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온 편지 2: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섬에서 온 편지를 소개하면서
편지 1에서 정윤모 선교사와 류혜숙 선교사 부부의 사역을 소개해서 대강 이해했을 것으로 믿는다. 이 부부 선교사는 중국선교를 10여 년간하고 현재는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밀림에 들어가서 그곳의 청소년과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밀림 지역의 선교상황을 소상히 전해 줄 것이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두어 주시기 바란다. 김정권
섬에서 온 편지 2: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보르네오섬 북단에 위치한 동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이다.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보르네오섬은 3개 나라가 공존하고 있다.북쪽 보르네오에는 말레이시아의 13개 주(州) 중 2개 주(州)인 사바주와 사라왁주가 있고 2개 주 사이로 잘 살기로 유명한 브르나이 나라가 있고 남쪽 보르네오섬은 칼리만탄이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이다.
말레이시아는 1512년 포르투칼 마젤란이 말라카왕국을 점령했을 때 왕족의 일부가 브르나이로 도피하였고 1600년대에 네덜란드 식민지로,1700년대에는 영국식민지로 지배를 받았다. 마지막 영국식민지에서 독립 할 때 보루네오 섬 북쪽에 있는 브루나이, 사라왁,사바는 독립국가가 된든지, 말레이시아연방국, 필리핀 중 어느 곳에 편입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브루나이는 독립을 했고 사라왁과 사바는 말레이시아 연방국으로 편입을 택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말라카 왕국일 때부터 무역의 요충지여서 무슬림이 무역을 왕성하게 하며 거주인구가 많아졌고 식민지로 지배하던 나라들도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하여 도착지의 종교에 관대한 정책을 펴왔고 이슬람은 식민지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마지막 지배국가인 영국은 현지 종교를 존중하고 이동하는 사람들인 중국 사람과 인도사람에 대해 기독교 포교 활동을하여 지금 말레이 인은 거의 무슬렘이고 많은 화교(華僑)는 기독교인과 불교인이 되었다.1850년 청나라때 천국태평란으로 피난 온 중국 사람들이 영국의 지배하에 말레시아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4, 5세대가 되어 화교라고 부른다.화교가 현재 말레이시아 경제의 70%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총인구는 약 2,300만 명(외국계 근로자 100만 명 포함)인데, 외국인 근로자를 제외한 인종별로 보면 그 중 말레이계 52%, 중국계 30%, 인도계의 8%, 오랑 아슬리라 불리는 원주민 10%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말레이시아어, 영어, 중국어, 타밀어, 부족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식 국교는 이슬람교(56%)이며, 타 종교인들(불교, 도교 31%, 기독교 4%, 힌두교 9%)의 신앙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한다. 그러나 외국인에 의한 그 어떤 선교도 금지하며, 선교사의 입국과 선교사의 비자는 주어지지 않는다. 현재 기독교 복음화율은 전체인구의 4.5%이다.
말레이인들 매우 보수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국가에 속한다. 그리고 또 하나 심각한 건 비 무슬림에 대한 종교의 자유 제한과 결혼 차별 문제다. 무슬림은 비무슬림에게 이슬람을 전파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비무슬림이 무슬림을 개종시키면 사회적으로 무지막지한 차별과 정부에 의한 핍박,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가끔 모슬렘에 의한 사적인 폭력에 직면하며. 비무슬림 여성과 무슬림 남성의 결혼도 금지되고 양육권을 빼앗긴다.
국교가 이슬람인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가 곧 무슬림이고, 타 종교로 개종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더 이살 말레이인이 아니다. 또한, 이슬람의 교리상 무슬림과 결혼하려는 자는 반드시 이슬람으로 개종해야만 한다.
충격적인 실화 하나를 소개한다.결혼한 한국사람이 무슬림 아가씨와 둘이 차를 탔다는 소식을 무슬림 오빠들이 듣고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결혼을 강요하여 한국부인과 이혼하고 무슬림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아무나 함부로 차에 태웠다가는 봉변을 당하는 나라이다.
중국이슬람권에서 10년간 있었다가 말레이시아 이슬람권에 온 지 4년이 되었다. 같은 종교 이슬람이지만 두 나라의 무슬림은 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중국의 무슬림은 이슬람의 종교의 율법에 억압되어있고 얼굴을 가리는 히잡(hijab)이 머리만 덮는 것이 아니라 눈 아래부터 가리는 부류와 더 심하면 온몸을 검은 옷과 검은 히잡으로 얼굴까지 가린다. 원래 히잡은 중동의 모래바람이 불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제는 이것이 여자무슬림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 무슬림은 하루에 5번씩 모스크에 가거나 서쪽을 향해 절을하는 예배를 드린다.특히 여자들은 자유가 없어 보였다.종교에 눌리고 남자들에게 눌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구타를 많이 당하고 이혼을 당해 깨진 가정을 많이 보아왔다.심지어 17번 이혼한 사람도 보아왔다.조혼이 허락되어 9살짜리가 신부로 가는 경우도 보았다.
말레이시아의 무슬림은 자유로워 보인다.여기의 히잡은 무슬림을 상징하는 표시이지만 여러 색상의 히잡을 패션용 스카프처럼 사용한다. 멋을 부리기도 한다.
4월의 30일간의 라마단이 끝나면 “Hari Riya”는 축제가 열린다. 60대쯤 보이는 말레이시아 고급공무원으로 퇴직한 분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집으로 간 적이 있다. 입구부터 들어가는 정원은 공원을 연상 할 정도로 크고 저택 안에는 대형 인조 암석이 있는 수영장이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어 뷔페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300여 명이 초대되었다고 했다. 홀에 피아노와 기타로 악사들이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구고 있었다. 조금 지나 히잡을 쓴 여성들 여러 명이 나와 음악에 맞추어 현대식 댄스를 추었다.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광경이 였다.여기 무슬림은 자유로워 보였다. 아침에 히잡을 벗고 골프를 치러간다고 하였다. 상류상회 무슬림과 하류사회 무슬림의 차이가 있겠지만 상류층으로 갈 수록 더 자유로워 보였다.
한번은 카페에서 본 광경이다. 테이블에 중년으로 보이는 3쌍 부부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자들이 남자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여기의 무슬림여자들의 사회적 위치가 중국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는 이슬람이 문화화가 된 것같다.
동남아시아에는 그랩(Grab)이 택시 역할을 한다. 원래는 우버(Uber)가 먼저 진출하였다. 무슬림사역을 하는 화교 크리스천이 하루는 우버를 불러서 타고 나갔는데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가족은 실종신고를 하고 우버회사에게 탑승객의 행적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나 끝끝내 행적을 공개하지 않았다.화가난 화교들이 연판장을 돌리며 항의하며 우버불매운동을 벌여 결국 우버는 퇴출당하고 대신 Grab이 그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그 행방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무슬림의 대항은 거세다.
동남아시아 선교선인 한나호가 코타키나발루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배를 정박해놓고 단기 팀이 보트를 타고 가까운 섬에 사는 필리핀 난민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었다. 필리핀 난민들도 무슬림이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신고가 들어가서 해경이 출동하고 항만국장과 잘 아는 관계였지만 그날 바로 한나호는 코타키나발루에서 출항해야 했다. 이슬람을 국교화해 무슬림이 개종하는 것을 엄격히 막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무슬림이지만 아직 밀림에 사는 사람들은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정부는 어릴 때 교육을 받을 때부터 무슬림이 되면 혜택을 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나는 무슬림으로 만들려고 하는 밀림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코타키나발루는 사바주의 수도이다. 면적은 73,620㎢고 인구는 300만 명쯤 된다. 한국에는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졌어 성수기 때에는 저가 항공이 하루에 8편이 다니고 한국 관광객이 하루에 2000여 명이 온다. 그러나 시내에도 밀림이 있고 20분만 가면 깊은 밀림이 나온다.. 도시에는 말레이족과 화교들이 주로 살고 밀림에는 다수의 종족의 원주민이 살고 있다.
나는 중국에서 무슬림에게 10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 쫓겨나서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로 왔다. 여기 주요 민족인 말레이족이 50%를 차지하는데 99% 이상이 무슬림이고 25%가 화교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노동자로 온 4, 5세대 사람들, 5%가 인도계 사람들 나머지 20%가 오랑아슬리라고 불리는 원주민이다. 원주민은 대부분 밀림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들을 이슬람으로부터 보호하고 복음을 전하는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곳에 왔다. 밀림에 세워진 교회가 있어도 마을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이슬람을 강요하고 있다. 학교를 지어서 여러 밀림 마을에서 모인 학생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며 이슬람 교육을 시키고 있다. 무슬림이 되면 신분증에 기록이 되고 개종이 되지 않는다. 평생을 무슬림으로 살아야 하기에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웃 부족과 싸움을 하면 적의 목을 많이 따서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많이 달아놓는 사람이 용맹한 사람으로 되던 밀림이었다. 그런 마을에 선교사가 들어가서 추장과 같이 있는 무당과 영적 싸움에서 이기면 추장은 개종을 하게 되고 마을이 전부 개종했다. 교회는 세워졌지만 교회가 목사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해 목사가 없는 교회가 많다. 주일 학교 중고등학교는 전혀 없다. 이것이 밀림교회의 현실이다.
내가 있는 보르네오섬 북부지역은 복음을 전해야 할 밀림의 관문도시인 사바주의 수도인 코타키나발루는 동남아시아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세계 3대 sunset 지역이고 높은 산 키나발루산이 있고 오염되지 않은 강에만 사는 별빛과 같이 많은 반딧불, 붉은 코 원숭이,맑은 바다와 섬,바다속의 다이버,강에서 래프팅,맛있는 seafood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오는 도시이다. 코로나로 2년간 인적이 끊어져서 더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2022년 7월 17일(일)
Ⓒ 2022 J. K. Kim
[보르네오섬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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