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4. 자선과 나눔

profkim 2020. 3. 13. 14:31



자선과 나눔

 


 

  

성탄절이 다가오면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여 오가는 이들에게 성탄과 연말이 되었음을 알릴 뿐 아니라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어서 선행을 쌓을 기회를 주기도 한다.


우리 이웃 중에는 참담한 고통을 당하는 분들이 많다. 독거 노인, 소년 소녀가장, 불치의 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 실직한 가정,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 등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 이웃의 따뜻한 손길이 미친다는 것은 너무 고맙고 동족애를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구세군의 자선 냄비를 대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서운해지면서 아직도 우리사회의 수준이 아주 낮다는 것을 생각한다.

자선, 동정, 자비라는 말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에게,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베푸는 시혜적 개념에서 생겨난 중세적 개념이다. 나는 언제나 묻는다. 대한민국 국민가운데 누가 자선의 대상인가? 대한민국국민은 평등하고 이 나라의 주권자이다. 우리국민 가운데는 자선이나 동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사회라면 누구나 평등한 존재이다. 자선은 계급사회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부정되는 것이다.


나는 구세군의 자선냄비의 명칭을 나름대로 붙여보았다. “사랑의 냄비”, “나눔의 냄비”, “생명의 냄비등이 그것이다. 이웃의 사랑을 나누는 냄비로서 그 의미는 재 개념화되어야 한다.


복지국가의 이상은 모든 국민의 복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국가는 개인의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개인의 능력, 조건, 그들의 부모, 신체적 건강에 관계없이 국민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지원 받아야 한다.


이런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국가는 모든 국민의 상황에 대처한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다른 한 측면에서는 국민 스스로 서로 돕는 기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 국가는 국민의 교육, 노동, 복지에 있어서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부모가 가난해서 그 자녀가 교육을 못 받는다든지, 자식이 가난해서 노부모를 부양할 수 없어 노인이 방치된다든지, 가난해서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생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재정지원 계획서(financial aids plan)를 제출한다. 그러면 정부에서는 그 학생이 진학하고자하는 대학의 등록금, 그 지역에 사는데 필요한 생활비, 책값, 교통비 및 용돈을 모두 계산하여 그 일부는 장학금(grant)으로 주고, 일부는 일자리를 주어 벌게 하고, 또 필요하면 일부는 대여금(loan)을 주어 학업에 지장이 없게 해준다. 만일 부모의 수입이 상당액이 된다면 부모 부담금(parent contribution)도 정해 준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국가에 요구하여 지원을 받는 것이다. 모든 사회정책의 원리는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민에게는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고 국가는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만드는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평등한 국민으로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우리 민족의 서로 돕는 아름다움 풍습은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나누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돕고자 할 때 기본자세는 현재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우월자나 상위자로서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백화점 대형 현수막에 장애인을 돕기 위한 자선바자회라고 정말 대문짝만한 글씨를 써 놓고, 바자회가 끝나면 몇 푼 이익금을 장애인을 위해 내어 놓는 게 현실이다. 장애인이 자선의 대상인가? 우리사회가 제도적, 정책적, 시설, 설비의 문제점 때문에 그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망각하고 있다


의자차를 탄 사람은 경사로가 없는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의자차를 들어올려 건물로 들어가게 하였다. 만일 경사로가 있었다면 이 두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의자차를 들어주는 사람이 자선을 베푼 것인가? 근본적으로 건물을 잘못 만든 것인가? 그 대답은 애써 들을 필요가 없다. 장애인이 갖고 있는 문제 그것은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병리 현상 때문에  장애인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의 뿌리가 어디인가? 그건 분명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 사람을 자선의 대상을 삼아서는 안 된다.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문제는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되고 이웃간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나눔의 개념으로 정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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