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기 서인(責己 恕人)
요즘과 같은 각박한 세월에 옛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마는 이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로 책기서인을 늘 생각하고 산다. 명심보감 존심편에 ‘다른 사람을 나무라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나무라고,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責人之心 責己, 恕己之心 恕人)그러면 성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할까 염려하지 말라(則不患不到 聖賢地位也)’는 말이 있다.
사람이 가장 똑똑할 때가 다른 사람을 나무랄 때라고 한다. 그때 사람의 눈은 빛나고, 유식하고, 자신이 성현의 자리에 오른 것 같이 느끼면서 사람을 호되게 야단치고 그의 허물을 들추어내게 된다. 사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상당히 해 왔다. 이런 똑똑한 마음, 예리하고 비판적이고 빛나는 눈초리로 자기자신을 질책한다면 이 세상에 실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기비판은 자기를 바로 세우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여 자신의 행동을 가치 있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되어서 항상 모범이 될 것이다.
사람이 가장 어리석을 때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할 때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간은 항상 너그러운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는 있을 수 있는 일로서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과오를 축소하든지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이런 너그러움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고 극에 달하는 비판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형편임을 고려한다면 이런 훈계는 옛 고전에서나 논의되는 이야기로 생각된다.
두 가지 이야기는 자신에게는 가혹하고 타인에게는 너그러워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남에 대해 비판적이고 가혹하게 대한다는 것은 인간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고 그렇지 않은 경구가 오히려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제자나 우인 또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눈감아 주고 용서해 주라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일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비판하고 일깨워주는 자세가 어떠냐 하는 게 관건이다.
진정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비판은 비판을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모두에 마음속에 생명력이 있어서 서로의 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게 된다. 교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학생을 벌할 때 ‘사랑의 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가슴을 터놓는 대화와 고통을 나누는 감정이입이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바라만 보아도 수많은 대화가 그 속에 있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도산 선생은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 ‘나도 그렇게 잘 못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라고 가르쳤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볼 때 이런 마음을 갖고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는다면 다른 사람의 과오가 자기 비판의 기회가 될 것이고 이것은 자기향상의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은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교육자는 제자들의 잘못에 대해 진정 비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참된 스승의 길을 여는 것이다.
자기 비판은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 어떤 친구 분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이 분은 식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식사 전에 자기가 땅을 하나 샀는데 그것부터 보고 식사하자는 것이었다. 땅 구경도 나쁠 것이 없어서 그러자고 하여 그가 새로 산 땅 구경을 하게 되었다. 접근로도 괜찮고 약간의 구릉지대에 만평이 넘는 넓은 땅을 구경하게 되어서 잘 했노라는 칭찬과 부러움들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이 넓은 땅을 갖게 되었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겠노라고 했더니 그 친구 분 대답은 땅 만평이 무슨 땅입니까 라는 자연스레 나오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 땅 만평을 가진 사람은 그것은 땅이 아니다. 돈 1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1억원은 돈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소유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는 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너그러운가?
특히 교육자는 평생 잘못해 본 경험이 없다. 늘 잘 못은 학생이 한 것이고 사회의 잘못이고 학교의 처사가 잘 못된 것이다. 이런 삶은 자기 기만이고 자기향상은 기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삶의 이유가 나에게 있듯이 나의 삶에 대한 평가도 나의 삶의 이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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