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가족(家族)
사회가 급변하면서 가족의 개념도 많이 바뀌어왔다. 가족(家族 family)이란 용어 자체가 정감(情感)이 넘친다. 그 안에는 따뜻함과 안전함과 사랑이 깃들어있어서 폭은 함이 느껴진다. 가족제도란 인류사회의 초기부터 형성해온 사회제도이다. 자연스러운 사회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동물이 그러하듯 모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가 형성되었겠지, 그들은 생활공동체이며, 경제공동체이고, 운명공동체이었을 것이다. 선택할 수 없는 공동체이니 자연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오늘 부부 둘이 살고 있다. 그 옛날에 비하면 단출한 가족이다. 그러나 흩어져 사는 자녀 손들은 내 가족이고 공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새벽과 저녁 내 기도시간에는 가족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그들의 안전, 건강, 행복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만나는 일은 어렵게 되었다.
옛날 자녀 교육으로 출필고(出必告), 반필면(反必面)을 가르쳤다. 집을 나갈 때는 부모님께 가는 곳을 알리고 돌아와서는 잘 다녀왔다고 얼굴을 보여드린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할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주 어릴 때는 부모가 동행하고 좀 커지면 전화로 연락하니 언제 대면할 기회가 있겠는가? 더욱이 어린이와 청년들이 너무 바빠서 어른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다.
대가족제도 아래서 가족의 개념과 오늘 정보사회 가족의 개념이 달라졌다. 산업사회 핵가족과도 다르다. 산업사회에서 가족 간의 역할이 있다고 보았다. 남녀가 할 일이 따로 있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도 역할이 다르다고 보았다. 직장과 가정은 완전 다른 세계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계가 정보사회에서는 다 무너졌다. 학교 교육도 중학교 남학생에게 요리를 가르친다. 여학생에게 기술을 가르친다. 남자는 집에서 요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학생도 가정사에서 전기도 고치고, 못 박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재택근무는 대세가 될 전망이다. 대학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학자는 오늘의 가족제도를 투과성 가족(permeable family)이라고 한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열려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았을까? 산업사회보다 가족이 좀 더 끈끈한 면이 없어진 것 같다. 우리 사회제도의 진전이 이를 더 촉진하는 것 같다. 자녀 양육문제와 노인들의 노후 생활 보장 면을 보도록 하자. 옛날에는 자녀의 양육은 부모의 책임이었다. 요즘은 국가사회의 공동책임이라고 본다.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자녀 출산과 양육에서 국가사회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그러면 자연 부모가 자녀 양육에 관한 의식이 약화 될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자녀를 생산재로 보았는데 오늘날은 자녀 양육이 소비재라 한다니 누가 아이를 많이 낳아서 기르려 하겠는가! 인간에게 식욕(食慾)이 있는 것은 생존하라는 자연의 명령어이다. 성욕(性慾)이 있는 것은 번성하라는 자연의 명령어이다. 사회성취욕이 있는 것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라는 자연의 명령어이다. 자연을 위배하여 인위적 계획을 세우니 건강의 문제가 생기고 출산절벽이 나타나고, 사회 아노미 현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런 모든 현상은 물질문명이 가져온 부산물들이다.
자녀교육이 사회공공의 책임이 되어가는 동안 부모들은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복지사회의 이상은 우리의 자녀 우리가 기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가난 한가정이나 부유한 가정이나 모든 아이는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무척 큰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부모의 자녀 양육의식이 약화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대가족제도 아래서 노인은 집안의 어른으로 대접받으면서 당연히 자녀가 봉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대부분 자녀는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부모의 문제는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금이라도 부모를 위해 책임을 진다면 큰 부담으로 느낄 것이다. 차츰 부모의 부양은 사회 공동책임이 되어가고 그래서 촘촘한 복지정책이 마련되어서 노후 생활이 편안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는 복지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복지사회의 재원은 세금이다. 국민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고 국민에게 복지혜택이 커질수록 세 부담은 더 커져야 한다,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쳐오면서 사회운영체제가 변화되고 있다. 사회의 개념도, 가정의 개념도, 가족의 개념도 변했다. 그런데 많은 국민이 이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년층의 비율이 증가하고, 젊은 층의 인구비율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갈수록 젊은 층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년 나이를 늘리는 것 역시 젊은 층에 부담이 된다. 오늘 우리는 총화(總和)를 이룰 지혜를 만들어내야 할 때이다.
새로운 가치체계를 확립해야 하는데 어디서 이런 역할을 해 줄 수 있겠는가?
첫째, 학교 교육은 교육의 최고의 가치인 도덕성 함양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지식편향의 교육, 이념논쟁 같은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이다. 지적 활동의 최고 수준은 평가(評價) 능력(能力)이다. 가장 단순한 것은 기억능력이다. 우리 교육은 이 낮은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교육은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삶에 주요한 것이 무엇인지, 최고의 도덕적 가치는 무엇인지 학교 교육이 해내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둘째,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종교는 생명력에 관한 것이다. 삶의 활력을 높이고 인간 삶의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교세(敎勢) 확장이나 교권(敎權) 확립과 같은 것은 본래 종교의 역할과 거리가 먼 것이다. 종교는 우리 사회에 믿음과 사랑을 생활에 접목하도록 할 책무가 있다고 본다.
변하고 있는 사회에서 사회규범이 변하고, 가족이 해체되어가고, 고독한 청년들이 날로 늘어가고, 출산절벽이 나타나고, 자살이 증가하는 이 사회에 분명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본다.
오늘 우리는 가족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가족들이 끈끈하고, 정이 넘치고, 사랑이라는 묘약(妙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서 생동감이 넘치는 가족으로 우뚝 서가기를 바란다.
2024년 1월 15일(월)
Ⓒ 2024 J. K. Kim
* 그림 이미지를 제공해준 이영철(Y. C. Lee) 교수는 우석대학교 명예교수, 대구문인협회 회원, 시인 및 화가로 우석대학교 사범대학장과 한국지적장애교육학회장을 역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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