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을 바랄까? 대부분 부모는 자식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자식이 성공적 삶을 살았을 때 벗들에게 자식의 잘됨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게 된다. 나이 든 사람에게도 자식들의 성공담은 꽤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자식이 조그만 선물이라도 보내오면 친구분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하게 된다.
옛사람들의 말에 “어느 댁 자손인고?” 또는 “뉘 집 자식이야?”라는 말이 있었다. 이런 말을 요새는 듣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흔히 듣던 말이다. 전자는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분명하여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후자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듣는 말이다. 자식의 삶은 그 부모에게 영광이 되기도 하고 욕이 되기도 한다. 부모에게 영광이 되든 욕이 되든 모두 자식들의 삶의 결과이다.
초대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그 지방의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크리스천(christian)이라 했다고 한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의 삶은 그리스도를 닮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이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세계 선교가 시작된 점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를 세워 선교사로 파송하여 소아시아, 유럽으로 복음이 전해진다. 이런 일들은 안디옥교회 교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계되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안디옥교회에는 바울, 바나바, 시몬과 같은 성령체험으로 변화된 지도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생명력이 넘치는 성도를 양육하였고 성도의 삶은 변화되어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갔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육(肉)에 속한 삶을 버리고 완전히 변화된 영(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새 하늘이 있었고 새 땅이 전계 되었다. 이런 삶이 있어서 크리스천이란 명예를 갖게 된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진정한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이것이야말로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설명한다. 몸과 영이 하나라고 설명한다. 왜 몸으로 드리는 예배가 영적 예배가 되는가?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는 전(殿)이다(고전6:19). 성령은 우리 몸에 계시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은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게 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니까, 우리 몸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게 되겠지,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이전 것은 지나갔고 완전히 새것이 되는 변화된 삶이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영적 예배를 설명하면서 영적 예배를 드릴 산 제사에 관해 설명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니 성령이 지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 뜻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삶이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이다. 구약의 죽은 제사가 아니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곧 제사일 것이다. 성도의 삶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쉽게 생각해보자,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부모는 자식들이 건강하게, 정의롭게, 활발하게, 멋있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자식들이 무기력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런 삶은 자식들을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스스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런 길을 아는 부모는 그 길을 자식에게 가르쳐준다. 자녀는 그 길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길을 따라가면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 것이다. 이때 부모는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셔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없다. 다만 사람들의 삶이 빛나고 아름답게 살며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길을 알려주시면서 그에 순종하며 살라시는 것이다. 이 길은 잘되고 성공할 때 교만하지 않으며, 어려움을 당할 때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는 의연한 삶을 보장하는 정신적 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다.
이런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래서 인도함을 받는 삶이 산 제물(living sacrifices)이 된다. 우리 몸이 성전이고 그 성전은 삶을 통해서 제물로 드려진다. 그래서 성령이 인도하는 삶이 영적 예배(spiritual act of worship)가 된다.
영적 예배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카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살전5:16-18)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영적 예배이다.
우리의 일생은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고난 겪을 때도 있고 일이 잘될 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병들어 허약해질 때도 있다. 어떤 때라도 항상(alway) 기뻐하고, 끊임없이(continually) 기도하고, 어떤 일(all circumstances)을 당해도 감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 세가지 덕목은 동시적이고 지속적 의미가 있다.
이런 삶은 변화에서 온다. 이 세상의 육에 속한 모든 악한 것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성령이 인도하는 변화된 삶에서 나오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고 빛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크리스천인지 알게 된다. 그 사람의 행동만 보고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인정하게 된다. 이런 삶이 산 제사이고, 영적 예배이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가 있다. 이는 예배의 한 부분이고 삶의 예배를 강화(强化)시키는 시간이다. 나의 하루의 삶, 일 년, 일생 나의 삶 전체가 예배이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겠다. 그 길이 우리가 행복하게 빛나는 삶을 사는 길이다.
2022년 1월 13일(목)
Ⓒ 2022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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