해 온 것이다. 그러나 질감은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또 상황에 따라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느낌이라든지, 값어치라든지, 관계와 같은 것은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보름달에 대한 느낌은 수억 만 명 인류 그 누구도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달의 모양, 측정한 시간의 색상, 개수는 누구에게나 같은 수준에서 이해된다. 전자는 정답이 없을 것이고 후자에는 어느 정도의 정답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개념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면 “벚꽃”이란 개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벚꽃에 대한 개념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화(自己化)되어 잇는 것이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벚꽃의 정의에서부터 추상적 정의까지 그 하나도 누구에게나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정의와 다른 사람의 정의는 같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여기에는 엄청난 개념오류가 게재되어 있다. 그래서 오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산업사회 학교는 정답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학생들은 정답을 알고 암기하여 시험지에 바르게 옮겨 쓰면 지식인이 되었다. 이것은 모든 지식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많은 도전이 생기게 되었다. 실증된 지식은 참인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다. 실증된 지식은 조건부적인 것이지만 이 조건에 따르리라는 간과된 요소는 없는지? 실제로 실증된 지식은 실증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이나 지식을 안다는 것(knowing)은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 자기구성에 의한 것이다. 객관적 정답을 안다는 것은 하나의 현상의 요약, 또는 그 대표적인 것을 아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오관을 통해서 인지되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지만 그것의 의미는 내면화된 자기 정의에 의하는 것이다.
정보사회의 학교는 정답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답을 만들어 나아가도록 지원하고 자료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곳이다. 자기 형성이 중요하고 스스로 자기 답을 만들어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여 서로 어떤 점에서 생각이 같고 다른지를 인식하고 담론을 통해서 개념을 공유하게 해야 한다.
학생은 자기개념화를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곳은 사회이다. 사회는 사회구성원, 사회적 환경, 자연적 환경 그 모두를 배경으로 하는데 학생도 그 전체 속 어느 자리에 위치해 있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터득해야 하는 많은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 이때 사회적 배경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개념의 공유는 그것이 객관적이어서가 아니다. 담론을 통한 상호이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의견이나 발상은 항상 존중되고 경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정보사회의 학교는 끊임없이 학생이 가치, 개념, 관계, 느낌, 관념, 지식을 창출해 내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학교는 주입이나 강요가 아니라 교육내용을 열어주고, 비지시적이고, 스스로 도전하고, 자율성을 지니도록 유도해 주어야 한다.
학생의 산출물에 대해서는 애정에 토대한 평가가 요구된다. 정답이나 오답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으로 접근했을 때 얻는 결론과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관점의 차이가 학습산출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을 다양한 상황에 따라서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정보사회의 생명력은 다양성에 있다. 정보사회는 다양성에 근거한 사회이고 다양성이 사회조화를 이루는 기초이다. 질적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질이란 그 자체가 주관적인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같을 수가 없다. 정보사회 학교는 모든 자라나는 세대가 서로 다른 사람으로 양육되도록 해야 한다.
학생 각자가 정답을 갖고 있어서 어떤 특정 상황에 처했을 때 여러 사람의 여러 가지 대응방안이 적용되고 활용되도록 해야 하며 여러 사람의 정답을 통해서 특정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알맞은 정답을 찾아내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산업사회의 기능주의적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어 가고자 하면 빨리 정보사회에 걸맞은 질적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의 지적 열정을 흥분시키고, 독수리처럼 도전하게 하고, 희망에 넘치는 학습자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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