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서드에이지에서 생활을 회상(回想) 하면서
나는 노년에 6년여를 창녕에 있는 The-K서드에이지에서 보냈다. 식당에서 해 주는 밥 먹고 나름대로 자기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좋았다. The-K서드에이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여러 가지 동호회 활동을 통해서 노년을 보내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아서 많은 활동에 참여 활 수 없었지만, 동호회 활동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장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그 활동의 의미를 돼 새기곤 하였다. 도전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합창, 색소폰, 그림, 서예 동호회는 노년을 보내는 나에게 충분히 활력을 불어넣었다. 내가 참여한 유일한 동호회는 그라운드 골프(ground golf)인데 화왕산 구장에서 오전 2시간여에 세 게임을 하고 나면 4,500보 정도를 걸을 수 있고 지우(知友)들과 대화와 게임운영에 관한 기술을 조금씩 습득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공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면 내 의지와 거의 관계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않아서 변수가 많았다. 그러나 그 또한 사람 사는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매월 모이는 월예회 장(場)은 따뜻했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제일 인상에 많이 남는 것은 캠퍼스의 정갈함이다. 잘 꾸며진 캠퍼스에는 사철 피는 꽃과 봄철에서 가을까지 이어지는 과실수의 열매는 보기 좋았다. 나는 캠퍼스에서 걷기를 해서 구석구석 심어진 나무며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는 오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서 대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he-K서드에이지는 잘 계획된 노인 주거시설이었다.
The-K서드에이지에는 부대시설로 사우나, 찜질방, 수영장, 스크린골프, 당구와 탁구 시설, 노래방, fitness, 도서실, 널찍한 식당 등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이 모두를 다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항상 열려있는 시설이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제일 많이 이용한 시설은 역시 사우나였다. 매일 fitness에서 운동하고 사우나하고 일과를 마쳤으니 오래 기억될 것이다. The-K서드에이지의 시설과 설비는 수준급이었다.
The-K서드에이지의 프로그램도 무척 다양했었다. 매주 수요일은 맛집 방문이 있어서 여러 곳의 음식점에서 입맛을 돋우었다.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는 일도 많아서 여러 명승지를 회원들이 관광하기도 했다. 타지방 먼 곳에서 오신 회원들에게는 영남지방의 명승지를 많이 관광할 기회이었을 것이다. 대체로 당일 다녀올 수 있는 코스여서 영남지방과 호남의 동부지역이 주였다. 회원 서비스는 성의를 다해서 했다고 평가한다. 대구와 부산에는 일주일에 두 번 셔틀을 운영해서 대구, 부산과 창원 등지를 다니는 입주자에게는 여간 편리한 것이 아녔다. 회사 보유 버스도 충분하였고 기사분들도 친절하고 안전운행을 해 주었다.
The-K서드에이지의 직원들은 일반행정직, 사회복지전문가, 간호사 등으로 구성되어서 항상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직원들이 한결같이 친절했다. 입주자에 비례해 직원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이것이 회사 운영에 짐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입주자 처지에서 보면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아들과 딸이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입주자를 돌본 직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회사가 문을 닫았으니 그들도 어디로든 새 일터를 찾아가야 하니 그 앞길에 대로가 열리기 바란다.
인생 제3막이라 하여 서드에이지라 했겠지, 노년에 낯선 사람들이 만나서 이웃하며 살게 되었다. 적응력이 떨어진 노년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이웃사촌이 되었다. 사귐에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러나 많은 분을 만나고 사귐이 있었다. 노년에 덤으로 얻은 인간관계이다. 그러나 귀한 만남이었고 서로 많은 가르침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나는 칠십이 넘으면 모두 동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만나서 나이를 묻는 경우가 많았고 나이가 많으면 으레 장자(長者) 노릇을 하려 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관습이었을 것이다. 이 점도 이해하면 인간관계가 쉽다. 대접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대접해 주면 된다. 무엇을 달라 하는 사람에게는 주면 된다. 이런 경우 사람 관계는 아주 쉽다.
나는 The-K서드에이지에 6년을 살면서 많은 분과 교유하게 되었다. 인품이 고매하신 분들이 많았다. 세상에는 좋은 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J 씨는 90이 넘은 분인데도 노소동락(老少同樂) 하는 지혜와 젊은 사람보다 더 사리 분별을 잘하신 분이다. 그러니 건강도 남달랐고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한 분이다. P 교수 내외, C 교수 내외, M 교수, U 교수 내외 같은 분들을 통해서 인생 수업을 많이 하였다. C 국장 내외, M 교장 내외, J 교장 내외, Y 교장 내외, S 교장, C 교장 같은 분들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 건강 비법도 배우고, 노년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도 이분들을 통해서 배웠으니 지난 6년 동안 나의 정신적 삶과 사회생활이 활력을 얻었다 하겠다.
입주자뿐 아니라 방문한 분들과 더러는 근처 있는 cafe에서 차 한잔 들면서 정담을 나누곤 하였다. 창녕군에서 잘 조성한 못이 교동 향교(鄕校) 아래편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걷기 트랙도 잘 조성되어있었다. 못 북편으로 아담하게 지어진 cafe가 있다. 이름하여 모다 페(cafe modafe)라 하여 이름이 이국적 냄새가 난다. 그러나 순 우리 말이다. “못 앞에 있는 카페”라는 뜻이다. 확 트인 공간에 커피 향이 일품이었다. 더러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여형제분이 운영하였는데 인심이 좋아서 더 여유로웠을 것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는 2010년부터 computer에 너무 오랜 시간 앉아있어서 디스크에 문제가 생겼다. 허리가 아프고 걷기에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한 치료 역시 입주자분들의 가르침으로 많이 회복되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걷고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좋아졌으니 The-K서드에이지에 입주한 덕이다. 이런 노인 주거시설에 입주하면 노인 정보를 많이 얻게 된다. 특히 건강 관계 정보를 통해서 서로 도움이 된 경우가 많았다
The-K서드에이지 캠퍼스 동편으로 텃밭이 조성되어있었다. 여러 가구에서 텃밭을 경작하였다. 우리 집에서도 무척 열심히 밭갈이했고 봄철부터 채소를 유기농, 무농약으로 재배하여 먹을 수 있었다. 일을 통하여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고 먹거리도 얻는 일거(一擧) 삼득(三得)이 되었다. 상추는 늦가을에 파종하면 이른 봄부터 수확할 수 있다. 들깻잎, 오이, 도마도, 땅콩, 고구마, 양파 등등 조금씩 심으면 심고 기르는 재미가 쏠쏠하며 먹거리를 얻는 즐거움이 크다. 가을 무를 수확하면 일 년 농사를 접게 된다. 무척 유익한 공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농사를 하여 건강을 회복한 분들이 여러분이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The-K서드에이지에 입주하니 바로 눈앞에 교회가 있었다. 걸어서 5, 6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이 교회를 6년을 다녔다. 나이 든 사람에게 가까운데 교회가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여기서도 많은 분을 만나서 교유할 수 있었다. 같은 입주자로서 참석하는 분들과 토착 성도들과 만남은 새로운 교회 생활의 모습들을 알게 하였다. G 교회는 나의 삶의 또 하나의 점(dot)을 찍게 하였다.
나는 평생 The-K서드에이지에서 평생을 살려 하였다. 회사 사정으로 중도에 나오게 되어 섭섭함을 금할 수 없다.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이주하였다. 내가 입주할 때만 해도 회사가 무척 활발했고 입주자들도 많아서 오늘과 같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조금씩 입주자가 줄기 시작하였다. 회사의 규모는 그대로인데 입주자가 줄면 경영압박을 받을 것은 당연하겠지, 그런데 근래 수년은 대책 없이 그대로 버려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대책 없이 몇 년이 지났으니 사업을 접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무척 아쉽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방만한 경영은 그 결과가 분명하다.
한국교원공제회에서 퇴직한 교원을 위해서 The-K서드에이지를 설립하고 운영한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움은 경영을 잘하여서 입주한 회원뿐만 아니라 앞으로 퇴직할 교직원들에게 희망을 품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한 점이다. 마지막 뒤처리로서 입주보증금의 반환과 약간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성의를 보였다. 고마움의 뜻을 전하며 한국의 교원단체로서 모든 교원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단체로 융성(隆盛)하기를 바란다.
2021년 9월 20일(월)
Ⓒ 2021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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