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남천의 자연
지난 겨울은 날씨가 상당히 추웠고 남천을 찾는 철새도 많이 줄었었다. 소백로 무리는 예년보다 그 수효가 줄어든 데다가 얼마 머무르지 않고 대부분이 떠나 버렸다. 대신에 오리 무리는 여러 종류가 남천을 찾았고 그 개체 수도 좀 더 늘어났었다. 특히 힌 깃털 오리와 청둥오리의 개체 수가 많이 늘었다.
누가 오라했는지, 또 누가 가라했는지 알수 없지만 그들은 자연의 명령에 따라 이동하고 있다. 만일 남천이 그들이 살기에 온도가 적절하고 먹이가 충분했다면 그들은 남천으로 몰려왔겠지, 이를 순응(順應)이라 한다면 적절할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 결정된다.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등은 물고기를 먹이로 하니 수중에 물고기가 많으면 자연 많이 몰려올 것이다. 소백로 무리가 일찍이 남천을 떠난 것은 먹이가 부족한데 연유(緣由)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대신에 오리와 물병아리는 수생식물을 주로 먹이로 하니 그들의 수가 증가한 것은 먹이가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야생의 동물은 삶의 모든 과정이 먹이 활동으로 보낸다고 한다. 그러니 먹이와 생존은 밀착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환경 조건이 야생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과정이 야생의 삶이다. 야생의 흐름은 자연환경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만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인간에게 지배권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재앙으로 인간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조정하고 질서를 지키고 있는데 이를 교란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생태계 교란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불러오는지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지난겨울 풍족하게 남천의 자연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보아왔다. 그리고 생존의 의미를 되새김하였다. 야생에서 인간은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무척 깊어졌다.
나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대부분 사람은 즐겁고 아주 만족한 얼굴로 화기애애한 담소를 즐기고 있다. 식사시간은 즐거운 시간이다. 기분 좋은 만남이 있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식사를 같이 한 사람과는 친밀감이 더해진다. 이것이 자연의 길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과정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이 원리가 학습원리로 적용된다면 학습은 아주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사월로 접어들면서 남천에 유채꽃이 만발하였다. 삭막했던 남천이 화사해졌다. 그리고 흘러가는 물의 색도 따뜻해졌다. 텅 빈 것 같던 남천이 솟아나는 생명으로 꽉 차오르는 감이 든다. 주변에 영산홍, 진달래, 이팝나무 꽃 등 많은 꽃들이 남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준다.
남천의 빈 곳이 생명으로 꽉 차오르면 갈 곳 없던 새들이 둥지를 틀겠지, 수달도 몸 가릴 그늘이 생기니 행동이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가 다 알 수 없는 많은 생명체가 이곳에 모여 올 것이다. 그러면 이를 이용하려는 많은 생명이 몰려와서 이곳은 풍요로운 생태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다.
오늘 사기와 허위에 꽉차있는 인간사회의 아노미 같은 것들은 여기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연에서는 집을 사고파는 일이 없겠지, 음식을 사고파는 일도 없겠지, 자연에서도 속이는 일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간악(奸惡)한 일들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지혜가 너무 많이 발달했다. 결국, 인간은 그 지혜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지식이 없는 세상이 었다. 그러나 그 후에 인간에게 지식이 들어오고 범죄가 생기고, 죽음이 왔다. 천국은 변별(辨別) 심(心)이 없는 세상이겠지, 선과 악이 구별되지 않는 세상, 친소(親疏)가 없는 세상, 강약의 구별이 없는 세상일 것이다.
남천은 나에게 자연에 살라 이른다. 너무 애쓰지 말고 몸을 자연에 맡기라 이른다. 자연이 이르는 대로 살라 한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돌아본다. 무엇을 이루려는 생각, 얻으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되돌아본다.
2023년 4월 22일(토)
Ⓒ 2023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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