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65. 애통(哀痛)해하는 사람

profkim 2022. 10. 19. 10:30

 

들국화는 외소하지만 생기가 넘치고 고난 끝애 하얀 꽃을 피웠다.

 

 

                       65. 애통(哀痛)해하는 사람

 

 

 

 

  태양이 찬란하게 비칠 때 그를 햇살이라 하지 않는다. 먹구름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햇빛을 햇살이라 한다. 밤하늘의 별빛이 흐릿한 것은 지상에 불빛이 있어서 더 그러하지, 애통(哀痛, mourn, penqou/ntej)은 가슴을 에는 아픔이 있는 통렬(痛烈)한 감정이다. 소망이 끊어졌을 때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절망에서 오는 감정이다.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다면 이에 비유해 볼 수 있을까? 조선조(朝鮮朝) 말기 나라를 잃고 자결(自決)한 충신의 심정(心情)이 이러했을까?

 

한 송이 국화가 꽃 피기 위해 인고(忍苦)의 긴 세월이 있었다.

  애통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그 무엇, 자신의 잘못이나 어떤 행위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해진 사람이 다음 단계로 갖는 심리상태라 하겠다. 우리의 세상살이는 허망한 것을 많이 추구하게 된다. 갈 길을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는 삶(혼돈), 빛이 없는 데서 헤매는 삶(흑암), 공허함 속에서 추구하던 허황한 것들을 다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즉 그 마음이 빈 마음이 되었을 때 자신의 잘못이나 지난날들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애통하게 된다. 애통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가진 사람은 애통해하지 않는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물리적 상실이라 하겠고, 다른 하나는 영적 각성에서 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다가 실패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은혜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나 영적 각성을 통해서 스스로 애통해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영화를 누리고있는 장미에게 무엇이 부족할까?

  자신이 잘나고, 부유하고, 성공하면 애통해야 할 일들이 묻혀버리고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부유한 자이며, 영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영적으로 부유해지기 위해서 세상 적으로는 가난해져야 한다. 물질의 양이 아니라 소유자로 살면 부자가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세상의 헛된 욕망을 져버린 사람이고, 하나님의 관리인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무엇을 애통해해야 할까? 창조의 섭리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면, 혼돈(混沌, chaos)에 대해서 애통해야 할 것이다. 안개 속과 같은 삶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 안개 속에서 안락을 추구하고 산다면 그는 분명 멸망할 것이다. 이런 삶에 대해서 애통함으로 새로 열린 길 그 길은 산과 언덕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메워져서 평탄한 대로가 된 길이다. 이 길은 고속도로이다. 길을 잃은 사람의 애통함은 그로 생명의 길을 찾게 할 것이다.

 

코스모스에게서 창조 후의 우주를 보면 어떨까?

  공허(空虛)한 삶은 토대가 없는 행위라 하면 어떨까? 사랑의 행위(行爲)는 있는 것 같으나 그것이 믿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공허한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물질적 충족에 있다면 그는 공허한 삶을 사는 것이겠지, 출세 지향적 삶이라면 공허한 삶이겠지, 이기적 삶을 위한 것이라면 공허한 것이겠지, 이런 삶이 잘 풀려나간다면 그는 애통해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런 길에서 실패했을 때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애통함으로써 진리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좌절과 실패는 삶의 전기(轉機)를 마련할 수 있다.

 

공허(空虛)에서 꽉체워진 충만(充滿)으로 변화되면 아름답다.

  우리는 흑암(黑暗)에 대해 애통해야 할 것이다. 어둠 속에 살면서 어둠을 모르고 거기서 먹고 마시고 평안을 누린다면 이는 분명 죽음을 의미하다. 예를 들어서 어둠을 죄악이라 해도 좋고, 잘못된 향락적 삶이라 해도 좋고, 세상의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라 해도 좋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갖게 하시되 빛 가운데서 이루신다.

 

  우리가 어둠(黑暗)에 살고 있다면 우리 마음을 쪼개는 아픔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암흑 중에서라도 소망한 것을 이룰 수 있다면 그는 어둠을 즐길 것이고 빛에 대해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비로소 잘못된 것이 눈에 들어오고 아파하게 된다.

 

어둠에 빛이 비치면 새세상이 열린다.

  애통해하는 사람은 세상의 가치(혼돈, 흑암, 공허한 가치)를 추구하던 사람이 절망에 빠졌을 때 지금까지 추구하던 잘못된 가치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하는 깊은 아픔을 갖는 과정이다. 결과로 그는 심령이 가난해지고 깨끗해진다. 애통은 풀무나 도가니 같은 연단(鍊鍛)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 결과 정금(正金)과 같은 깨끗한 청결(淸潔)한 마음이 태어난다. 이때 그의 심령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애통과 심령 청결의 인과 관계

  위의 도식(圖式)에서 보면 애통해하는 사람은 그 결과로 심령이 청결해지고 심령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복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후크시아의 꽃말은 선물이다. 하나님의 선물로 천국이 온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천국 특성인 조화(調和, cosmos), 영적 충만(充滿, fullness), 밝음(光明, light)으로 충만해진다. 이 가운데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전연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에통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는데 이 위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갖게 되는 천국의 위로이다.

 

  애통은 청결한 심령을 낳고 심령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이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천국의 위로를 받게 된다. 이 비밀이 크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그 위로를 무엇으로 측량하겠는가!

 

샤론의 장미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만난사람의 즐거움

  예수님이 강화하신 팔복(八福)은 세상에서 이루어질 천국 생활을 설명하신 것이다. 세상에서 천국 생활이란 창세 전의 모습 즉 혼돈(chaos), 공허(emptiness), 흑암(darkness)을 몰아내고 조화(cosmos), 충만(fullness), (light)으로 대치된 세상이다.

 

 

20221017()

2022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