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6. 개성 시대

profkim 2020. 3. 14. 13:51



개성 시대

 


 

  

2002 세계월드컵이 절정에 다 달았다. 우리사회에 새로운 단합과 국민이 하나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선수도 잘 뛰었지만 국민이 열광하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응원단의 모습에서 우리는 탈현대적 양상을 보아왔다.


톡톡 튀는 세대, 다른 사람과 같고 싶지 않다. 평범한 것은 싫다. 무엇이든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비록 붉은 유니폼을 입어도 자신만의 패션이 있어야 한다. 머리 스타일, , , 신발, 무엇이든 자신만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남녀노소 모두 얼굴 페인팅에 머리 모양을 축구공처럼 한사람, 머리를 튀긴 사람, 태극기로 치마를 해 입은 사람, 바디페인팅을 한 사람 모두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과거 어느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다.


탈 산업사회를 개성시대라고 한다. 양적 충족을 못하던 시대에 인류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대량 생산이었다. 소위 산업화 과정이 기계화, 자동화에 의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물질적 충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시절에 우리는 개성을 논할 수 없었다. 우선 물질적 충족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탈산업사회는 정보사회이다. 정보사회는 지식정보의 끊임없는 재창출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하나의 지식이 지속적으로 그 생명력을 가질 수 없는 시대이다.


끊임없는 지식 생산이 있어야 인류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재창출 해 내는 민족은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민족은 자멸하게 될 것이다. 지식의 재창출은 기술과 기능에 접목되어 최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지난 날 우리는 물건을 사러 가면 흔히 묻는 말이 있었다. “여보, 주인장 이 물건 오래 쓰는 것입니까?”, “이거 수품 좋소?” 물론 좋은 물건은 오래 쓰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누구도 그런 것을 묻지 않는다. 마음에 들면 사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돌아다보지도 않는다.


마음에 든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보편성이나 객관성이 아니다. 이런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기업이고 학교이다. 즉 개인의 요구에 알맞게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성시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학교교육은 끊임없이 분출하는 개인 학생의 요구를 발산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을 해야 한다. 따라서 고정적, 구조적, 표준적, 보편적인 것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다.


개성시대에 알맞은 학교는 유연성, 개방성, 개인적, 독특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21세기 학생은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그것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


학생이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생이 하고 싶은 학습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이 몰두하는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 고정적, 구조적 학교에서는 창의적이나 협동심을 기를 수가 없다. 이런 학교는 주입식 교육에 적합하며 대량 생산체제의 양적 학교의 틀이다. 보편성이란 모든 사람이 지니는 공통적 특성인 것이다. 이런 보편성의 원리에 의해 교육을 하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은 배우겠지만 개인의 독특성이나 표현, 창의적 사고는 묻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청소년은 개성을 추구하며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전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교육은 이제 시간이 없다. 우리가 빨리 변하지 못하면 세계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고 낙오자가 될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자산이고 힘이고 제품인 시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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