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셔우드 홀 회상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첫 번째 백인, 크리스마스실을 처음 만든 사람, 한국을 사랑한 사람 그는 로제타 홀(Rosetta S. Hall 1865-1951)의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년 11월 10일 ~ 1991년 4월 5일)이다.
나는 셔우드 홀을 대구대학교에서 1984년 처음 만났다. 셔우드 홀 내외는 결핵협회 초청으로 한국에 오셨는데 이때 대구대학교 대명동 캠퍼스의 사범대학 건물을 셔우드 홀 기념관으로 증정하는 행사가 있어서 대구대학에서 의미 있는 만남을 갖게 되었다.
이때 벌써 셔우드 홀은 91세라는 고령이셨고 의자 차를 타셔야만 하는 건강이 셨으니 노쇠한 후이었다. 부인 마리안(Dr. Marian Hall)은 보행이 가능하신 점으로 보아 셔우드 홀보다는 나은 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한국특수교육백년사를 편찬할 때 자료가 필요해서 셔우드 홀의 자녀분들을 찾았는데 마침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따님(Phyllis H. King)과 연결이 되어서 로제타 홀의 친필이 들어있는 사진들과 물품을 받게 되었다.
필리스는 아버지 셔우드 홀의 저서 “아시아 : 한국에 청진기를 가지고”(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McLean, Virginia: MCL. Associates. 1981)를 나에게 소개하고 책을 한 권 보내 주었다. 이로 인해 셔우드 홀의 활동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필리스에게 받은 자료는 한국특수교육백년사 편찬에 소중한 자료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당시 기독교의 상황 그리고 여의사 양성에 관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자료는 필요한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필리스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이 책은 동아일보 출판부에서 김동렬 번역으로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이란 책 명으로 출간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셔우드 홀은 1928년 일본강점기 황해도 해주에 '결핵 환자의 위생학교'라는 요양소를 설치했다. 1932년 결핵 요양소의 운영비를 마련하고 결핵에 대한 계몽과 선전을 하기 위해 남대문을 그린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다고 한다.
이 발행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실(seal)의 도안은 처음에는 임진왜란 때 위력을 떨친 거북선으로 하려 했으나 일본인들에게는 거부반응이 있어서 다시 도안했는데 서울 사대문 중에서 대표적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을 크리스마스실의 첫 도안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셔우드 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1940년 간첩 혐의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서 1941년 추방되었다고 한다. 셔우드 홀은 한국을 떠나 인도에서 의료선교를 하다 1963년에 은퇴했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91년 세상을 떠났다.
로제타 선교 110주년을 기념하여서 셔우드 홀의 후손들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대구대학에서 초청한 일이 있었다. 대구대학교 대명동 캠퍼스에서 로제타 선교사와 셔우드 홀 선교사 관련 기념 강연회가 있었다. 후손들이 직접 할머니와 아버지에 관련된 강의를 했고 대구대학교 교수도 기념 강연을 하였다.
대구대학 학생과 교수에게 홀 가족에 관련된 선교, 교육, 의료 활동이 소개되었고 본인들은 다 돌아가셨지만, 그 후손을 초청하여 뜻깊은 시간을 가져서 기뻤다. 대구대학교 대명동 캠퍼스와 경산 캠퍼스에 행사가 있었고 경주 관광을 하는 일정이었다.
경주 코오롱 호텔에서 저녁 시간에 한국 고전이 곁들인 만찬 시간을 가져서 한국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셔우드 홀 선교사의 장남 윌리엄(William Hall), 따님인 필리스(Phyllis Hall King) 내외와 그의 아들, 손님은 모두 네 분이었다. 일행은 대구대학교 경산 캠퍼스를 둘러보고, 경주로 이동하여서 불국사를 둘러보고 코오롱 호텔 만찬에 참여하여서 우의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로제타 홀 선교사나 셔우드 홀 선교사와 같은 품성을 그 후손들도 지녀서 온유하고, 겸손한 분들이었다. 필리스는 아주 맑고 밝은 분이었다. 배려심이 많았던 분으로 기억이 된다. 할머니의 유품을 잘 보관했다가 나에게 넘겨주었으니 고마운 일이지, 이로써 로제타 홀 선교사의 기록이 살아나서 오늘 우리 역사를 명확히 기록할 수 있었다. 필리스가 자료를 나에게 넘겨주면서 “자료는 필요한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정리하여 보관했더라도 그것이 활용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자료는 널리 공유하여 활용해야 할 것이다.
로제타 홀 선교사, 이분의 아들 셔우드 홀 그리고 셔우드 홀의 따님 필리스로 연결되어 로제타 홀 선교사와 아드님 셔우드 홀 선교사의 하신 일은 우리 사회에 좀 더 확실히 알려지고 역사로 남아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앞으로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한다고 본다. 이분들 복된 이름 위에 신의 은총이 함께하시기 기원한다.
2024년 9월 2일(월)
Ⓒ 2024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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