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이웃(Neighbor)
나는 수개월 전에 어쩌면 내 마지막 둥지가 될지도 모를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28층 아파트의 8층이니 층높이도 적당하고 8층에 3가구가 사니 그리 혼잡하지도 않아서 좋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옆집에 누가 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옛날 같으면 목판(木板)에 떡을 좀 해서 들고 가서 이사 왔노라고 이야기하고 통성명이라도 했을 것이다. 요사이는 남의 집 문을 노크하기도 어렵고 더욱이 음식물을 전해 주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흔히 이야기하기를 이웃이 없다고 한다. 옛날 같은 이웃이 없다는 이야기이지, 엄연히 옆집(next door)이 있으니 그들이 이웃이겠지, 이문제는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인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농업사회,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사회를 다 살았다. 물론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농업사회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늦게 이루어져서 내 짧은 인생살이에 이 3시대를 모두 겪었다. 그러나 아주 짧은 한 살 이를 하는 우리에게는 길게 느껴진다. 먼저 이런 시대 상황의 변화에서 나타난 현상을 먼저 보기로 한다.
농업사회는 농토를 기반으로 한 사회이니 사회형태가 집성촌(集成村)을 이루고 대가족이 한곳에 모여 사는 형태이다. 혈연공동체(독 gemeinschaft 영 community)이니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촌 지역사회이다. 토지 소유자가 가장 권위자이니 자연 나이가 계급인 사회이다. 나이에 의한 위계가 분명한 사회일 것이다. 노동력이 남성이 우위에 있으니 자연 남성 중심의 사회이다. 그리고 외인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강하게 지닌 사회형태다.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은 서구를 중심으로 산업사회를 이끌어오게 되었다. 일본은 1860년대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는 이보다 약 100년 뒤인 1960년대에 산업화사회로 전환이 된다. 우리가 경험한 바와 같이 노동자는 도시로 몰리고 농업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농촌의 젊은 이 들은 도시의 공장에 몰리게 되었다. 이로써 대 가족제도는 깨어지고 핵가족시대가 도래한다. 이 시대의 권위자는 경력자(經歷者)일 것이다. 직장 선배는 경력이 많은 사람이고 후배 사원들을 가르치는 처지가 되니 자연 권위가 있었을 것이다.
이때 사회구조는 관료적 위계가 형성되어서 명령과 수행이 잘 이루어져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아서 사회 특성을 선(線)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산업사화는 단품종(單品種)의 대량생산 체제이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는 같은 작업을 하는 입장이어서 생산 설비에서 개인 간 경쟁이 이루어지고 생산을 많이 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간주 된다. 이 사회를 경쟁 사회라 하고 이익 창출을 중심으로 한 사회(독 Gesellschaft 영 Society)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경쟁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산업사회 잔재이다.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체제로 인류는 양적 충족을 이루었고 좀 더 질적 삶을 추구하게 된다. 이에 맞물려서 정보사회가 도래하였는데 이때가 1960년대부터이니 우리나라는 아직 산업화도 이루기 전의 일이다. 정보사회는 정보에 관련되는 단어를 수반하여 멀티미디어 사회, 디지털 사회, 지식 사회, 정보 네트워크 사회, 글로벌·네트워크 사회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려왔다.
정보사회 도래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경계가 무너져서 성(性) 역할(sex role)이 없어졌고,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없어졌고, 나이에 따른 역할이 없어졌다. 그래서 정보사회에서 나이나 경력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가장 강력한 힘은 창의성 즉 생각하는 능력이다.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떠오르는 사람” 그가 강자가 될 것이다. 20대 CEO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산업사회에서 꿈도 꾸지 못하던 이야기이다.
생각이 제품(製品)이 되는 시대, 생각이 재화(財貨)가 되는 시대,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생각을 만들어내는 집단에서 팀장과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이 팀원이 되어서 상호보완적 임무를 수행하여야 큰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이 팀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협업(協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보사회에서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networking ability)을 중요시한다.
농업사회에서 이웃은 대체로 친족간이나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람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자연 예의범절(禮儀凡節)을 지키며 정을 나누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런 풍속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좀 더 익숙한 삶의 모습이었다. 산업사회는 경쟁 사회이니 이웃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고 살았을 것이니 이웃과의 관계는 이해관계에 좌우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삭막했다고 보인다.
정보사회에서 이웃은 내 생존에 없어서는 아니될 중요한 존재이다. 내 삶은 이웃들이 있어서 가능하게 되고 상호 의존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생각했으나 이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에 순응(順應)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자연으로 보고 자연은 있는 그대로 존재 가치가 있다고 본다. 주변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진다는 생각이다. 생태(生態)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웃은 나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생각이니 이웃은 매우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오늘 이웃집과의 교류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적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 더 큰 안목에서 상호존중과 협력하는 관계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웃의 개념과 이웃 간의 관계 양상(樣相)이 달라졌다고 보아야겠다. 이웃의 개념이나 교류 형태는 달라졌을 수 있지만, 정보사회에서 이웃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아야 하므로 새로운 가치에 의해서 재 개념화해야 할 것이다.
정보사회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치가 우리 삶에 녹아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에 터 하지만 복지사회를 이루려 한다. 그렇기 위해서 공평과 정의가 기본 가치로 존재해야 한다. 이웃과 나는 평등한 관계이고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서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런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범죄이고 사회를 아노미 현상으로 몰아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다음 두 번째 가치는 인간성의 토대한 사랑이 기본 가치로 작동해야 한다. 오늘 물량적 균등은 진정한 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꾸며 나가는 원초적 힘은 사랑일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면 이상적 사회를 구현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육과 종교의 가치교육은 필수 요소이다.
셋째 정신적 가치는 진리에 대해, 기본 가치에 대해,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삶일 것이다. 나는 이를 겸손한 삶의 자세라고 말하고자 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공동으로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에 순응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참된 이웃으로 서로 생명력을 높이게 될 것이다.
2024년 1월 8일(월)
Ⓒ 2024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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