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배우
이태리 철학자 비코(G, Vico, )는 서양 역사의 주역을 논하면서 고대 사회의 역사의 주역은 신들( 神; god)이라 했다. 신이 대접을 받고 죽은 사람이 대접을 받는 시대였다.
중세는 역사의 주역이 영웅(英雄;hero)이라 했다. 중세서양의 영웅은 봉건영주, 기사, 승려들이며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동정하고 자비심을 베풀어 자선을 행했다. 자선은 중세적 발상이고 계급을 전제로 한 것이며 자선을 베푸는 자와 수혜자가 있게 된다. 이분법적이다. 중세 때는 자선적인 입장에서 심신의 손상이 있는 사람이나 그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돌보았다.
현대는 역사의 주역이 인간(人間;human)이라 하였다. 여기서 인간은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고 온 인류는 누구나 역사의 주연배우라는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지는 않더라도 이해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배우로서 배역을 맡을 때 주연 배우를 맞고자 할 것이다. 그 배역이 왕이든, 대신이든, 거지든, 교사이든, 가정주부이든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왕이라도 조연 같으면 별 볼일 없을 것이고 거지라도 주연배우 같으면 그 역을 맞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현실은 전연 그렇지가 못하다. 우선 높은 자리, 수입이 좋은 자리, 힘쓰는 자리가 좋은 자리이고 해 볼 만한 일이 된다. 수년 전 상업하시는 분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였는데 상업은 해 볼 만한 직업은 아니고 기회만 있으면 떠나야겠다는 반응이 90%가 넘었다고 한다. 상업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여하고 참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20여 년 전 개인택시를 탄 일이 있었다. 기사와 대화를 할 계기가 되어서 그분이 나에게 교편을 잡고 있느냐 묻기에 교수라고 대답했더니 기사분이 “참 가치있는 일을 하십니다.” 라고 응답하였다. 그래서 내가 기사어른은 가치 없는 일을 합니까? 하고 물으니 “뭐, 우리야 돈 좀 벌어먹고 사는 것이지 무슨 가치가 있는 일이냐”고 대답하여서 나같이 바쁜 사람을 빨리 옮겨 주어서 일을 효율적으로 보게 해주시고 또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왜 가치가 없느냐고 했더니 이 기사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몇 개의 십자로를 지나가서 신호등에서 서게 되었는데 나를 돌아보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일이 힘들지가 않네요.”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서 자신이 주역이 될 때 건강도 좋아지고, 힘도 안 들고, 피로도 없고, 즐거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껍데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한 사람의 진정한 삶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은 개인차가 있고 또 그 능력의 차이도 상당히 큰 것이어서 서로 할 수 있는 능력은 다양하다 하겠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능력의 소유자라도 자신이 주연 배우로서 사명을 다한다면 그의 삶은 가치롭고 활력에 차고 생명력이 넘쳐 흐르게 될 것이다.
산업사회의 객관적 표준에 맞추는 교육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학생들은 자신감이나 자아존중감 또는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에 너무 소홀했다. 국가적 역량은 모든 국민이 자신의 소임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을 때 가장 커지는 것이다. 몇몇 엘리트에 의해 국가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의 능력을 극대화 시켜야 하는 것이다.
학교교육은 수용하는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진정한 지식은 자신의 삶을 즐기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지 단순히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육은 자신이 바로 자기 삶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연배우이며, 자신에 의해서만 새 역사가 창조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해야 한다.
학교교육은 이제 사람에 대해 열정을 쏟아야 한다. 어떤 종류의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자신이 바로 정립되고 자신에 의해 역사가 지배되고 있다는 역사의식과 문화의식이 길러져야 한다. 거리의 미화원이 삶의 가치와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통해서 삶을 즐길 때 우리사회는 역량 있는 강력한 사회로 발돋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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