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1. 교육 해체(1)

profkim 2020. 3. 11. 16:50



교육 해체(1)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설움이 있다면 배고픈 설움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빈곤의 역사였으며, 기본 생존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농업이 생산의 주 수단이 였을 때 농토가 적은 지역은 필연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영남지방보다 호남지방의 음식문화, 서예, , 그림 등이 더 높게 여겨지는 것은 농업지역인 호남지방의 생산성이 낳은 지역 문화적 특권이었다.


유럽도 근대화 과정에서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지중해연안 국가는 수로를 이용한 상업의 활성화로 부를 축적하고 잘 사는 편이었지만 북구라파는 가난하였고 남미의 안데스 산맥의 소산인 감자가 수입되고 나서 겨우 허기를 면하는 신세였다.


산업 혁명은 가난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물질적 부를 가져다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뉴톤일 것이다. 그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기계화, 자동화를 이루게 하였고 따라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대량생산이란 인류에게 물질의 양적 공급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는 충족한 생활로 연결되었다.


대량 생산은 공장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도시를 형성하게 하였고, 공장지대를 중심으로 노동자 집단을 만들었다. 농촌으로부터의 탈출은 핵가족을 생성시켰으며 농촌은 노인들만 잔류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 분업체제가 도입되었고, 위계적 관료체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생산라인에서 같은 제품을 경쟁적으로 생산하여 많이 생산하는 사람이 우수한 노동자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태되어야 했다.


이 체제에서 경쟁이란 생산을 증가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모든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잘했다 또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산업사회에서 교육을 지배한 패러다임은 기능주의였고 교육의 특성은 진보, 보편성, 규칙성의 원리가 지배해 왔다.


기능주의자의 교육은 진단-처방 그리고 과제분석을 통해서 계속적 진보가 구체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교육시켜왔다. 학생이 학습할 목표나 내용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것은 계열적으로 잘 나열되어 있어서 학생은 계열에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또 기술이나 기능의 훈련은 이미 객관적으로 설정된 성취기준이 있어서 어느 수준이면 1, 그 다음 수준이면 2급과 같은 급수를 부여하게도 된다. 학생은 이에 도전하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그에 도달하면 성공이고 미달이면 실패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산업사회 교육의 특성은 보편성에 근거한다. 보편적 특성이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 집단을 대표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표준이라는 것이 항상 존재하게 된다. 우선 생활연령을 중심한 집단의 보편성은 그 생활연령에 상응하는 정신연령일 것이다. 그래서 10살짜리의 교과서는 5학년 1학기나 2학기 교과서로 만들고 5학년 교과서는 정신연령 10세를 가상하여 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연령 범위는 생활연령의 삼분의 이 이상이 되는 것이니 10세 집단의 정신연령 범위는 6.5세에서 13.5세에 이를 것이고 이 교과서가 이들에게 맞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산업사회는 상대적 관계에서 인간의 능력을 보아온 것이다. 그래서 통계학의 정상분포가 인간을 판단하는 기초였다. 표준화된 검사들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전체집단에서 내가 몇 퍼센트에 속하는가를 따지게 된 것이다. 경쟁이나 상대적 평가에서는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생각하게 하고 수단과 방법에 관계없이 결과가 좋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산업사회교육은 객관적이고 양적이고, 결과지향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정보사회 교육은 주관적, 질적, 과정지향적, 절대적인 것이다. 정보사회는 질의 시대이다. 빈곤타파가 과제가 아니라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가 중요과제가 된다.


대량생산 체제는 붕괴되고 소량생산 내지는 작품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창의성과 협력정신이다. 산업사회 학교가 기초지식, 기술, 기능에 역점을 두고 객관적 표준에 도달되도록 교육시켰다면 정보사회 학교는 학생의 내부에서 무궁무진한 것이 고치에서 비단실이 계속 나오듯이 끊임없이 나오도록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학교는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교육을 수행해 온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 그 시대의 인류의 해결과제를 위해서 매우 적절한 교육이었다. 그러나 탈산업사회는 또 다른 인간상과 해결해야할 과제를 갖는 것이다. 교육은 그에 부응해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첫째, 정보사회의 학생에게는 진보에 역점을 둔 교육보다는 모든 학생의 차이점을 고려해 주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단순한 진보에 의존하는 학교는 질적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기능주의적 운영을 해체하고 질적운영체제로 재구조화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정보사회가 질적 사회이고 주관주의에 지배받는다면 자연히 보편성에 의한 학교체제는 알맞지 않을 것이다. 보편성이란 객관적 표준, 결과, 양적인데 근거하게 된다. 오늘날의 학생은 스스로 자신의 표준을 설정하여 도전해야 하는데 과정이 중시되고, 질을 추구하고 있는 이 시대에 산업사회 학교 체제는 더 이상 알맞지 않다. 그러나 오늘 우리 학교는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새 시대 새로운 요구를 가진 학생을 구체제에 묶어두고 있다.


셋째, 정보사회 교육은 비규칙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모집단에 의한 상대적 위치나 집단이 지니고 있는 어떤 규칙성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은 각자의 독특성을 인정받으면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자율적으로 도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기 바라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학교에서 노력을 보이는 면이다. 성적 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꾼다든지, 수행능력 중심의 평가를 통해 개인의 진보를 기술한다든지, 예체능 실과는 학생 평가에서 그들의 행동을 기술하도록 하는 것 등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특수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완전히 개체 기술 형식으로 평가체제를 바꾼 점은 높이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전통적 인식 즉 상대적 능력 평가 태도를 버리기 어렵고 왜 그것이 바뀌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점에서 그 우려가 크다. 우리는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산업사회와는 패러다임이 다르다. 새 시대의 교육은 새 시대 패러다임에 의해 재 구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산업사회 패러다임에 의한 학교는 해체되고 새시대가 요청하는 인간을 기르기 위한 학교로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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