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온 편지 3:
보르네오섬 사바주(州) 코타키나발루
섬에서 온 편지를 소개하면서
섬에서 온 편지 세 번째이다. 편지 1에서 정윤모 선교사와 류혜숙 선교사 부부의 사역을 소개해서 대강 이해했을 것으로 믿는다. 이 부부 선교사는 중국선교를 10여 년간하고 현재는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밀림에 들어가서 그곳의 청소년과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밀림 지역의 선교상황을 소상히 전해 줄 것이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두어 주시기 바란다. 김정권
보르네오섬 사바주(州) 코타키나발루
코타키나발루 앞 바다에 가야라는 큰 섬이 있다.이른 아침에 부두에는 가야섬으로 부터 보트를 타고 나오는 많은 사람을 볼 수가 있다.섬에서 일터로 나오는 필리핀 난민들이다.
사바주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쉽게 난민들이 들어 온다.사바주의 면적은 한국의 70%크기이지만 인구는 300만명 정도이다.밀림이 넓어서 인구밀도가 낮다.많은 난민들이 신분증이 없어서 정확한 인구를 파악 할 수가 없지만 난민으로 들어와서 2∼3세대가 지나가면서 이제 불법체류자로 이곳 사람이 되어 사는 인구가 40∼60만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필리핀 난민들은 슾지와 섬에서 불법체류를 한다. 이들은 신분증이 없어서 교육도 받을 수 없고 정식 취업도 되지 않는다. 이들은 기피 업종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불법체류자이지만 어려운 환경에 일 할 사람이 필요하여서 불법체류가 묵인되어 살고 있다. 그나마 섬에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밑에 썩은 물이 고여있는 습지 위에 판자를 이어서 집으로 사용하고 집과 집 사이는 습지 위로 외나무다리로 연결되어있다. 삐거덕 소리 나는 외다리를 잘못 디디면 시궁창에 빠진다.
어떤 마을은 시궁창 하천 위로 마을로 들어가는 30㎝ 되는 폭의 다리를 만들었다. 다리 중간은 영도다리처럼 3m 정도를 끈으로 연결하여 당기면 다리가 들리게 되어 있다. 불법으로 전기선을 연결하여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경찰이 조사하러 오면 다리 중간을 세워서 건너 올 수 없게 만든다.. 이들은 대부분 무슬림들이고 복음에 소외된 사람들이다. 생활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곳이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충격을 받은 아이들이 많이 있다. “이런 곳에서도 사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참 좋은 부모를 만났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내가 처한 환경은 내가 잘 모른다. 더 못한 환경을 보면서 자족 할 수가 있다. 삶이 어려울 때 장례식장에 갔다 오면 인생을 다시 바라보고 그 슬럼프를 뛰어 넘듯이, 더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자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친구선교사 가족과 “왼손 오른손”이라는 이름으로 구제사역을 한다.
친구가 오른손이면 내가 왼손이 되어,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자는 취지로 이름을 지었다. 한 번씩 빵을 준비해서 가면 벌떼 처럼 모여든다. 어떤 집의 아이는 17명이나 된다고 한다. 산아제한이 없는 것 같다.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halftime을 읽은 뒤 나의 후반전 인생을 50세로 보고 10년간 후반전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하고 거친 지역의 선교지로 떠났다. 새로운 생활,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의 만남으로 안식년 없이 10년을 지냈다. 안식년 없이 선교지에 10년간 있을 수 있었던 힘은 3가지의 동행(同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동행, 자연과의 동행, 정서를 나눌 수 있는 한국 사람과의 동행이다. 동료와 함께하는 새벽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자연과 친하게 지내며, 받는 억압과 눌림을 봄. 여름·가을은 숲과 흘러가는 시냇물에, 눈이 많이 온 겨울에는 눈 속에 뿌리고 돌아오곤 했다. 또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선교사 한 가족이 있었다. 아무리 현지인과 친하게 지내더라도 7080의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가 없었다. 좋은 일, 나쁜 일, 상한 감정을 나누며 공감하며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것이 영과 마음과 몸을 건강히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10년 생활의 비타민이 여다.
10년을 작정하고 온 선교출장은 금방 지나갔다.10년차 되는 해에 선교지에서 동료선교사들의 축하를 받으며 61번째 생일을 보냈다.이날 아침 묵상한 말씀이 시편 103장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새롭게 청춘이 되는 말씀이다. 60이 넘었지만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나와 아내가 먼 길을 걸을 수 있는 근육과 제법 무거운 짐을 들 수 있는 힘과 사람을 만나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60에 그만 두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아내와 같이 깊은 묵상을 하면서 다시 10년간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출장의 길을 걷기로 했다. 이즈음 중국에서 나올 때였다.
새로운 선교지를 정하기전에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지역연구를 하였다.경제적인 상황, 언어 상황, 비자 상황, 사역 상황을 조사를 했다.코타키나발루의 물가는 중국보다는 높았고, 생활언어는 도시 생활은 영어와 중국어로 살 수 있었고 밀림에서는 말레이어가 필요했다. 비자는 여행비자는 3개월이지만 3번 정도 갔다 오면 입국하는데 규제가 있어 장기비자를 준비해야 했다. 사역은 도지사역과 밀림 사역이 있는데 나는 밀림 사역을 택하였다. 나는 venture 적인 것을 좋아한다..
선교사로 나가기 전 북경에서 출발하여 허베이성(하북성), 정주-산서성.서안-청해성.시닝-감숙성.돈황-신장.투루판-타클라마칸사막대로-카스-우루무치-서안-북경의 행로 13000키로를 SUV로 16박으로 다녀왔고 2차로 2대의 SUV로 동료와 함께 북경에서 출발하여 내몽고.빠오터우-영하자치구.인촨-청해성.시닝-티벳.라사-신장.카스.우루무치-감숙성.돈황-산서성.서안-북경경로로 20000키로를 한달간 다녀왔다.같은 나라이지만 지역마다 다른 나라였다.지역을 리서치 한 것이 나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여기에서도 동료선교사가 내년쯤 보르네오섬 남단 인도네시아에 선교센터를 개관하는 시간에 맞추어 코타키나발루-브루나이-사라왁주-인도네시아 빨랑까라까지 한바퀴 돌며 지역 정찰을 할려고 한다.
보통 선교지에 오면 언어공부를 하고 사역 방향을 정하는데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나는 들어온 해에 1달 만에 4가정이 함께하는 밀림 사역팀에 초청되어 합류하게 되어 팀이 가지고 있는 밀림정보를 빨리 알 수가 있었다. 또 팀과 함께 밀림 지역에 자주 갈 기회가 생겼다.
우리 팀 이름이 4월에 만들었다고 사월(April)이다. 우리 팀은 밀림 교단이 PCS(Protestant Church Sabah)과 MOU를 맺고 교단교회가 300개가 있지만 목회자가 100명 밖에 없어 목회자가 없는 교회의 평신도지도자를 양성하여 교회를 섬기게 하는 훈련과 PCS 교단의 100명의 목회자를 재교육시키는 훈련을 하고 있다. 평신도훈련은 우리 팀이 훈련을 시키고 목회자훈련은 매년 20명의 사역자를 선정하여 한국에서 코치 목사님이 5월과 9월에 현지에 오셔서 일주일간 가르치고 11월에는 한국에 가서 10일간 집체교육을 받으면서 코치 목사님이 개척한 곳에서 개척과정과 어려움을 극복한 현장을 답사하는 훈련을 받는다.
한국에서 단기 팀이 와서 밀림에 3박 4일로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열었다. 밀림교회에는 어른들만 예배가 있고 청소년, 유년 주일학교는 없었다. 팀 사역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단기 팀과 함께 밀림 마을에 3박 4일 숙식을 하면서 주일학교학생과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이들은 예배로부터의 사각지대였다. 주일학교는 모여서 그림 그리는 것이었고 청소년은 아예 모임이 없었다. 단기 팀으로 밀림에 머물면서 어른 외에 청소년·어린이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팀 사역 외에 개인적으로 밀림을 체험한 나는 코로나가 오기 전 대학생 단기 팀이 오기로 해서 밀림 교단에 좀 더 깊은 밀림교회를 추천을 부탁하고 소개받았으나 코로나로 인하여 올 수가 없게 되었다. 밀림교회는 한국 대학생들이 온다고 하여 들떠있었는데 갈 수가 없게 되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 부부가 대신 방문이기로 했다.
2020년 1월 첫째 주일날 내비게이션 주소를 받고 코타키나발루에서 3시간 30분 걸리는 지점을 내비게이션 지도를 켜고 찾으러 나섰다. 포장도로를 3시간 달리고 비포장도로를 들어선 후 점점 깊은 밀림으로 들어갔다. 평지를 지나 산으로 가더니 길은 좁아지고 도로 흔적은 점점 없어지고 풀이 무성한 길로 안내를 했다. 내비게이션 거리로는 500m 정도 남았는데 대낮이지만 나무숲에 가려져 숲길은 어두웠고, 가다 막히면 돌아 갈 수가 없을 것 같다.겁먹은 아내는 돌아가자고 하였다.
좁은 숲길을 수십 번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차 방향을 바꾸고 밀림 숲길을 벗어났다. 내비게이션으로는 다 왔는데 갈 수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그냥 집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돌아오면서 집들이 나오면 물어 물어 길을 찾으며 다시 내비게이션을 켰다. 다행히 내비게이션은 반대 방향으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시간 정도 헤매다가 다른 밀림길을 찾아, 좀 나은 비포장도로를 찾고 냇가를 건너고 야자수 숲을 지나서 산 위에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에 도착했다. 마침 예배 중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나니 낯선 사람이 찾아와선지 모두 우리 주위에 둘러서 우리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마침 근처 학교의 영어를 하는 선생님이 있어 의사소통은 문제가 없었다.어떻게 이곳을 찾아왔냐고 물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이곳을 찾아왔다고 했다. 이상한데? 이곳은 WIFI가 안 잡히는 지역인데 어떻게 찾아왔냐고 이상해 했다. 이곳을 발견 한 것이 은혜였다. Way Maker 하나님이시다!
밀림 속에 마을을 이루어 사는 동네에 언덕 위에 아름다운 교회였다. 오래전에 선교사가 전해준 복음으로 교회가 섰고 “땅은 신의 피부여서” 농사를 짓는 것은 신의 피부를 상처 내는 것이라 생각해 농사 대신 열매를 따먹고 지내던 사람들이 이제는 농사도 짓고 고무나무를 심어서 고무액을 채취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이 마을에 중고등학생이 30명 정도 된다고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킬로 떨어진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금요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이슬람의 영향을 받는다. 어른들만 예배가 있고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는 방치되어있는 상태였다. 어린이는 주일예배도 없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팀 사역으로 어른들을 대상으로 “평신도지도자 훈련”과 “사역자 목회 훈련”을 하고 있지만 나는 사각지대인 유소년들을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이 되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강원도 산골이 생각이 났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꿈을 키워 대도시로 대도시에서 해외로 나오지 않았는가? 밀림 속에 갇혀있는 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싶었다. 다윗이 목동일 때의 나이쯤인 이들은 15-18세의 나이들이다. 다윗이 초원에서 피리를 불고 양을 쳤지만 하나님과 가까이하여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다윗의 꿈을 키워주고 싶었다. 밀림의 마을에 유소년들은 목자 없는 길잃은 어린양과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팀 사역과 별개로 우리 부부 사역으로 토요일을 밀림유소년을 돌보기로 마음을 합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기로 했다.아내와 같이 기도하며 우리가 정한 것은 “David Dream” 작전이었다.이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쉬운 영어로 언어소통의 장벽을 넘고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같이 성경공부를 하며 다윗의 꿈을 심어, 좋은 크리스천으로 키우는 일을 하기로 했다. 막 시작하려는 시기에 코로나로 한국에 돌아 오게 되었다. 많은 아쉬움과 꿈을 가지고 귀국했다.
2022년 7월 24일(일)
Ⓒ 2022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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