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가 빠진 아이들
대학에서 신입생과 만나는 것은 나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다. 30여 년을 입학생 첫 학기 강좌를 자청해서 맡아 했다. 첫 학기가 중요하기도 하고, 첫 학기에 기초를 단단히 해 놓아야겠다는 노파심이기도 했지만 입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어느 강의보다 흥분되고 나의 삶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신입생은 대학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두려움, 설렘이 혼재해 있다. 놀란 토끼처럼 긴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들 속에는 자신감이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질문을 많이 하는 강의를 한다. 질문에 대해 오답이면 어떻게 하나 라는 두려움, 여러 사람 앞에서 실수는 망신이라는 생각. 그래서 자신의 의견이나 대안적 답을 이야기하는 데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놓질 않는다.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알고 있는 것 또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발표하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는 것은 자랑거리이고, 모르는 것은 수치라는 생각은 불식되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소극적이고 수동적 행동을 하며 정답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고등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정답 아니면 오답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이루어졌고 학생은 객관적 표준에 도달하여야 하고 다른 학생보다 더 잘해야 된다는 관념에 잡혀있기 때문에 항상 경쟁의식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없을 때,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가 없다. 자신은 실제로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나타낼 수 없게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기가 빠져 있는 것이다. 교육은 지식이나 기능을 기르는 것이 모두가 아니다. 삶에 대한 지혜, 방법, 대처능력 등도 배워야 되고 자신이 우주의 중심으로 역사의 주연배우임도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객관적 표준이라는 것을 설정해서 그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로 치부해 버리며 그 결과가 무엇인가에 따라 학생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계속해서 실패 경험을 축적해 간다. 실패 경험은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고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시키고 자신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현상은 상대적 개념으로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 앞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많은 학생이 자기 자신은 가장 값진 인생을 살고 있으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나만의 독특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의 능력이나 여건에 관계없이 그런 인생으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에게 조그만 지식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참된 인생에 대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학습의 성과에 영향 미치는 것은 그의 지능, 건강, 가정 환경, 학습 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더 큰 문제는 학교가 학생에 대한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드시 학업성적이 높은 것이 또는 낮은 것이 학생만의 문제인가? 과거 우리 교육은 학습 결과는 학생의 문제라고 보아 왔다.
요사이 교육에서 생태적 접근이 활발해지고 있다. 교육의 결과는 생태적 문제이지 학생만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학교가 학생에게 알맞은 과제를 부여했는지, 환경은 제대로 구성해 주었는지, 교수․학습 방법은 제대로 제공되었는지 등 학교가 책임질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와 학교의 잘못된 관행으로 많은 학생이 자아를 상실하고 자기 혼란에 빠져 있다. 많이 가르치는 학교는 좋은 학교가 될 수 없다. 학생이 스스로 학습의욕을 갖고 삶의 표현으로 진지하게 학습할 수 있게 해 주는 학교가 진정한 학교이다.
나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앞으로 4년간 특수교육 연구하는 것을 즐기십시오” 라고 하면 모두 웃는다. 공부하는 것을 즐기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학습을 즐긴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자신의 학습을 즐기는 사람만이 학문적 성취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학습을 즐기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으로 명료히 정리하며 발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아는 자신 있는 사람이 요구되는 때이다. 기가 빠진 아이들은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자신이 없으니까 남의 언행에서 자신의 답을 챙겨보려는 것이다. 학교는 답을 얻었을 때 왜 그런 답이 나오게 되는지 그 이유를 밝히도록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여 자기 사고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언제나 당당한 자기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준 것은 무엇이고, 빼앗아 간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조목조목 따져서 우리 학교가 무엇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21세기 이 땅에 살아갈 사람은 자신 만만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이웃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무슨 일이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길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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