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2. 백치천재

profkim 2020. 3. 9. 13:49



백치 천재

 


 

 


지적장애인 가운데는 특수재능을 가진 분들이 많다. 성악에 재능이 있는 분,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는 분, 특수기억력을 가진 분, 사교성이 뛰어난 분 등 아주 헤아릴 수 없는 분야에서 천재성을 가진 분들을 백치-천재(idiot-genius)라고 호칭한다. 지능은 낮지만 특정분야의 천재성이 있다는 뜻이다.


오십여 년 전 일본의 야마모토 요시히꼬(小本 )라는 청년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불란서에 유학을 다녀왔고 그의 그림은 매우 훌륭하여서 고액에 매매되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나 사는 집의 주소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1973년 미국 CEC(Council for Exceptional Children)에서 간행하는 세계적 잡지인 Exceptional Children 41권 제2호를 받고 반가운 제목을 접하게 되었다. 그 제목은 “Another Van Gogh of Japan: The Superior Art Work of a Retarded Boy " 이었다. 바로 이 야마모토 청년을 소개한 것이다.


이 잡지에서는 야마모토의 성장, 그림의 발전상, 현재의 그림 등을 소상히 소개하고 그의 그림이 반고흐에 이르렀음을 설명한 것이다. 비록 지능에는 지체가 있으나 그의 그림에 대한 천재성을 소개하여 심신의 손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청년의 양면성을 보게 된다. 한 면은 그의 지적 능력이 백치라는 것이고 다른 한 면은 그의 그림의 천재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인습적 평가체제에서 나온 것이다. 이 사회는 어떤 학생이 학교 교육에서 필요한 기초능력 즉 인지 지능에서 지체되어 학습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면 그 학생에게 문제가 있다는 등식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학생이 못하는 부분만이 문제시되고 그것이 크게 부각되었다.

 

최근 교육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생태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였고 더 나아가 인간 병리에서 사회나 교육병리로 이동하였다. 학생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각 학생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한다는 경향이며 부족부분은 지원(support)해 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이 못하는 부분(지능지체)은 부각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야마모토는 그림 천재이지 백치가 아니다. 오늘날 중다지능 학교의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중다지능 학교에서는 언어적 문학적 재질을 가진 학생, 수리적 논리적 재질을 가진 학생, 공간지각에 재능이 있는 학생, 음악적 재능이나 미술적 재능을 가진 학생, 대인관계의 수월성을 가진 학생, 자아존중이나 자율적 자질을 갖춘 사람 모두가 천재이며 그들은 그들이 잘못하는 부분 때문에 이런 천재성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과거의 학교는 기능주의에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진단-처방 그리고 과제 분석의 모형을 사용하였고 학생의 진보에 문제가 있는 교과나 영역을 촉진시키는 데 정열을 쏟았다. 이 이론이 인간 병리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치료적 모델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탈산업사회에서는 사회교육 병리이론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개인 학생을 그의 능력 수준에 따라 분류를 한다든지 학습에서 생긴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학생이 자신의 강점을 살려 나아가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


학교는 학생의 강점이 무엇인지 또 본인이 그것을 하고싶어하는지를 확인하고 그의 개발을 지원해 주어야 하는 곳이다. 이제는 학생의 강점을 학생스스로가 길러나가도록 기회와 조건을 갖추어 주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학교교육은 학생이 못하는 것 때문에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 때문에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성원으로 자아를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탈산업사회 학교는 각자가 잘하는 분야에 대해 자기를 표출할 수 있는 중다지능 학교로 갈 것이다. 그래서 백치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천재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백치-천재란 용어는 사라지고 그의 지능 수준이 어떠하든 음악 천재, 야구 천재, 골프 천재, 체조 천재, 문학 천재, 수학 천재와 같은 것이 강조되는 학교로 변모해야겠다.

더욱이 야마모토를 천재화가로 길러온 나고야 지적장애학교 교사였던 가와사끼 다까시(川高 )선생은 그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길러준 분이다. 이런 발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 고귀한 것은 야마모토를 기른 그의 가치관이라고 하여야겠다. 가와사끼 선생은 야마모토의 그림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야마모토의 미술활동은 값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술(개발)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리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왜 그리느냐?

그것이 바로 그의 인생이고

그의 정신이다.’

 

야마모토의 재능을 발견하고 양육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노력은 야마모토의 삶을 그림을 통해서 이루려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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