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3.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profkim 2020. 3. 11. 17:03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죤 스타트 밀은 대중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죤의 천재성이 대중교육으로 인해 손상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잘 보존하면서 개발하기 위해서는 개인교수와 스스로의 교육계획에 의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런 경향이 상당히 나타나고 있다. 소위 가정학교(home school)라는 형태로 천재성을 가진 아이나 특수재능을 가진 아이 또는 그들 부모가 자녀의 교육을 특별히 책임져 보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에 의해 형식적인 학교가 아니고 가정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교육내용을 주로 이수하면서 사회교육 프로그램, 특강 또는 대학의 특정강좌를 신청해서 이수하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과거는 주로 고등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났었으나 최근 90년대 이후에는 중학생까지 소위 자퇴라는 것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통계를 보면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학생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학생이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떠나는 유형이 두 가지로 나뉘어 지고 있다.


하나는 학생의 천재성이나 우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떠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학교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여 떠나는 부류이다.

전자의 경우는 후자만큼은 아니라도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고 외국의 경우 이런 집단을 지도해주기 위한 많은 문헌이 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후자의 경우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데, 더 연령층이 넓어지고 이유도 다양화되는 경향이다.


두 가지 부류는 대처방안이나 그 결과가 상이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떠나야 되는 이유는 같은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이들은 모두 학교에 적응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이들이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가? 학교는 집단별로 성취해야 하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 목표는 보편성에 의한 것으로 이 목표는 많은 학생들에게 교육 목표로서의 의미가 상실된 것이다. 한 학생은 이런 목표로서는 성취해야 할 의미가 없는 낮은 것이고 다른 학생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고정적, 보편적 표준은 많은 학생의 삶이나 학습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어떤 경우라도 이들은 자신의 소질을 충분히 개발하지 못하며 학교 교육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모든 학생에게 각자의 능력에 부응하는 교육내용이 주어지고 각 학생이 최선을 다하도록 지도되고 학생들은 그들의 성취에 대해 환희하는 학교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고객인 학생을 깊이 생각하고 그의 요구에 부응할 줄 아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둘째, 학교 교육은 재미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 성인들 누구도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기보다는 당위로 꼭 해야 할 일을 참고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며 현재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몇 년 전 한 친구가 내방하였기에 학부 1학년 강의에 특강을 부탁하였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매우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한 것이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앞으로 4년 간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고, 꼭 해야 할 일을 하세요. 그러면 내가 여러분의 인생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이 친구 분의 갈파는 호소력이 있어 애송이 일 학년 학생은 마음속으로 그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잘못된 가르침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 시간, 나는 지난 주 친구 분의 말을 수정해 주기로 했다. “여러분, 지난주 특강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망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4년 간에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 할 일로 하세요. 그러면 내가 여러분의 인생을 보장하겠습니다.”


학교 교육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의무나 진로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활력이나 자기 주도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왜 학교 교육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많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학생은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선택할 기회가 전연 없다. 학교나 교사가 공급하는 내용은 학생들에게 의미 없는 것이 많다. 그러나 그것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제공되는 내용의 구성이 지나치게 지식 중심적이고 생활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체육이 라면 학생들에게 달갑지 않은 과목이었다. 그러나 최근 체육 교과는 성공한 사례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교과서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늘 누구나 운동을 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고 운동을 안 하더라도 그 필요성은 이해하고 있다. 교육받고 있는 많은 학생들은 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생활인이다. 그렇다면 생활에 유용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가면 좋고, 배우면 유용하고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학교라면 학생이 왜 학교를 떠나겠는가.


셋째, 자유와 책임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우리 학교의 모습이다. 학생은 학년, 학급이라는 틀에 묶여 있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이동할 수 없다. 교과는 누구에게나 고정적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학급은 정해져 있고 여기서 실패에 대한 책임은 학생에게 묻는다면 그 학교는 모든 학생을 수용할 수 없는 학교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많은 학생이 학교를 떠난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의 책임인가. 더 나아가 학교는 어떻게 개혁하고 재 구조화 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세계 교육 개혁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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