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5. 불공평한 게임

profkim 2020. 3. 11. 17:17



불공평한 게임

 


 

  

며칠 전 미국 솔트레익시에서 개최된 윈터 게임의 남녀 휘겨스케이팅에서 캐나다 선수가 자신들의 능력과 연기를 마음껏 보이고 끝나고 나서 너무 기뻐하고 두 남녀가 얼싸안고 감격하였다. 그리고 채점결과를 기다리는 자리에 앉아서도 관중 환호에 대답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점수가 발표된 뒤 특히 여자선수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그 결과에 대해 아쉬워하고 억울해 하는 모습이었으며 시상대에 올라서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여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며 보는 사람의 마음도 애석해 졌다.


이 캐나다 선수는 자신이 틀림없이 우승이라고 생각했지만 금메달을 소련 선수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들의 점수 차는 아주 근소한 것이고 9명의 전문심판에 의해 결정된 것이니 심판자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겠지만 선수 자신의 느낌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경기가 있는 다음날 텔레비전에서 캐나다 선수를 초청하여 소련 선수의 시연과 그들의 시연을 동시에 비추면서 비교하고 평가한 뒤 그들의 이해를 촉구하는 것을 보았다.


그 뒤 올림픽 위원회는 이 팀에게도 금메달을 수여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220일 열린 쇼트트렉 1500m 경기에서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가 당당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했으나 미국 선수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실격되는 장면을 보았다. 온 국민이 분노하고 네티즌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왜 우리는 분노하였는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심판의 자질문제, 선수들의 얄팍한 수작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잘못된 판정에 대해서 모두가 분노하고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공평하게 이해되고 평가된다는 것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운동경기나 사회에 공평한 원칙이 없다면 이 세상은 부당하고 패거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종, 학연, 혈연, 지연과 같은 것이 작용하면 사회는 아노미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누구나 열심히 하고자 하지 않게 된다.


우리교육현장의 불공평은 극에 달해서 손도 써볼 수 없는 상황인데 더 큰 문제는 그 불공평한 상황이 인식되지 아니하고 당연한 것 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무의식적 무지(無意識的 無知)의 상태이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큰 무지 즉 무지 중의 무지는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라 하였다. 우리교육의 불공평성은 아마 이런 무지 중의 무지에 속하는 것이어서 걱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16, 12, 8살의 어린이를 같이 세워서 100m 경주를 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습에서는 이런 현상이 항상 반복되고 있다. 16살 어린이는 항상 1, 8살 어린이는 항상 꼴찌를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언제나 예측되는 것이고 그 예측은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기는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매일 일어나는 것이다. 생활연령 12살인 학생은 6학년 아동이고 그들은 모두 동일시되지만 그들의 지적 능력은 8년 이상의 범위를 가지며 8세에서 16세 범위를 가질 뿐 아니라 8세 이하의 아동은 특수교육대상으로 분류되니 일반학급에 남아 있는 아동의 능력 범위는 무척 큰 것이다.


이들 모두가 같은 학습목표에 도전한다고 생각해 보자 14세 에서 16세 아동에게는 너무 쉬워서 이미 학습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8세에서 10세 아동들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학습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학교는 16세 아동에게 우등상이라는 것을 주어 왔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항상 우등상을 받는 아동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생활 태도가 형성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들의 부모는 두려워해야 한다. 사회는 학교가 공짜 정신을 학생들에게 길러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상을 주는 사회라면 자연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사회 어디선가 그런 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야 말로 우리교육의 희생자가 아니겠는가?


정신연령이 떨어지는 아동들은 게임도 되지 않는 게임을 학령기 동안 계속하면서 남의 눈치나 보고 패배의식만 기른 채 자기상실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학교가 이들에게 지워준 짐은 무엇인가? 학교는 이들에게 아무 것도 준 것이 없으면서 막대한 경비와 노력을 들여 학생을 실패자로 만들고 있다. 과거 우리사회는 수재 몇 사람이 사회를 움직인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21세기는 그렇지가 못하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생동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 갈 때만이 국가적 번영을 기약할 수 있은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모든 국민 능력의 극대화, 특히 창의적이고 협력적 능력이나 태도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 명제이다. 세계 제국은 교육개혁을 선택사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교육개혁의 방향은 모든 국민이 그들의 소질과 그들의 원망을 고려하여 각자의 출발점에서 출발시키되 각자에 알맞은 목표를 성취하도록 교육제도를 바꾸고 학교를 열고, 자유로이 흘러 갈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학교운영체제를 교육의 질적 운영이라고 한다.


공평한 게임이 보장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정해진 교육과정, 교과서, 학습방법을 지양해야 한다. 각자의 능력과 요구와 학습습관에 따라 각 학생이 최선으로 도달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학교가 필요하다.

더 이상 불공평한 게임에 학생을 투입하여 희생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교육수혜자요 교육을 통해서 만족할만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의미있는 곳이 되도록 학교는 재 구조화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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