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아파트 풍경(風景)
내가 사는 아파트는 좀 작은 편의 아파트여서 젊은 부부가 많이 살고 있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아이라야 한 집에 한두 명이니 귀한 존재들이다. 다행히 아파트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서 이웃 아이들이 같이 놀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침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버스가 오는 곳에는 일상적으로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는 길을 바래다주는 풍경이다. 잠시지만 엄마들은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잠깐의 소통이라 하겠다. 아이들이 떠나면 엄마들은 뿔뿔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한 여름철에는 캠퍼스 중앙에 설치된 물놀이 장소가 있어서 아이들은 옷을 입은 채 물을 덮어쓰고 좋아하고, 엄마들은 주변 그늘의 의자에 앉아서 쉬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다. 젊은 엄마들은 이런 장소에서 이웃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요즘과 같은 소통이 없는 시대에 노변(路邊) 방담(放談)은 보기 드문 일이니 귀하다. 여기서 많은 정보를 나누게 될 것이다. 옛날 같으면 빨래터에서 마을 소식이 오갔지만 요즘 세태는 이웃이 만난다는 그 자체가 쉽지 않다.
내가 이곳에 이사해서 1년 반 만에 옆집 안주인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인사를 하였다. 피차 이웃 간에 소통 없음을 개탄했지만, 이는 피차 말치레에 불과하였다. 서로 모르고 사는 것이 너무 당연시되어서 소통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는 대체로 인사를 하는 편이다. 캠퍼스나 주차장에서 만날 때는 거의 인사가 없다. 의도적으로 외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는 공간적은 좁아서 근접접근이니 피 할 수 없어서일 것 같다. 그러나 주차장이나 캠퍼스 안에서는 충분히 외면할 수 있어서라고 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서 아는 척해서 덕 볼 일이 없어서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휘트네스(fitness)에서 만나도 거의 인사를 하지 않는다. 비교적 나이 든 사람들은 인사를 하는 편이지만 젊은이들은 거의 모른척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활화되었을까? 이는 시대 상황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산업사회 핵가족(核家族, nuclear family)제도에서 정보사회 투과성(透過性, permeable family) 가족제도로 바뀌었다. 정보사회에서는 역할 면에서 남녀 성(性)의 차이(差異)가 없어졌고, 직장과 가정의 경계(境界)가 무너졌고, 나이에 따른 역할(役割)이 없어졌다. 모든 것이 열린 사회이니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 대인관계 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은 매우 중요한 지능이다. 수리나 언어지능보다 훨씬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산업사회가 상하 관계로 구성되었다면 정보사회는 팀(team)으로 구성되고 협동이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리 보면 이 역시 이해관계에서 생긴 대인관계라 할 수 있다.
아파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 이해관계가 없으니 애써 아는 척할 필요가 없겠지, 그러나 인사를 하는 것은 삶의 윤활유와 같은 것이니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다. 나도 나이 좀 들었다고 젊은이들에게 인사 먼저 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옹졸한 생각이다. 우리 세대만 해도 나이가 대접받는 척도였으니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어렵겠지, 그러나 지혜 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시대변화를 알아야 대응해 갈 것이다. 정보사회 노인은 시대의 요구사항을 잘 이해하여 대응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린아이들은 인사를 잘 하는 편이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아마 부모들이 자녀에게 인사를 가르치는가 보다.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유아기의 아이들이다. 초등학교 학생은 인사를 하지 않는편이다. 부모들의 교육과 유치원의 교육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사를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수(數)나 언어(言語)를 가르치는 것보다 사회생활에 더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소극적인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인사 잘하고 봉사 많이 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기독교에서 나누고 섬기라는 덕목(德目)은 정보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한 방법이다. 배려하는 삶, 남을 높이는 삶, 이웃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이다. 이는 보장된 것이다.
우리는 자녀들이 크게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학교 교육에 목을 맨다. 학교 교육은 성공 요인의 모두가 아니다. 한 부분에 불과하다. 좀 더 폭넓은 삶을 가르쳐야 한다. 아파트는 경직된 환경의 주거시설이다. 이를 고려해서 주변의 자연환경을 활용하고, 사람과 교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스케일이 큰 사람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본래 대도시에서는 위인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위인은 중간크기의 도시 즉 들과 산이 있고, 다소간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사람의 됨됨이가 커진다고 한다.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숲, 규격화된 공간, 편리하게 시설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아이들도 규격화되어간다.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좋겠다.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삶의 모습이 있으면 다소나마 규격화된 삶을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제한되어있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크게 자라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파트는 신혼부부나 노년층의 주거 환경이다. 아이를 기를 때는 주택에서 길러야 아이들의 심성을 기르고 자연에 접하게 되고 동식물과 접하여 다양한 경험을 갖게 된다. 우리의 주거문화는 아이들에게서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한다
2024년 9월 12일(목)
.Ⓒ 2024 J. K. Kim
'단 상(斷 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斷想)] 125. 스노퀄미 폭포(瀑布) (6) | 2024.10.24 |
---|---|
[단상(斷想)] 124. 청지기(manager) (4) | 2024.10.10 |
[단상(斷想)] 122. 결혼의 의미 (8) | 2024.09.11 |
[단상(斷想)] 121. 셔우드 홀 회상 (12) | 2024.09.03 |
[단상(斷想)] 120. 무료(無聊)한 아침에 (6)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