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매미의 피날레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다. 앞으로 갈수록 더 더워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여름철 휴가를 잘 가지 않는 내가 올해는 멀리 사는 외손녀 가족이 와서 3박 4일 피서를 다녀왔다. 무척 좋은 시간이었다. 요즘 가족이라도 자주 만날 수 없으니 만난다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늦게 얻은 외손녀가 훌쩍 커져서 제 엄마 키보다 더 커졌다. 딸 내외는 이 딸이 무척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운가 보다. 세심한 데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잘 길러 보려는 마음가짐이 은연중에 묻어난다. 무척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새벽에 걷기를 하니 어느 곳에 가더라도 뺄 수 없는 습관이다. 새벽에 호숫가를 걸었다. 삼복(三伏), 매미 우는 소리는 절정에 이르렀고, 잎이 무성한 나무 사이에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는 귀를 따갑게 한다. 여름 한 철 누릴 수 있는 호사(好事)이다.
우는 매미는 수컷인데 그 배 아래 쪽 윗부분에 특수한 발성 기관을 가지고 있어 소리를 낸다고 한다. 매미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종류별로 발성 기관의 구조와 소리가 다르다고 한다. 암컷은 발성 기관이 없어 소리를 내지 못한다니 소리를 내는 것은 모두 수컷이다. 수컷이 우는 이유는 암컷을 부르는 신호이다. 이들이 날개가 달리고 나무에 붙어서 짝짓기를 하는 시기는 불과 1개월 이내라 하니 매미의 일생 중 가장 화려한 피날레(finale)를 장식하는 기간이다.
우리나라 매미의 유충(幼蟲) 기간은 대체로 7년여라 한다. 유충 기간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고 산다고 한다. 긴 시간을 땅속에서 살고 날개를 달고 바깥세상에 나와서는 겨우 한 달 정도를 산다고 하니 이 한 달이야말로 장엄한 최후의 악장(樂章)일 것이다. 장엄한 한 달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DNA가 들어있는 후손을 퍼뜨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초청음악회를 열고 있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알지 못하지만, 매미는 가장 아름답고 감미롭고 애절한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tle, 384-323 BC)는 인간만이 언어를 가졌다고 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動植物)은 언어를 갖는다. 사람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언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매미의 유충 시기가 7년여라 하니 어둡고, 축축한 땅속의 생활이니 얼마나 불편하겠느냐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런 환경은 매미에게는 가장 쾌적한 환경일 것이다. 우화(羽化, 날개가 생기는 것) 후의 생 역시 자연 현상이다. 이 시기는 마지막 매미의 삶을 정리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 즉 번식의 시기이다.
우리는 매미의 일생 중 우화(羽化) 이후의 짧은 삶만이 그들의 삶인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들은 땅속에서 유충 기간이 중요한 삶이다. 그 과정 중에 번식을 위한 우화 시기를 갖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므로 사람의 삶에 견주어 매미의 일생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땅속의 그들의 삶을 준비 기간으로 잘못 인식하게 된다.
며칠,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 걷기를 하였다.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경청하였다. 자지러지게 내는 소리는 매미의 절박한 심정을 느끼게 한다. 끝 악장에서 노래를 마무리하는 저음은 여유로움을 느낀다. 경쾌한 소리는 그들의 삶의 노래인 것 같다. 매미의 의사전달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지, 인간의 언어보다는 단순할 것이고, 직설적일 것이다.
매미의 소리는 진실하다. 거짓이나 속임수가 없겠지, 사람들처럼 거짓말을 할까? 자연의 소리는 인간들의 언어보다 훨씬 순수하고 직설적이다. 다만 암컷을 불러들여 자신의 씨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 하겠지, 타자를 지배한다든지, 탈취한다든지, 소유를 늘리려는 욕망을 갖지 않는다.
자신의 향락을 위해 번식을 제한(制限)하지도 않는다. 가능한 한 자손을 많이 번식하려 한다. 다만 이런 욕구를 충족하면 다이다. 그래서 그들은 번성하게 된다.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그들은 자연을 노래하는 여름의 집시(Gypsy)일 것이다.
며칠 새벽길을 같이 한 매미의 합창은 옛날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고, 동심에 젖어 드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발걸음을 수없이 멈추었다. 도시 생활이란 이런 자연의 소리와 거리가 멀다. 인간의 문명은 스스로 자연과 격리되도록 하였다. 자연이 잘 보존되어서 아름다운 지구 가족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2024년 8월 6일(화)
Ⓒ 2024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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